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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 Apr 08. 2019

겁, 폭력에 위축된 약한 남자의 짧은 생존기

파란만장 감정지도

주먹을 쥐고 힘껏 친구의 얼굴을 향해 날렸다. ‘퍽’ 친구는 쓰러지고, 내 주먹은 서서히 부어올랐다. 초등학교 5학년 같은 동급생은 깡마르고 앙상한 체구의 아이였다. 나와 쓰러진 아이를 둘러싼 여러 명의 아이들은 소리치며 즐거워했다. 겁이 잔뜩 집어먹고 주먹을 꽉 쥔 난, 몸을 벌벌 떨었다. 처음 사람을 때려봤다. 쓰러진 아이를 보니 후회가 되었다. 또래 아이들의 짓궂은 싸움 붙이기에 휘말렸고, 꽤 오랫동안 괴로워했던 기억이 있다. 중학교 올라가니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왕성한 남성호르몬이 분출되는 시기, 매시간마다 서열싸움이 났다. 선생님들도 어찌할 수 없을 만큼 폭력의 학창 시절.


육체적으로 빈약했던 난, 자연스럽게 쭈글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혹여 나를 건드릴까 노심초사하며, 조용히 아무렇지도 않은 척 눈치를 봤다. 키가 작아 항상 맨 앞에 앉아있다가, 쉬는 시간에 우당탕탕 소리가 나면, 겁을 먹고 꼼짝없이 앉아있었다. 나약한 몸을 보호하기 선택한 생존전략은 가만히 있기. 육체적으로 월등한 몇몇 중학생의 눈빛은 야수와 같이 나를 잡아먹을 것 같았다. 학교 운동장 점심시간이 되면, 사방팔방 모래먼지가 날릴 정도로 아이들은 운동과 싸움으로 난장판이 되었다. 중1이 되고 알았다. 세상살이 더럽게 힘들겠구나.



다행히 고등학교는 체계가 잡혀있어 동급생끼리 싸움은 많지 않았다. 암묵적으로 서열이 정해지긴 했지만, 난 그런 거에 관심도 없었다. 다들 성적 올리기에 정신없었다. 문제는 선생님들이었다. 학급에서 낮은 성적군에 포함된 난, 매 수업마다 무작위로 지목되는 학생은 문제를 풀어야 했다. 혹시 불려 나갈까 봐 노심초사하며 긴장했다. 며칠에 한 번은 문제를 못 풀어 매질을 당했다. 간혹 화풀이로 때리는 선생님은 피멍이 들 정도로 엉덩이를 때렸다. 3년을 긴장하며 매를 맞는 생활을 하다 보니, 정신적으로 문제가 발생했다. 3년의 고등학교 기간은 지옥 같았다. 입학 첫날 시험을 거의 꼴찌를 했으니, 담임선생님들은 내가 애물단지였을 것이다. 공부는 열심히 하는데, 성적이 오르지 않는 이상한 학생.


난 스포츠에 전혀 관심 없다. 한일전을 해도, 한국 축구 월드컵이 8강에 올라가도, 박찬호가 메이저리그를 뛰어도 아무런 흥미가 없었다. 대부분의 젊은 성인 남성들은 스포츠 중계를 보며 스트레스를 풀거나 애국심의 또 다른 표현의 수단으로 활용한다. 운동신경 1도 없는 필자는 지고 이기는 싸움이 불편했다. 돌이켜보면 패자의 아픔을 상기시키고 싶지 않았다. 평생 패자의 트라우마를 안고 살다 보니, 본능적인 선택이었다. 단 한 가지 예외가 있었다. UFC 중계를 때때로 즐겨봤다. 피가 튀고 뼈가 부러지는 잔혹할 수 있는 경기는 아무렇지 않게 보았다. 화끈한 액션으로 치열한 선수들의 팬이 되었다.  



하필이면 종합격투기였을까? 폭력적인 사람을 정말 싫어했음에도 말이다. 나도 저렇게 강한 육체를 가진 남자였으면 하는 보상심리였을까! 젊은 시절 무술도장 몇 번 다녀보았다. 역시 몸으로 하는 것은 소질이 없다는 걸 재확인했다. 몇 달만 되면 반드시 몸 어디가 고장이 나서 관두어야 했다. 여자들의 관심을 받기 위해서, 적당한 근육질과 넓은 어깨는 강한 남자의 로망이었다. 그래서 한때 헬스장에서 분노의 쇠질로 몸을 단련한 적도 있었다. 폭력을 싫어하면서 폭력적인 영웅을 동경하는 심리는 UFC뿐 아니라 취향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소위 맨 시리즈는 미국 장르영화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가면을 쓰고 악당들을 물리치는 영웅 서사에 열광했다. 파괴적인 주인공이 공포감과 신성함을 동시에 갖는 것은 자기 원형의 그림자상이라고  할 수 있다. 내 안에 폭력성이 존재한다는 인식을 하고 좋아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열등감을 일시적으로나마 해소하고 있었다. 세상 모든 것에 두려워하고 겁이 많다는 것은 내면의 구멍이 많다는 의미였다. 무의식은 그 구멍을 찾을 수 있도록 자극함으로써 열등 기능을 의식화하도록 의도한다. 이유 없는 두려움, 불안감, 강박증, 무기력, 만성피로는 무의식이 주는 정신적 이상반응이다. 쉽게 말해서, 너의 모자람을 알아채고 성숙의 길로 가라.




미래에 벌어질 수 있는 가장 불행한 일에 대한 공포, 이것이 바로 겁이라는 감정의 정체다. 그러니까 겁이 많은 사람은 미래의 불행에 미리 젖어 현재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돌보지 않게 된다. - 강신주의 감정수업 -

겁이 많았던 나는 앞으로 벌어지지도 않은 일에 지레 겁을 먹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날이 많았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없었다. 깨지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는 과정에서 실패의 성과는 자신만의 콘텐츠가 된다. 천만다행으로 겁을 극복한 덕분에 내 실패담은 오롯이 나만의 이야기가 되어 가고 있다. 강한 남자보다 강한 내면이 훨씬 위대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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