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다 보면 도피하지 말고 맞서 싸워라, 회피하지 말고 문제를 직면하라 같은 말들을 한 번쯤은 들어보고는 한다.
물론, 본인이 잘못한 일이기에 도피하지 마라, 회피하지 마라 같은 말을 하기도 하고,
어떠한 부도덕적인 행동을 한 사람에게 말하기도 한다.
본론에 들어가기 앞서 필자는 이런 부도덕적이고, 자신의 잘못을 피하기 위해 도피와 회피를 선택하는 사람들을 위해 쓰는 글은 아니라는 점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는 때로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억울한 상황에 놓여있을 때가 있다.
예를 들자면,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자신의 잘 못이 아닌 일로 몇몇의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이 예시는 필자가 겪은 일이었다.
비록 몇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한 회사에서 겪은 일이었다.
그 당시 고등학생이던 나는 한 회사에 현장 실습생이었다.
회사에 들어온 지 이주일이었을 때, 그때만 해도 정식적인 자리가 생긴 지 일주일이 되었을 무렵이었고, 내가 맡아야 할 업무를 배운 지 하루가 지났을 무렵이었다.
다른 팀의 사원이 실수를 해서 그 팀의 대리가 대신 대표에게 가서 꾸중을 듣고 나오는 길에,
하필이면 내가 눈에 띄었는지 나에게 다가왔다.
"OO 씨는 회사에 들어온 지 이주일이나 됐으면 이제 자신의 업무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지금 OO 씨 때문에 다른 사람들까지 욕을 먹어야 하잖아. 이주일 됐으면 자신이 70%는 다 할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때의 나는 내 업무를 배운 지 하루가 되었고, 다른 사람을 욕먹일만한 잘못을 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나의 팀원들도 모두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사수도 팀장도 그 누구도 나의 상황을 얘기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이런 얘기를 듣고 나면 몇몇 사람들은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자신의 상황을 본인의 입으로 직접 얘기하면 되는 거 아닌가?
이 생각을 하고 있는 당신의 의견도 옳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주일간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 모든 걸 듣게 된다면 그런 생각은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나는 채 한 달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의 현장 실습을 마치게 되고, 근로계약을 하지 않은 채 그 회사에서 나오고 말았다.
이 긴 이야기를 왜 하는지, 이 이야기가 도피와 회피랑 무슨 상관인지 궁금할 것이다.
필자는 그 회사를 나오고 난 후, 한 달도 되지 않아 몸과 정신이 모두 망가지고 말았다.
버티고 버티다 못해 정말 죽을 것 같을 때 상담센터를 찾았고, 정신의학과를 찾게 되었다.
그곳에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된다.
"우울증, 대인기피증, PTSD, 공황장애, 불안증세가 아주 심각합니다. 겪으셨던 일들이 트라우마로 남아 어느 회사를 가든, 회사가 아닌 그와 비슷한 상황을 겪게 되어도 지금처럼 힘들 겁니다."
그렇게 몇 달을 집에서 나오지도 않은 채 지내고 있을 때,
부모님은 다시 일이라도 구하든, 뭐라도 했으면 하셨었다.
초 ~ 고등학교를 다니며 대학 생활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나는 그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어서, 회피하고 싶어서 대학교를 들어가게 되었다.
대학교에서도 마냥 편했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진단받은 질환들은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필자는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도피와 회피가 마냥 나쁜 것은 아닐 것이라고.
목숨을 잃을 뻔한 상황을 마주한 나는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
인생을 살다 정말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내 눈앞에 보인다면, 도피와 회피는 도움이 된다는 것.
혹여 회사 생활을 하다가 현장 실습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마주치게 될까 봐, 그와 비슷한 사람과 다시 그와 비슷한 상황을 겪게 될까 봐 나는 대학교로 몸을 숨기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렇게 숨은 대학 생활은 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조금이나마 나를 조금이라도 그 아픔에서 벗어날 수 있게 만들어 줄 것이고,
죽을 만큼 힘들고 아팠던 그 과거를 마주 볼 수 있도록 단단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인생에 도피와 회피는 중요하다.
도피함으로써, 회피함으로써
나의 아픔을 나의 상황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인도해 줄 것이고,
조금 더 성장한 내가 그때의 나를 보듬어줄 것이다.
그리고, 긴 시간이 흐른 후에 나는 그 모든 상황에 맞설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정신적으로 힘들다면, 도저히 버티기 힘든 상황에 놓여있다면
때로는 도피도 해보고, 회피도 해보는 게 어떨까.
물론 도피와 회피가 습관이 되면 안 되겠지만,
한 번쯤은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숨어도 된다.
숨었다면, 이제는 나를 보듬어주고 그 깊은 상처가 나아질 수 있게 끔 돌봐주자.
그리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자.
이 모든 것들이 나를 더욱더 단단하고, 견고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적어도 필자는 그렇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