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보다

잘린 나무를 보니 눈물이 나

#나무 투쟁 1

by 작은별


한동안 살고 있는 빌라 단지만 들어서면 한숨이 절로 났다. 그것도 가슴속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깊고 깊은 한숨이


"휴..."


사건의 발단은 1년 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날 재택을 하던 와중이었던가. 집 밖에서 전기톱 소리가 났고, 밖이 부산스러웠다. 알고 보니 누군가 내가 살고 있는 동 앞에 있는 화단에 심어져 있던 나무를 가지치기하던 중이었다. '가지치기를 하는구나' 하고 넘겼다.


그랬는데, 사달이 났다. 며칠이 지났을까, 출근길 문득 주변을 살펴보니 나무들이 댕강 잘라져 있었다. 나무 둘은 일자 몸통만 남았다. 풍성했던 잎과 가지는 사라지고, 나무는 입고 있던 옷을 벗겨진 모양이 됐다. 계절마다 각기 다른 빛을 내던 동네는 빛을 잃었다. 봄에도, 여름에도, 가을에도 볼 수 있는 건 겨울 같은 나무였다. 나무들은 잎이 없고 꽃이 없고 발가벗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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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1997년에 준공된 집이다. 이곳에 있는 나무들도 이 건물만큼 나이를 먹었다. 거의 30년 가까이 이곳에서 수많은 계절을 견뎌왔다. 태어나 자란 사람들도, 잠시 머물다가 떠난 사람들도 나무들은 기억하고 있을 테다. 나는 여기에 이제 기껏해야 3년을 살았는데, 얘네는 나보다도 동네에 녹아든 추억들을 더 많이 알고 있을 거다.


나는 이 집을 처음 본 순간 반했다. 그전에 살던 전셋집은 다세대빌라로 가득 찬 동네였다. 그 흔한 나무 한 그루 보기가 어려웠다. 그나마 우리 집은 창문을 열면 저 멀리 하늘이 보이곤 했는데, 다른 사람들 집에서 보이는 건 아마 다른 빌라 건물뿐이었을 거다. 공원 하나 찾기 어려웠고, 길을 가다 보이는 나무라곤 사람들도 다니기 좁디좁은 인도에 힘들게 뿌리내린 가로수뿐이었다.


그래서 지금 집이 좋았다. 거실 베란다 창문을 열면 사계절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봄에는 1층 할머니가 마당에서 키우는 라일락이니, 장미니 여러 색과 향기를 뽐내는 꽃들을 볼 수 있었다. 단지 내에는 목련꽃도 참 예쁘게 폈다. 여름에는 온 빌라가 초록색 잎으로 뒤덮였고, 가을에는 알록달록 단풍을 볼 수 있었다. 겨울에도 가지만 남은 나무를 보며 다음 봄을 기다렸다.


우리 집 안방 큰 창으로 보이던 감나무를 나는 특히 좋아했다. 2층인 우리 집 창문 반쪽을 가득 메웠던 감나무. 나는 그 풍경에 반했다. 나무가 작은 열매를 맺기 시작해 초록색 감모양으로 바뀐다. 그리고 햇빛과 바람과 비를 맞으며 그 작았던 열매가 내가 아는 붉은 감으로 변한다. 가을에 주렁주렁 감이 열리고(주민들은 아무도 따먹지 않았는데), 그 익은 감을 먹으러 매번 까치들이 날아들었다. 우리 집 고양이들은 큰 창으로 감을 먹는 까치들을 바라보는 걸 좋아했다. 나는 아침마다 감나무 사이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이 좋았다. 그 햇살 사이로, 그리고 바람에 휘날리는 나뭇가지 사이에서 매일 잠을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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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자르지 마세요!"


자르지 말라는 내 말은 허공으로 퍼졌다. 감나무가 댕강 잘렸다. 말은 가지치기인데, 가지가 하나도 남지 않았다. 나무 몸통의 중간을 그대로 잘라버린 거다. 사람으로 따지면 머리카락을 자르는 게 아니라, 허리를 자른 것과 마찬가지다. 나는 그때부터 내가 사랑했던 그 풍경을 보지 못했다.


감나무뿐만 아니라, 우리 빌라의 많은 나무들이 댕강 잘려나갔다. 살고 있는 주민 허락도 없이 누군가 잘라버린 거였다. 범인을 찾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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