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칭하자마자 미국 홈쇼핑에서 8분 만에 1,000여 개의 세럼을 판매한 화장품 브랜드가 있습니다. 같은 해 그 브랜드의 한 제품은 세포라에서 1천여 개가 넘는 제품들과 경쟁해 당당히 2등을 차지하기도 했죠.
2015년 론칭한 미국 뉴욕의 화장품 브랜드 파머시(Farmacy)의 이야기입니다.
파머시는 우연한 계기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어요. 파머시의 공동창업자 중 한 명인 마크 비더(Mark Veeder)는 오랫동안 가드닝을 해왔는데요. 하루는 자신의 뉴욕 농장에서 초록색 꽃을 발견하게 됩니다. 마크 비더는 오랜 가드닝 경험으로 꽃이 초록색인 경우는 굉장히 드물다는 걸 알고 있었죠. 이 꽃에 뭔가 있다는 걸 직감한 그는, 원예 연구소에 꽃의 분석을 의뢰합니다.
분석 결과, 그 꽃은 새로운 종류의 에키네시아(Echinacea Purpurea)였습니다. 에키네시아는 북미 원산지의 국화 종류의 꽃인데요, 항산화 성분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 미국에서 오래전부터 만병통치약으로 불려 왔다고 해요.
그런데 그 초록색 에키네시아는 일반 에키네시아보다 항산화 성분이 무려 300%나 더 많았던 거죠. 항산화 성분은 노화를 방지하고 몸을 건강하게 유지시키는 역할을 하는 중요한 물질이에요. 마크 비더는 그 초록색 꽃에 대한 특허를 등록하고, '그린 엔비(Green Envy)'라는 이름으로 상표권까지 등록합니다. 이로써 그린 엔비는 파머시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독점적인 원료가 됐죠.
이 그린 엔비는 파머시 모든 제품의 기초가 되면서, 다른 브랜드와 파머시를 차별화시켜요. 그린 엔비는 피부 노화 방지와 피부 탄력에만 효과가 있는 게 아니고, 미백으로 가장 유명한 성분인 알부틴(Arbutin)보다도 피부 미백에 효과적이라고 하죠. 파머시 입장에선 정말 기특한 원료가 아닐까 해요.
농장에서 발견한 꽃 이야기에서 항산화 성분, 그리고 알부틴과의 비교까지, 시작은 자연(Nature)이었으나 나중에는 과학적인 언어로 제가 파머시라는 브랜드를 소개했죠. 파머시의 컨셉 역시 이와 같습니다.
농부가 수확하고, 과학자가 연구 개발한(Farmer Cultivated, Scientist Activated) 뷰티 브랜드가 파머시의 컨셉이에요.
시장 조사를 하던 당시 파머시에서는 미국 소비자들이 자연에서 온 성분을 쓰는 자연주의 화장품에 점점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음과 동시에, 자연주의 화장품의 효능에 대해서는 실망하는 경우가 꽤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해요. 자연 유래 성분을 쓰려면 화학 성분을 쓸 때만큼의 효과는 포기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을 정도였다고 하죠.
파머시는 그러한 기존의 자연주의 브랜드와 차별화되길 원했어요. 그래서 파머시는 농장에서 온 신선한 화장품이라는 자연의 느낌은 그대로 살리면서도, 임상실험 등의 과학적인 방식을 통해 객관적으로 효능이 있는 화장품을 만들게 되죠. 이로써 자연 유래 성분에 매력을 느끼는 소비자뿐만 아니라, 피부에 효과적인 화장품을 찾는 소비자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있게 됩니다.
하나의 메시지만 커뮤니케이션하는 것도 어려운데 파머시는 두 가지를 동시에 전달하고 있는 건데요. 파머시는 자연스럽고 성공적으로 해내고 있는 중입니다.
파머시의 전개에 있어 가장 눈에 띄는 건, 다른 뷰티 브랜드에 비해 독보적으로 빠른 론칭 속도를 보여줬다는 점이에요. 파머시는 2015년 가을 론칭했는데 이는 최초 컨셉이 도출된 지 1년도 안 된 시점이었죠.
게다가 준비 기간 동안 제품만 만든 것도 아니에요. 론칭 전부터 PR, 마케팅도 꾸준히 했고, 유통채널과도 합의를 끝내서, 브랜드가 나오기도 전에 인지도를 많이 높여놨거든요. 파머시는 이런 사전 작업 덕분에 거의 론칭하자마자 미국 홈쇼핑 채널 큐브이씨(QVC)에서 바로 방송을 하기도 했죠.
마크 비더는 그 기간 동안 파머시 사업만 한 것도 아닙니다. 본업과 파머시 사업을 병행했어요. 그 와중에 남편과 함께 대리모를 통해 어여쁜 두 딸을 낳기도 했고요.
마크 비더가 이렇게 빠르고 성공적으로 브랜드를 론칭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요? 그건 바로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한 덕분으로 보입니다.
일단 마크 비더는 마케팅과 브랜딩을 맡았습니다. 그 분야 전문가거든요. 마크 비더는 1990년대부터 PR 업계에서 커리어를 쌓기 시작했는데요. 현재도 마찬가지지만, 브랜드 론칭 준비 당시에도 마케팅·PR 에이전시 브이씨플러스피(VC+P)를 운영해오고 있었습니다. 케이트 스페이드 홈(Kate Spade Home), 알레시(Alessi)등의 럭셔리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마케팅을 마크 비더가 했었죠.
하지만 마크 비더는 화장품 업계에는 문외한이었고, 농업 분야에도 전문성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손을 잡았죠.
먼저 소규모로 생산해왔던 그린 엔비 농장을 상업적 규모로 키우기 위해 로버트 베이퍼스(Robert Beyfuss)와 함께 했어요. 로버트 베이퍼스는 코넬대학교 출신의 은퇴한 농업 전문가였는데요. 덕분에 파머시의 그린 엔비 농장을 대규모로 확장할 수 있게 됐어요.
또 화장품 분야의 전문가이자 성공한 재미교포 사업가 데이빗 정(David Chung)과도 함께 했죠. 데이빗 정은 현재 코스메카코리아에 매각된 잉글우드랩(Englewood Lab)의 창업주였어요. 잉글우드랩은 화장품 OEM, ODM 전문회사로 100여 개 스킨케어 브랜드의 제품 개발과 생산을 해온 곳이었고요. 이로써 마크 비더는 화장품 R&D, 개발 및 생산 분야에도 든든한 파트너를 얻게 됐습니다.
캐롤라인 파브리가즈(Caroline Fabrigas)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클라란스(Clarins)를 비롯한 글로벌 뷰티 브랜드 업계에서 20여 년간의 경험을 쌓은 능력자였죠. 캐롤라인 파브리가즈와 함께 글로벌 화장품 전문 매장 세포라(Sephora)와 미국의 유명한 홈쇼핑 채널 큐브이씨(QVC)에도 성공적으로 브랜드를 피칭하게 되면서, 이 두 유통채널 역시 파머시의 긴밀한 파트너로 자리 잡죠.
특히 세포라는, 세포라 임원이 파머시라는 브랜드 이름을 지어주었고, 세포라에서 제품과 패키징 개발에도 함께 참여했을 정도로 굉장히 긴밀하게 파머시와 일해 왔어요. 파머시는 큐브이씨와 자사몰, 그리고 매출보다는 상징적 의미로 파머시 제품을 취급하던 작은 샵 한 군데를 제외하면 세포라에만 3년 가까이 브랜드를 독점 유통했죠.
유통채널과 긴밀히 협업하면서, 그들의 인프라를 토대로 파머시는 더 빠르게 소비자들 사이에서 인지도를 높이게 되죠. 마크 비더가 VC+P를 통해 파머시의 마케팅과 PR을 체계적으로 해온 것 역시 인지도 향상에 큰 몫을 했음은 물론이고요.
현재 파머시는 유럽 13개국, 캐나다, 호주, 싱가포르 등에 소재한 세포라에 입점하는 등 명실공히 글로벌 브랜드가 되었어요. 우리나라에도 2018년 가을 론칭해 면세점과 시코르 등에서 브랜드를 전개하고 있죠.
파머시는 우리나라와 관련이 깊기에 더 친근하고 매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해요. 파머시의 공동창업자이자 파머시 코리아 대표이기도 한 데이빗 정은 재미교포이고, 캐롤라인 파브리가즈는 한 인터뷰에서 케이뷰티(K-Beauty) 영향을 받아 마스크팩 제품을 출시했다고 밝히기도 했죠. 파머시의 브랜딩과 패키지 디자인을 함께 진행하기도 했던 아트 디렉터 역시 우리나라 사람이고요.
파머시의 대표 상품인 그린 클린은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를 얻는 중인데요. 순한 성분에 사르르 녹는 듯한 텍스처와, 그에 대비되는 어마어마한 클렌징 효과, 그리고 좋은 향기와 예쁜 패키징까지, 누구나 한 번쯤은 써보고 싶어 할 만한 화장품이에요.
써보고 싶은 매력적인 화장품들로 가득한 브랜드 파머시. 파머시가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더 사랑받는 브랜드로 자리 잡아갈지 기대되고, 응원하게 되네요.
※ 이 글은 제가 티알앤디에프에 외부필진으로서 작성한 글입니다. 무단 전재나 재배포는 금지됩니다. 즐겁게 읽어주셨으면 좋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