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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별 Jun 29. 2022

사라진 임대인

임대인과의 싸움 6화 


<조정기일> 


1. 지난주에 임대차 보증금 조정기일에 참석했다. 재판부에서 조정을 잡아뒀기에 "전 조정이 싫어요!"라고 의견서까지 냈지만 그래도 절차는 다 경험해보자, 라는 생각으로 참석했다. 의견서를 내니 법원 조정상임위원한테 전화도 왔었다. "내가 젊은 사람이라 전화를 해주는 건데" "꼭 참석해라" "강제로 하는 게 아니다"라는 목소리만 들어도 나이 지긋한 분의 설득도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조정위원에게 설득당해버렸다. 당초 임대인에게 지연이자까지 청구할 생각이었으나 조정위원이 "임대인에게도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고 수차례 따뜻한 목소리로 말해 혹했고 임대보증금만 돌려달라고 하는 것으로 정리했다. (원래 귀가 얇은 편이라 호갱을 잘 당한다) 변호사 친구한테 말했더니 빵 터지면서 "그분들 설득에 도를 튼 사람들이야~. 몇 년 간 설득만 해오신분들이야"라고 했다. 


아직 재판부 조정결정이 나오진 않았지만, 대략적으로 "보증금 1억9900만원을 원고(나)에게 7월 26일까지 지급하고, 그때까지 지급하지 않으면 지연이자가 붙는다"는 내용이다. 소송비용은 각자 부담이다. 조정이 이대로 성립해도 임대인은 잃는 게 없어서 분하긴 했다. 임대인은 그냥 원래 줘야 할 돈인 보증금을 나한테 주는 거였고, 반면 나는 소송비용에다가 기존 전세보증금 대출 이자,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서 빌린 돈의 이자까지 여러모로 손해였다. 그래도 조정을 하면 빨리 사건을 마무리하거나, 강제집행을 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다만 임대인이 조정에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다. 이땐 다시 본안 소송으로 진행돼 판결을 기다려야 한다. 


조정을 받아들이자 조정위원의 환한 웃음이 아직도 기억에 난다. 전화 속 목소리만큼 실제도 아주 나이가 지긋하신 분이셨다. 70세는 거뜬히 넘었을 거 같은. 그러면서 마지막에 하신 말. "내가 딸 같아서 조정기일에 나오라고 했어요. 딸이 셋인데 우리 딸도 이런 일 겪을 수도 있잖아. 이자 몇 푼 안 하는데 우선 보증금부터 돌려받는 게 중요하지." 마지막에 주먹 하이파이브도 하고 나왔다...




<사라진 임대인>


1. 임대인이 사라졌다. 내용증명도, 법원에서 보내는 각종 서류도 잘 받던 임대인이 돌연 '폐문부재(집에 없음)' 상태로 바뀌었다. 시작은 내가 보낸 소송 청구취지 변경서 송달 때부터였다. 전셋집에서 이사를 나온 이후 지연 이자를 청구하려고 청구취지변경서를 냈는데, 이때부터 갑자기 임대인이 문서를 받지 않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는 다분히 고의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소송 청구 내용에는 지연이자가 없지만, 청구취지변경서가 송달되면 이자가 발생한다. 어떻게든 원금만 주고 지연이자 발생을 피하려는 '꼼수'로 읽힌다. 이후 조정기일 관련 법원에서 보낸 문서도 받지 않았다. 주소는 그대로인데 받질 않으니 우선 '특별송달'을 신청해뒀다. 낮뿐만 아니라 밤 주말 등 가리지 않고 송달하는 방식이라고 한다. 이후엔 상대방이 문서를 받지 않아도 받은 것으로 간주하는 '공시송달'을 진행할 예정이다. 


2. 전셋집은 부동산에 내놨는지 궁금해서 알아봤다. 어쨌든 집이 나가야 임대인도 나한테 돈을 돌려줄테니까. 역이랑 가깝고 집 상태는 괜찮은데 아마 임차권등기설정이 돼있어서 아직 안 나간 것 같았다. 임대인 대리인한테 연락해보니 원래 내놓은 가격보다 보증금을 낮췄다고 했다. 얼마인지 궁금해서 동네 부동산을 수소문해봤다. 두 번째로 전화했던 부동산에 매물이 있었는데 보증금이 2억500만원이었다. 내가 낸 보증금보다 한 600만원 정도 올린 거였다. 고작 600만원에 보증금을 안 내놓고 이 난리다. 




<쪼들리는 생활> 


1. 보증금을 못 받은 '덕분에' 아주 쪼들리는 생활을 하고 있다. 신용카드로 필요한 걸 다 사서 남친이나 나나 한 달에 카드값과 원리금을 더해서 각각 300만원을 넘게 내고 있다. 카드값이랑 원리금 내고 교통비 통신비 보험 등 필요한 것을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다. 원래도 영끌 매매였는데, 임대인 때문에 진정한 영끌의 삶을 살고있다. 


그래서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씩 임대인 욕을 한다. 생각난김에 오늘도 해야겠다. 너무 욕을 많이 하면 오래 살까 걱정되기도 하는데 어쩔 수 없다. 최근 몇 년 간 가장 큰 적이 생긴 거라 이 세상 모든 불행이 임대인에게 갔으면 하고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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