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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 Apr 20. 2019

연민, 무서운 봉사활동

파란만장 감정지도

생애 첫 자원봉사를 하게 되었다. 거창하게 박애주의가 있어서 간 것도 아니었다. 그곳에서 일하는 지인에 이끌려, 얼떨결에 가게 되었다. 경기도 산속 깊은 곳에 위치한 병원으로 가는 길, 조금은 긴장되었다. 건물 원장실에서 10여 명 남짓 자원봉사자들, 수녀원장님이 오셔서 각자 할 일을 배정받았다. 내가 일하는 곳은 중환자실이었다. 


그때까지 내가 며칠간 해야 할 일터가 가장 심각한 곳인 줄 꿈에도 몰랐다. 간호사 수녀님을 따라 한참을 돌아갔다. 건물 복도를 한참 걸어서 도착한 곳은 교실처럼 큰 공간에 족히 30명은 누워있었다. 처음에 이게 뭔가 싶었다. 병원 침대들이 가지런히 수십 개가 있었고, 그곳에 누워있는 사람들은 움직임이 없었다.


‘낮에 다들 주무시는구나.’ 이렇게 생각했다. 간호사는 한 침대로 가서, 설명했다. 그런데 누워있는 사람은 의식이 없었고, 발가벗겨진 상태로 기저귀를 차고 있었다. 간호사는 기저귀를 풀어서 세탁실에서 빠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설명을 다 듣고 이해되었다. 그곳에 누워있는 사람들은 모두 의식불명 상태였다. 식물인간이 되었고, 연고지가 없거나 돌봐줄 사람들이 없는 환자들이었다. 



하얀 이불을 들추고, 한 사람씩 기저귀를 풀어 바구니에 담았다. 늙은 노인부터 젊은 남녀까지 다양했다. 몸은 얼음장같이 차가웠고, 음부에는 대소변 연결 파이브가 연결되어 있었다. 반쯤 넋이 나간채로, 기저귀를 모았다. 세탁실에서 똥기저귀를 일일이 손발로 빨아야 했다. 지린내가 온 사방에 진동했다. 30여 명의 기저귀를 가는데 한나절이 다 갔다. 


옆 병동으로 갔다. 다행히 의식이 있는 환자들의 기저귀를 가는 일이었다. 작은 2인실 병동에 두 사람이 누워있었다. 20대 젊은 얼굴을 한 남자였는데, 몸은 어린아이처럼 정말 작았다. 옷을 다 벗은 채, 간호사가 비닐장갑을 끼고 항문에 손가락을 넣었다. 손가락으로 끌어내니 손안에 한가득 대변을 고였고, 환자는 살 것 같다며 소리쳤다. 젊은 여자 간호사는 시원하시냐며 웃으며 말했다. 나도 모르게 입을 벌리며, 이 장면을 지켜봤다. 


난 세상을 너무 몰랐다.


간호사는 기저귀를 웃으며 내게 건넸다. 그녀가 정말 위대해 보였다. 책 속에 있는 성인보다 눈앞에 있는 사람이 더 위대해 보였다. 하루 봉사를 마치고 저녁밥이 목구멍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내심 충격이 심했었다. 부모님의 보살핌 속에서 살아온 내가 갑자기 감당하기에 현실의 무게가 갑자기 커졌다. 


자정에  침대에 누워서 잠을 자려는데, 밖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가 싶어 창문으로 바깥을 살펴봤다. 방 옆 건물에서 나는 소리였다. 그 건물 조명 색깔이 빨갛다. 무슨 연극을 하나 싶었다. 사람들의 아우성 소리가 나서 같은 봉사단원에게 물어봤다. 그 건물은 정신질환자들이 산다고 했다. 그들의 이상한 비명소리가 밤새 메아리를 쳤다.



사람의 목소리에서 저런 소리가 나올 수 있는지 처음 알았다. 무서워서, 밤새 잠을 설쳤다. 멘탈이 좀 나갔는지, 다음날 일을 할 수 없어서 쉬기로 했다. 낮에 건물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면 평화로웠다. 건물을 둘러싼 녹색 나무들과 잔디밭으로 꾸며져 있었다. 풍경과 대조적으로 건물 안의 사람들은 치열한 사투를 벌이고 있다. 


평생 의식 없이 누워서 지내야 한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연민과 공포의 감정이 느껴졌다. 내가 그렇게 될까 봐, 그리고 저 사람들이 불쌍하다. 타인의 극단적인 불행을 보며, 그나마 나은 내가 안심이 되어서였는지. 연민과 공포가 다음 날 슬퍼졌다. 


나도 자원봉사를 했다는 뿌듯함과 타인의 불행을 보며 안심했던 교만함, 내 이중성에 혼란스러웠다. 간혹 죄를 좀 덜었다며 봉사를 이용하는 이도 있고, 화를 내며 일하는 사람도 있었다. 인간은 연민을 이용해 자만심을 키운 는 것이 아닐까?! 


어릴 적 거지를 보면, '참 안됐다. 그리고 난 저렇게 살면 안 돼'. '난 이렇게 따뜻한 방이 있어 다행이야'. 착하게 살지 않으면 저렇게 된다는 어른들의 말이 무섭게 들렸다. 연민의 감정을 느끼고, 바로 그다음의 생각이 무엇이냐? '그래도 다행이야, 난 저렇게 되지 않아서'와 '왜 저들은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생각의 깊이는 감정 이후 결정된다. 


전자는 자만심을, 후자는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감정과 생각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고, 유아기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감정조절의 연습이 중요했다. 불행한 타인을 불쌍하게 가련하게 여기는 연민의 감정이 왜곡되게 만드는 것은 나의 미성숙한 생각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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