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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 Apr 09. 2019

복수, 여행 중 감금당하고 탈출해서 기사회생

파란만장 감정지도

20세기 말 장기 배낭여행을 했다. 호주를 돌고 티모르섬을 거쳐 동남아 섬들을 여행하고 다녔다. 인터넷 초기 시절이어서, 배낭족들이 남긴 정보와 숙소 주인에게 물어보며 다녀야 했다. 젊을 때 한 번씩은 꿈꾸는 세계여행에 도전하게 되었고, 무작정 짐을 싸고 떠났다. 아마도 이게 화근이 될 줄은 몰랐다. 오지여행은 아무도 나의 안전에 책임져주지 않는다. 아프리카 초원에 혼자 있는 사슴과 같다.


살인을 하고 도망 나온 범죄자와 동행을 하기도 하고, 미얀마 반정부 독재 운동권 청년에게 감명받기도 했다. 히말라야 산맥을 걸어서 넘어온 티베트인들의 모습에 인간의 숭고함에 말을 잊지 못했다. 여행하며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가장 위험천만했던 일은 범죄 집단의 표적이 되었으나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이야기다. 이 일을 겪은 후 제2의 인생이라고 생각했었다.     




오후 낮 근처 바에 들러서 시원한 칵테일을 마시고 있었다. 혼자 온 동양인은 눈총의 대상이 되었고, 옆자리에 앉은 여자가 말을 걸었다. 매번 현지인들과 스스럼없이 지냈던 터라 의심하지 않았다. 별 위험 없이 여행한 터라 별일 없겠지 싶었다. 여행 다니며, 간혹 여행자의 실종 전단지를 본 적도 있었다. 나에게 접근했던 현지인 여자와 친해지게 되었고, 그녀는 나를 점심식사에 초대했다. 다음날 그녀를 따라 집으로 들어가 점심을 같이 하며 식구들을 소개했다. 그때까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의 오빠라고 소개한 남자는 자신이 호주의 카지노딜러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나를 윗방으로 올라가 같이 포커를 하자고 제안한다. 그것이 실수였다. 심심풀이로 했던 포커게임에 정신이 팔렸고, 판돈이 커지면서 욕심이 생겼다. 나도 몰랐다. 어느덧 2층 작은 방에서 건장한 남자들이 내 뒤를 에워싸고 있었다. 아차 싶었다. 이미 때는 늦었고, 두 손을 포박당했다. 심장이 쿵쾅거리며 빠르게 뛰었다. 이거 오지게 걸렸구나! 가지고 있는 수표와 현금을 다 빼앗겼다. 다행히 여권은 호텔방에 두고 왔다. 액수가 적었는지 두 손이 묶인 채 나를 봉고차에 태웠다.



은행에 가서 돈을 인출할 것을 강요했다. 현금이 없다고 발버둥을 치자, 조수석에 있던 남자는 칼로 내 목을 지목하고, 꼼짝없이 봉고차에 감금되어 인출할 방법을 찾아 배회하고 있었다. 이러다 죽을 듯싶어서, 꽁꽁 숨겨두웠던 비상금 미화 100달러를 주었다. 저녁 무렵 차는 어두운 밀림으로 가고 있었다. 잠시 정차된 차에서 그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를 회의하고 있었다. 신기한 건 전혀 모르는 갱단들의 말이 들렸다. 그들은 나를 죽일 것인가 말 것인가를 회의하고 있었다.


여기서 죽을 수는 없다! 의외로 마음이 차분했다. 이렇게 허망하게 죽게 생겼으니, 돈이고 뭐고 어떻게 하든지 빠져나와야 했다. 하늘이 도왔는지 그들은 다시 차를 돌려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마침 도로에 사람들이 보였다. 차가 속도가 늦추어질 때, 재빨리 차 문이 열고 뛰어내렸다. 국도에 있는 구멍가게로 전속력으로 달렸다. 그들은 나의 모습을 보고 달아났고, 나는 구멍가게로 전속력으로 달렸다. 그리고 가까운 경찰서로 가 신고했다.


경찰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동서분주했지만 그들의 치안상태는 너무 원시적이었다. 허술한 장비와 경찰들의 반응은 별일 아니라는 식이었다. 그런데 경찰서 내에 두 명의 백인들이 있었다. 자세히 들어보니 그들도 나와 똑같은 사건에 휘말린 사람들이었다. 요즘 기승을 부리고 있는 범죄유형으로 관광객만 노리는 갱단이라고 말했다. 주변에 수많은 섬이 있어서, 이미 다른 섬으로 도주해 잡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도 기억을 더듬어 초대받은 집을 찾기로 했다. 경찰차를 타고 갈 줄 알았는데, 사이렌이 달린 자전거로 찾아다녔다. 경찰은 찾을 의지가 없고, 며칠 만에 포기하게 되었다.



이제부터가 문제였다. 시설이 너무 낙후되어 수표를 재발급하기 위해, 일주일을 돈 한 푼 없이 기다려야 했다. 막장까지 가보니 구걸을 하기로 했다. 일단 일주일을 먹어야 하니까. 내성적이고 숫기 없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당장 굶어 죽을 판이니 얼굴 철판 깔게 되더라. 안 그래도 마른 체형에 더 살이 빠져서, 구걸하기 딱 좋은 몰골이었다. 관광객이 많은 시즌이라서, 딱 한 끼 식사할 돈이 모였다. 하루에 한 끼로 연명하고 건물 화장실에서 잠을 잤다. 공항에서 빠져나오는 출구에 서서, 두 손을 가지런히 벌리고 구걸했다. 먼 이국땅에서 구걸을 할 줄이야 상상도 못 했다.


한 여행 가이드는 나를 벌레 보듯이 보며, “여러분 해외 나와서 저런 사람을 조심하세요”라고 단체관광 온 사람들에게 주의를 주기도 했다. 충분히 이해한다. 한 끼만으로 하루를 연명하니 배가 고파 정자에 앉아 있었다. 머피의 법칙에 걸린 것처럼 고단함의 연속이었다. 그들을 다시 찾아 복수하고 싶었다. 들끓어 오르는 분노의 복수심에 나도 당황했다. 내 안에도 보복, 복수, 살의가 있었다니! 격정적인 감정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였다. 며칠 전 죽음의 두려움은 온데간데없고, 살았다는 기쁨과 복수심으로 심정이 복잡했다.



복수심은 미움의 정서로 우리에게 해악을 가한 사람에게 똑같은 미움으로 해악을 가하게끔 우리를 자극하는 욕망이다. -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원수를 사랑하라’라는 말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겪어보니 이해되었다. 용서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복수심은 더 괴롭게 만들었고, 내면의 지옥불이 활활 타오르는 것 같았다. 일주일 동안 배고픔을 참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문득 파란 하늘을 보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이건 내 무지함의 탓이었다. 내 욕심과 무지가 모든 판단능력을 상실했다. 그들의 미끼에 내가 덥석 문 것이다. 어차피 복수심은 실현 불가능한 일, 이 사태를 이해되도록 생각을 정리하는 편이 좋다. 그리고 한결 편안해졌다. 다행히 수표를 발행받고 다시 배낭여행을 시작했다.


자칫 타국에서 생을 마감할 뻔했던 아찔한 경험은 오만방자했던 나를 조금은 겸손하게 만들었다. 구걸하는 해보면 안다. 사실 빼앗긴 돈은 얼마 되지도 않았다. 어린아이 때부터 감정이 무던했던 내가 타인에게 복수심을 표출했다는 것, 감정의 잠금장치가 풀린 것 같았다. 그렇다고 사이코패스는 아니다. 살아오며 누군가를 미워하고 싫어하는 감정이 조금이라도 들면, 인연을 끊고 도망갔으니 말이다.


구걸하며 자신의 감정에 몰입하고 그것을 관철시키려고 노력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꼭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방법으로 인생공부를 해야 하는지, 난 죄가 많은가 보다. 여행 내내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목이 날아갈 뻔한 경험으로 이제는 웬만한 일에 견딜 수 있는 내공도 생겼다. 이 계기로 삶의 힘든 사건들을 자기 성찰로 연결해 보는 습관이 나를 더 명료히 알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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