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쓰는 목차

by small slow steady

대학생 때의 일이다. 교내 동아리 비슷한 모임에 참여했다. 매주 만났고, 한 주에 한 명씩 호스트가 되었다. 어떤 날은 호스트가 발표하는 것을 듣는 청자가 되었고, 어떤 날은 호스트가 기획한 프로그램의 참여자가 되기도 했다. 지금의 나라면 상상하기 어렵지만, 꽤 여러 번 호스트가 되어 사람들 앞에 섰다.


내가 진행했던 주제 중 하나는 버킷리스트 작성이었다.

그 시절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을 위해 설명하자면, 미라클모닝, YOLO, 파이어족, 갓생살기처럼 일종의 문화적 유행이었다. 어디서부터 이 유행이 시작되었는지 확신은 없지만 아마도 2007년이나 2008년에 개봉한 「버킷리스트: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이라는 영화가 시작이 아닐까 싶다.

버킷리스트의 의미는 영화 제목 그대로다. 원래 어원은 교수형에 관련되어 있다고 하고. ‘죽기 전에’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어 어째 친숙하게 다가오진 않지만, 너무 많이 듣고 쓰다보니 원래 뜻은 잊고 하고 싶은 일 목록에 더 가까워졌다. 버킷리스트에는 정말 다양한 층위의 이야기가 담긴다. 바디 프로필 찍기, 로또 당첨되기 같은 비현실적인 꿈이나 도전을 상상하기도 하고, 날씨가 너무 좋은 가을날 갑자기 (직장인이라면 반차쓰고, 대학생이라면 수업을 째야할지도 모른다. 공교육의 범위 내에 있다면 아쉽지만 권장하진 않을게요!) 피크닉 가서 책 읽기 같은, 언젠가 한번쯤 해보고 싶었는데 막상 용기가 없어서 실행하지 못한 것을 되살리기도 한다.



버킷리스트 작성하기 모임을 열었을 때 나는 학점은 모두 이수했고 졸업 요건도 모두 맞췄지만, 졸업 대신 졸업 연기를 선택했다. 졸업 후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지 몰라 한참 헤매고 있었다. 거의 1년 넘게 취업을 하지 못하고, 졸업생보다 재학생이 취업에 더 유리하다는 믿음으로 수업도 듣지 않으면서 제법 비싼 돈을 내고 학생증을 샀다. 취업 준비생을 그럴듯하게 표현하면 이렇게 될까.

스스로 해야 하는 일은 많았지만—자소서도 쓰고 면접 준비도 하고 영어 공부도 하고 상식도 쌓아야 하고— 강제로 해야 하는 일은 없고—들어야 할 수업도 없고 가야 할 회사도 없으니— 되는 일도 없어서—서류는 탈락하고 면접에서는 깨지고— 가장 하면 안 되는 일만—모든 걸 다 때려치고 싶다고 생각하거나 나는 쓸모도 없고 잘하는 것도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나— 하고 있었다.

내가 할 줄 아는게 없는 건지, 하고 싶은게 없어서 헤매는 건지 알지 못하니, 돈을 써서 사람을 뽑고 키워야 하는 회사에 내가 왜 필요한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설득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스트레스로 밥을 잘 먹지 못해 몸무게가 5~6KG 정도 빠졌고, 거의 매일 밤을 사회에서의 쓸모를 찾지 못한 나 자신을 한탄하며 눈물을 흘렸던 것 같다.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고, 내가 가장 아픈 사람이니까 이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다시 한 번 내 주변에 있어 주었던 모든 사람들에게 너무 미안하고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앞으로 더 잘할게요.)


그 구렁텅이에서 어떻게 벗어나기 시작했는지,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인성의 바닥을 찍었을 즈음, 스물스물 이렇게 살 바에야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전 이 세상의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어 던지고 제 행복을 찾아 떠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세요~’라고 외치고 그냥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사는게 더 낫지 않을까 싶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내가 되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 버킷리스트를 작성했다. 죽음을 눈 앞에 둔 것은 아니지만, 죽고 싶을만큼 힘들었던 시절에 잘 살아보고 싶어서 해보고 싶은 일이라도 생각하며 버티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던가 하면서.

브런치 작가를 두 번정도 신청했다 떨어지고, 갑자기 세번째 도전을 하게 되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작가 신청에 떨어진 수많은 사람들의 수기에서 드러나듯 작가가 되는 것을 우습게 봤던 때가 있었다. 아무 글이나 작성하면 되는구나 싶어 블로그에 작성했던 글을 재활용하고, 아무런 컨셉도 없이 내가 누구인지 드러내고 싶지도 않았다. 세 번째 도전을 하면서는 조금 절박한 상태에서 보다 진지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어떤 이야기를 쓰고 싶은지 간략한 목록을 작성해달라는 물음에 정말 내가 어떤 이야기를 쓰고 싶은지 생각했다.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몇 시간을 쓰고 지우고 다시 썼다. 글자 수 제한에 생각했던 모든 것을 다 적지는 못했지만, 내가 적어낸 것은 다음과 같다.


- 미리 쓰는 목차


[소비자로서]

- 달리기

- 5키로를 처음 달린 날

- 10키로를 처음 달린 날

- 여행

- 그냥 운전을 배우지 그래?

- J의 준비성, P의 즉흥성

- 책

- 병렬독서의 시대

- 연관 소비를 들어봤니


[생산자로서]

- 앱

- 고객은 나, 안팔려도 괜찮아

- PM, 디자이너의 소중함

- 한 번이 어렵지


[나로서]

- 유행 지난 갭이어

- 더 잘 쉬기 위해서도 노력해야할까

- 그래서 뭐가 되고 싶어


- 다시 쓰는 버킷리스트


나는 선언의 힘을 믿는다.

물론 선언에 마법의 힘 혹은 종교적인 힘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뤄질 것이라고 믿고 꿈꾼다고 모두 현실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선언한다는 것은 내 안에 흩뿌려진 채 형체 없이 떠돌던 것에 어떤 형태를 입혀 외부로 내보내는 행위이다. 선언은 시각화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할지 명확해지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하나씩 해낼 수 있게 된다. 다른 사람에게 알림으로써 지켜보는 눈을 만들고, 내가 잠시 잊더라도 다시 상기시킬 수 있는 상황을 만든다. 선언함으로써 계속 관심을 갖게 되고, 의도적으로 행동에 책임감을 부여한다.

지금 쓰고 있는 글은 목차 상의 미리 쓰는 목차이고, 목차를 쓰게 만든 첫 글은 5키로를 처음 달린 날 이다. 얼마 전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5KM를 달렸고, 그 마음을 잊고 싶지 않아 글을 썼다. 그리고 언젠가 10KM를 달리게 될 거라고 믿고, 그때 내가 어떤 생각을 갖게 될지—5KM를 달렸을 때와 다를지, 똑같이 느낄지까지도— 궁금해졌다. 한 두 달만에 이뤄낼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릴지, 어쩌면 10KM를 달리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되면 ‘진짜 내가 10KM를 달릴 수 있을까?’ 혹은 ‘달리기 10KM 대신 선택한 것’ 같은 제목의 글을 쓰게 될지도 모르겠다. 지금 당장 알 수 있는건 없지만, 하나씩 행동하고 하나씩 이루고 실패하고 하나씩 적어갈 것이다.


목차의 일부는 이미 나를 지나친 과거의 사건이며, 일부는 내가 만들어가고 싶은 미래의 모습이다. 10여 년 전에 내가 작성한 버킷리스트가 떠오른 것은 어쩌면 너무 자연스러운 위로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만들어가고 싶었던 미래와 그때 꿈꾸었던 현재의 나를 돌아보면서 지금 꿈꾸는 미래의 내가 어떤 모습인지 힌트를 얻게 될지도 모르니까. 버킷리스트 작성하기 모임에서 내가 작성한 버킷리스트를 다시 살펴보았다. 일부는 이루어졌고, 일부는 감사하게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일이 되었고, 일부는 인간 개조가 아니면 여전히 요원해 보인다. 목록의 많은 부분이 이제는 죽기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이 아니게 되었다. 가장 다행인 점은 여전히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2025년, 2026년의 나는 무엇을 버킷리스트에 넣어두고 있을까.



추신)

이 글을 적는 시점인 2025년 11월까지 영화 버킷리스트를 보지 않았다는 점을 고백한다. 검색해보니 OTT 월간 구독으로는 볼 수 없는 것 같고 1000원정도의 금액으로 개별구매는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도 운명인데 조만간 영화를 봐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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