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5KM를 달리다

by small slow steady

이 이야기는 내 인생 기준 거의 특보로 시작한다.



오늘, (아마도) 인생에서 처음으로 5KM를 달리다!


양심에 찔려 "쉬지 않고"라는 수식어를 붙이려다가 뗐다. 아니면 "어쩔 수 없이 쉬어야하는 상황을 제외하면 쉬지 않고" 같은 수식어를 앞에 붙여야하나 고민했다. 횡단보도를 만나 멈춰서야 했고, 경로를 변경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진입로에서는 걷기도 했다. 조금 쉬었으면 어떠리, 패치워크처럼 기운 자국이 남아있기는 해도 다 붙이면 5KM를 뛴 것은 변함이 없는 것을.

무엇이든 될 것 같은 날이 있다. 아니, 무엇이든 되는 날이 있다. 마지막 달리기는 며칠 전이었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기대했던 것보다 속도도 길이도 아쉬웠다. 밤에는 근육통도 올라왔다. 몸이 조금 풀린 것 같아 토요일에 달리려고 했는데 의도하지 않은 낮맥을 하게 되었고(조금만 마셔서 6~8시간 정도 후면 달려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말도 안 되는 마음), 비도 오고 컨디션이 좋지 않아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달릴 힘이 남아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 포기하고 와인이나 마시면서 뒹굴거렸다.

눈을 뜨니 일요일 오전 9시 30분 언저리였다. 괜히 추운 것 같고 모닝 도파민이나 충전할까 잠깐 고민했는데, 알람도 켜지 않고 푹 잤고 날이 너무 좋아서 겨울이 오기 전에 좀 더 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집 근처 아주 작은 공원(한 바퀴가 200미터가 안 되는)에서 달리거나, 자전거나 버스를 타고 큰 공원을 가서 달리는데, 근처에 사는 동료분이 새로운 곳을 추천해주셔서 평소와는 다른 방향으로 길을 나섰다.



그런데 하필 우리집 근처가 JTBC 마라톤이 열리는 곳이고, 마침 선수들이 그 앞을 지나갈 시간이었다니...? 마라톤 선수들을 잘 몰라서 100% 확신은 없지만, 뛴 거리와 시간과 뛰는 자세(?) 등을 보았을 때 그들은 프로였다. 다른 나라 사람으로 보이는 선수도 있었고 우리나라 사람으로 보이는 선수도 있었다. 국적이 무엇이 중요하랴. 단거리 달리기를 하는 것처럼 몇십 KM를 달리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유튜브에서만 보았던 무릎을 쫙쫙 올리고 어깨를 롤링하며 달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심장이 두근두근했다. 좀 더 크게 화이팅! 하고 싶었지만 소심하게 박수쳤는데, 손톱만큼의 응원이라도 되었기를. 모두 멋져요!


마라톤 참가자고 아니고(애초에 꿈도 꾸지 않음), 실력 자체가 전~~~혀 선수들과 함께 뛸 수 있는 수준도 아니고, 마라톤을 위해 설정해둔 코스를 참가자가 아닌 사람이 달리는 것은 안된다고 알고 있어서 코스를 침범하거나 따라서 뛴건 아니었다. 그냥 우연히 겹치는 시간에 우연히 비슷한 코스를 달리는 사람이었지만, 그게 선수이건 일반인이건 초보이건 상관없이 달리는 사람으로서 내적 친밀감이 차올랐다. 거기에 완연히 단풍이 물든 것은 아니었지만 노랗게, 붉게 반짝이는 나무들과 그 뒤로 파란 하늘과, 그늘을 지나면 몸을 데워주는 해까지—예쁜 것들을 구경하느라 눈이 심심할 틈이 없었고, 덕분에 얼마나 뛰었는지, 시간이 지났는지에 대해서도 조금 무던해졌다. 마라톤을 설계할 때 어련히 뛰기 좋은 날씨와 코스를 고려했겠지.


조금 전에 찾아본 중앙일보 기사 제목이 "달리기 딱 좋은 날"이다. 그렇다, 오늘은 정말 달리기 딱 좋은 날이었다. 되는 날이었다.


여기까지 읽었다면 누군가는(특히 회의적인 사람이라면 더더욱) 몇 가지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기록은 어떻게 되는데? 5KM가 그렇게 대단한거야? 그래서 어쩌자는 건데? 이런 질문에 대해 하나씩 대답해보면서 오늘의 이야기를 마무리 해보려고 한다.

기록은 어떻게 되는데? 가장 쉬운 질문부터. 보통 핸드폰으로 나이키런을, 애플워치로 실외 달리기 설정해서 달리는데 나이키런 기준 8'24'', 활동앱 기준 8'07''이 나왔다. 그게 뛴거야? 걷는 거 아니야?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텐데, 케이던스는 각각 169, 172였고 심박수는 활동앱 기준 164bpm이었으니 내 심장히 말하건대 확실히 뛰었다고 할 수 있다.

5KM가 그렇게 대단한거야? 이제 이 질문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이다. 그렇게 천천히 달려놓고 자랑하는거야? "대단"이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다르다. 솔직히 나도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더 솔직히 말하면 이 일련의 질문은 때로 내가 다른 사람의 달리기 관련 영상, 글 등을 처음 볼 때 하는 생각이다. 그리고는 기록과 상관없이 무언가를 하는 사람에게 감동받고 내 몸을 다시 움직일 힘을 얻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내 스스로가 기특하다. 아주 길지 않은 인생이었지만, 나는 언제나 대단함보다는 기특함이 더 행복하더라.

그래서 어쩌자는 건데? 달리기를 많이 한 것은 아니라서 이런 말을 하는게 조금 조심스럽지만(머리 속을 뒤덮는 생각들. 이런 생초보가 이야기하는 것이 맞나? 하지만 생초보는 생초보의 관점에서 생각을 말할 수 있다. 애초에 신빙성이 없으니 더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지도!) 달리기라는 것이 참 일관되지 않다. 처음 3KM를 쉬지 않고 달리기 시작했을 때 “와, 나 미쳤다! 이제 안쉬고 3KM를 달릴 수 있잖아?” 했는데, 그다음에는 3KM는커녕 500미터마다 100미터는 걷거나 속도를 극도로 줄이면서 반쯤 걷고 뛰고 했다. 오늘은 운이 좋아 황금카드를 많이 뽑은 날이라, 아마 직후의 달리기는 다시 3KM로 돌아갈 수도 있다. 그러니 두 번째 5KM가 몇 달 후가 될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계속 달려보자는 것이다.


수줍은 관심종자로서 누군가에게 말하는게 부끄럽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 사실을 세상 모두에게 자랑하고 싶을 정도로 고취감이 들었다. 그래서 글을 써보기로 했다. 한 편으로 끝날 수도 있지만, 쌓이고 쌓여 언젠가 책 한 권이 될 정도의 분량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얼마나 다양한 경험을 한 후일까? 즐거움이 대부분이었으면 좋겠지만 좌절도 섞여있을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극복도 있을 것이다. 달리기를 시작할 때 느꼈던 막연함처럼 글을 쓰는 막연함이 두렵지만 기분이 좋은 날이라 그런가, 달리기가 조금씩 조금씩 발전하는 것처럼 글쓰기도 조금씩 조금씩 발전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더 크다.

이것은 달리기에 관한 이야기이다. 달리기라는 것이 운동으로서, 즐거움으로서 인생에 등장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한 사람의 달리기에 관한 기록이 될 것이다. 설레고 좌절하고 시작하고 멈추고의 반복인 이야기가 될 수 있겠지만, 그래도 글쓰기라는 것이 조금의 꾸준함을 선물한다고 믿고 시작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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