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에서 철학 강의를 들었을 때, 교수님께서는 이런 질문을 하셨다.
"자신의 좌우명이 무엇인가요?"
한 명씩 돌아가면서 자신의 좌우명을 얘기했고,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대답하였다.
"제 좌우명은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하자입니다."
좌우명을 들은 교수님은 의도하지는 않으셨지만, 다른 학생의 좌우명과 나의 좌우명을 비교하기도 하였다.
최선을 다하자는 나의 좌우명은 슬픔 끝자락에 서서 인생의 생사에서 버둥거리던 경험에서 나온 좌우명이었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은 이 좌우명을 듣고
너무 진부하다.
현실과 동 떨어졌다, 허무하다.
같은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들어도 최선을 다하자는 너무 진부한 말이기도 하다.
나는 죽음을 바랐던 적이 있었고,
시도까지 했었다.
그렇기에 인생의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게 되었고,
한 사람의 목숨이 얼마나 존귀한지 느낄 수 있었다.
살아가다 보면 나와 알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극단적인 선택으로 죽음을 맞이하기도 하고,
건강해 보였던 사람이 한순간 쓰러져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상태가 되기도 한다.
사실 우리에게는 언제든지 죽음이라는 인생의 끝이 찾아온다.
나는 대게 평범한 사람들보다 그 죽음을 많이 생각했기에 그 사실을 망각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렇기에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고 있다.
이 모든 것에는 아주 사소한 것도 포함된다.
내 입에서 내뱉는 말, 누군가와의 관계, 내가 겪는 모든 상황 이런 것들.
처음 마주한 사람은 인생을 살아가다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른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도 최선을 다한다.
내가 뱉는 모든 말들이 어떤 사람에게는 상처가 될지도 모르니,
사소하기도 하고, 언제나 내 곁에 있을 거라고 여겼던 사람들과의 관계가 언제 끊기게 될지 모르니,
괜찮다 생각하며 대충 처리한 일이 사실은 아주 크고도 깊은 구멍을 가져올지 모르니 말이다.
이렇게 최선을 다하는 삶이 피곤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할 테다.
물론,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하는 건 피곤한 일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을 위해 가끔은 침묵을 유지하기도 친절의 말을 하기도 했기에 좋은 평판을 얻을 수 있었고, 나의 인간관계가 정리되기도, 어떠한 큰 행운을 불러오기도 했었다.
만약 내가 내일 당장 밝은 햇빛을 보지 못하고, 늘 듣던 음악을 듣지 못하는 날이 오게 된다면.
우리는 남은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선을 다하는 삶은 때론 진부하기도, 피곤하기도, 가끔은 그런 사람과는 친해지고 싶지도 않을 수 있다.
그렇다고 우리는 우리의 삶을 대충 살아도 되는 것일까?
물론, 모든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최선과 나의 몸을 혹사시키며 하는 최선은 좋지 않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정도를 잘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100이라는 최선의 강도가 있을 때,
어떤 사람은 90이 되기도,
어떤 사람은 10의 강도만 생각하기도 한다.
이건 각자의 선택과 생각에 따라 다르다.
우리는 우리만의 최선을 정도가 넘지 않는 선까지 지키며 하루하루를 살아야 할 것이다.
최선을 다하지 않은 하루가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다.
아주 사소하다고 여긴 것에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 그 작은 것이 큰 행운을 불러와 나의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