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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 Feb 25. 2019

꼴찌도 성장한다.

꼴찌의 갈등극복 연대기

선생님의 위로의 말씀 ‘590등! 꼴찌네’


강남으로 전학 후 첫 시험 성적 전교 590등, 학교 총인원 600명이다. 멘붕! 내 뒤 10명은 어떤 심정일까. 이런 성적표를 받은 부모님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자식 한번 잘 키워보시겠다고 강남 8 학군으로 이사하셨다. 한참 흥행 몰이한 스카이캐슬의 무대, 대치동. 초등학교를 강북에서 졸업하고 중고등학교를 강남으로 이사한 후 지옥 같은 입시교육에 던져졌다. 강북과 강남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자유롭다 못해 놀기만 했던 강북 생활이면 옴짝달싹 못하게 교육의 감옥생활이 강남이었다. 처음 중학교 전학 온 날, 수업시간에 단 한 명도 떠들지 않는 아이들, 쉬는 시간에도 떠들지 않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 중학교가 이 정도라니...... 다들 미쳤다.


반 분위기가 이러니 금세 적응했다. 모두 공부하니 나도 공부만 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기초지식이 없다 보니 강남 아이들의 학업성적을 따라갈 수 없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밥 먹고 공부만 했다. 정말 열심히 했다. 그런데 등수의 변화가 없다. 열심히 노력하는 꼴찌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겠다. 시험성적이 나오는 날, 담임은 반등수 깎아먹는 학생들을 일으켜 세웠다. 난 항상 일어나야 했다. 내성적인 성격 탓에 내 탓만 했다. 그때는 몰랐다. 이 상처가 곪아서 못된 습관으로 연결될 줄이야. 고등학교 3년은 수업마다 긴장상태였다. 선생님들이 수업마다 지목하면 불려 나가 문제를 풀어야 했다. 못 풀면 맞거나 창피를 당했다.


‘너 나와’


별명도 무서웠던 피바다, 한번 때리면 피를 본다는 가장 무서운 선생님 수업시간. 이때 학생들은 감히 떠들지 못한다. 점심시간 후 수업이어서 노곤함 때문에 졸아버렸다. 난 지목을 받고 불려 나갔다. 나에게는 이상한 버릇이 있다. 무안하면 나도 모르게 어색한 웃음을 짓는다. 비몽사몽 한 상태로 나와 웃고 말았다. 눈앞이 번쩍번쩍하더니 내 몸은 어느새 교실 뒤에 있었다. 피바다 선생님의 허벅지만 한 팔 두께로 수대의 빰을 맞고 기절직전이었다. 인성, 인격, 예의, 존중 이런 건 존재하지 않았다. 1등은 고위층이며 꼴찌는 하층민, 한 교실 안에서 벌어지는 계급 나누기에 적응해야 했다. 돌봄이라고는 없는 혹독한 강남 8 학군의 고등학교 3년은 내적 갈등의 기원지가 되었다.


사람이 3년 동안 꾸준히 스트레스를 받으면 정신적으로 어디엔가 고장 나는 것은 당연하다. 꼴찌의 트라우마는 평생을 괴롭혔다. 청소년기의 폭력적인 교육을 받은 세대로써 한 아이의 인생이 어떻게 무너지고 고통받았는지, 그 극복과정을 낱낱이 올리고 싶어 졌다. 10대의 상처가 20대로 어떻게 전이되고 습관화되는지 소상히 알려주고 싶었다. 꼴찌라도 인생은 무너지지 않는다. 나 답게 사는 것이 등수와는 상관이 없는 시대로 변해간다. 어느덧 중년이 되어 내가 살아온 경험을 낮은 성적으로 괴로워하는 분들에게 위안을 주는 글이 되었으면 좋겠다. 꼴찌도 충분히 멋진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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