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경 Jun 10. 2019

로라 메르시에(Laura Mercier) 브랜드 스토리

로라메르시에(Laura Mercier)는 우수한 품질로 입소문 난 화장품 브랜드입니다. 이제는 여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 봤을 만한, 인지도 높은 명품 브랜드로 당당히 자리 잡은 곳이죠.             


소장하고 싶은 제품이 가득 ©로라메르시에 인스타그램

 

1996년 뉴욕에서 론칭한 이래 로라메르시에는 뷰티 업계에 크고 작은 파장을 몰고 오며 꾸준히 성장해 왔습니다. 2016년에는 화장품 기업 세계 5위인 시셰이도(Shiseido) 그룹에 약 3천억 원 정도로 인수되었다고 알려지기도 했죠. (사실 리바이브(ReVive)라는 브랜드와 로라메르시에가 함께 인수되었는데, 로라메르시에 비중이 대부분이었다고 하네요.)




예술학도를 꿈꾸던 메이크업 아티스트, 로라 메르시에


브랜드 로라메르시에는 사람 이름이기도 합니다. 프랑스 출신 메이크업 아티스트 로라 메르시에(Laura Mercier)가 동명의 브랜드를 론칭한 거죠.


메이크업하는 로라 메르시에 ©로라메르시에


그런데 로라 메르시에의 인터뷰에 따르면, 그녀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화장품 창업주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로라 메르시에는 학창 시절 자신을 ‘구석에 앉아서 그림 끄적대길 좋아하는 미운 오리 새끼’ 같은 아이였다고 표현하죠.


그녀는 어릴 때 천식을 앓았던 탓에 뚱뚱했습니다. 게다가 로라 메르시에의 어머니는 아이에게 제대로 사랑을 주는 법을 잘 몰랐다고 해요. 이 두 요인 탓에 로라 메르시에는 어릴 때부터 자존감 부족에 시달렸습니다.


로라 메르시에는 1960년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예술쪽에 관심이 많아 대학에서도 미술을 전공했죠. 그런데 막상 학위를 마치고 나니 예술로 밥벌이 하기가 너무 힘들었던 거예요.


카리타 미용학교 ©사진작가 라펠 페이지스(Raffel Pages)


마침 어머니는 로라 메르시에에게 메이크업을 배워보라고 조언했고, 그녀는 이를 받아들여 당시 최고 권위를 자랑하던 파리의 카리타 미용학교(Carita Beauty Institute)에 입학합니다. 예술적인 재능이 있던 로라는 메이크업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졸업과 동시에 카리타 미용학교에서 강의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6년간 파리에서 메이크업 아티스트로서의 커리어를 쌓아 나가죠.


그렇게 파리에서 근무하다 그녀는 뉴욕으로 근무처를 옮깁니다. 그리고 뉴욕에서 세계적인 패션 포토그래퍼 스티븐 마이젤(Steven Meisel)과 함께 일하게 되죠. 로라는 스티븐과 일하면서 크게 성장했지만 한편으로는 숨막히게 바쁜 생활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스티븐의 노예가 되어야 했다’고 로라는 그 시절을 회상하죠. 새벽 2시든 새벽 4시든 촬영이 있으면 촬영장에 반드시 있어야 했기에, 로라 메르시에는 당시 휴가를 가기는 커녕 아플 수조차 없었다고 해요.


(좌) 스티븐 마이젤 (우) 마돈나 ©스티븐 마이젤


그런데 그 끔찍하게 바쁜 생활이 로라 메르시에는 싫지만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촬영장에서는 본인이 뚱뚱한지 자존감이 부족한지 전혀 신경쓸 필요가 없었으니까요. 거기서 중요했던 건 로라 메르시에가 하는 메이크업이었지, 로라 메르시에라는 사람 그 자체가 아니었거든요. 그녀가 자신의 일에 완벽하게 몰입한 덕분에 그녀의 메이크업은 매번 완벽하다는 칭찬을 들었죠. 그녀의 부족했던 자존감은 점점 채워졌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면서 로라 메르시에는 점차 그녀만의 메이크업 스타일을 정립해 나가게 되는데요. 로라 메르시에가 메이크업을 시작했던 1970년대에는 화보 촬영을 스튜디오에서 했다면, 1980년대 트렌드는 야외 촬영이었습니다. 모래사장, 바다 위에서 자유롭게 뛰노는 모습을 촬영해야 하는데, 모델이 스튜디오에서나 할법한 두꺼운 화장을 하고 있으면 어색하잖아요.


결국 화장을 한듯 안 한듯 자연스러우면서도 피부 결점은 가리는 메이크업을 해야 했죠. 로라 메르시에는 이러한 메이크업을 하기 위해 ‘카뮤플라지(Camouflage) 메이크업’에서 아이디어를 얻습니다. 카뮤플라지 메이크업은 화상 입은 환자의 상처를 가리기 위해 성형외과 의사들이 개발한 것이었는데, 당시 연극 배우들만 무대용으로 이 메이크업을 했다고 합니다.


카뮤플라지 메이크업 전후의 셰리 린세이(Cheri Lindsay) ©더마블렌드(Dermablend)


로라 메르시에는 카뮤플라지 메이크업을 위한 두껍고 드라이한 컨실러를 전문 샵 어딘가에서 발견하고 그걸 메이크업에 활용합니다. 그 때부터 그녀는 ‘자연스러우면서도 완벽한 얼굴(flawless face)’을 만들어주는 메이크업에 집중하게 되죠.


그러면서 그녀는 시장에 공백이 있음을 느꼈습니다. 꼭 필요한데 시중에 없는 제품이 로라 메르시에 눈에 보였던 거죠. 예를 들면 카뮤플라지 메이크업을 할 수 있는 제품도, 메이크업을 하기 전에 피부에 발라서 모공을 메우는 프라이머(primer)라는 제품도 모두 시중에 없었거든요. 당시 그녀는 프라이머 대용으로 미네랄 오일 기반의 원료를 리터째로 가져와서 자체적으로 프라이머를 만들어 쓰곤 했습니다.


로라 메르시에가 메이크업한 마돈나 ©마돈나 뮤직비디오 테이크 어 바우(Take a Bow)


또 한편으로는 로라 메르시에는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메이크업 아티스트로서의 커리어에 대한 불안감이 생겼다고 합니다. 마돈나, 머라이어 캐리, 셀린 디온, 사라 제시카 파커 같은 톱스타의 메이크업을 해온 정상급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자리 잡았는데도 말이에요.


왜냐하면 리터칭 기술이 발달하면서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실력이 옛날만큼 뛰어날 필요가 없어졌거든요. 게다가 톱스타의 메이크업을 담당하는 일은 너무 고됐어요. 예를 들면 머라이어 캐리의 뮤직비디오는 27시간 논스톱으로 촬영되기도 했는데, 그 27시간 내내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가수 옆에 항시 대기해야 했죠.


그러다 로라는 재닛 거위치(Janet Gurwitch)를 만나게 됩니다.





성공한 비즈니스 우먼, 재닛 거위치


재닛 거위치 ©카스타니아 파트너스(Castanea Partners)


재닛 거위치는 성공적인 커리어 우먼이었습니다. 미국 앨라배마 대학에서 유통(retail)으로 학위를 받고, 폴리스(Foley’s) 백화점에 입사해 18년간 일하면서 상무급까지 승진한 인재였죠.


1992년 재닛 거위치는 고급 백화점 체인 니만마커스(Neiman Marcus) 부사장으로 이직하면서 화려한 커리어를 이어 나갑니다. 조지오 아르마니 같은 탑 디자이너들과 만나고, 비행기 일등석에 최고급 호텔과 전용 운전기사까지, 그녀의 삶은 성공한 비즈니스 우먼의 인생 그 자체였달까요. 재닛 거위치의 꿈은 니만마커스의 첫 여성 CEO가 되는 것이었고, 실현 가능성도 매우 높았습니다.


고급 백화점 니만 마커스 ©찰스 스파크스 컴퍼니


하지만 그녀는 1995년, 그 기회를 뒤로 하고 화장품 브랜드를 창업하기로 마음 먹습니다. 화장품 시장이 큰 변화를 앞두고 있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죠.


그 전까지 뷰티 시장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고 해요. 에스티 로더 같은 전통적인 브랜드들이 꾸준히 시장을 지배하고 있었고, 여성들은 수학 공식처럼 똑같은 메이크업을 했었죠. 그런데 전통적인 브랜드가 아닌 1991년에 출시된 신생 브랜드 바비브라운(Bobbi Brown)이 니만마커스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던 거예요.

재닛 거위치는 바비브라운만 특별히 인기 있나 보다 생각했는데, 런던으로 넘어가니 하비니콜스(Harvey Nichols)라는 백화점에서도 1980년대 중반에 론칭한 신생 브랜드 맥(MAC) 매장에 젊은 여성들이 가득 몰려 있었던 거죠.  


게다가 이 브랜드들이 내세우는 가치는 기존 브랜드와 확연히 달랐어요. 여성들에게 획일화된 메이크업, 획일화된 아름다움을 주입시키는 게 아니었거든요.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모습을 끌어내는 자연스럽고 개인화된 메이크업을 추구했던 거죠.              


바비브라운 창업주이자 메이크업 아티스트, 바비 브라운 ©로컬 커피 몽클레어(Local Coffee Montclair)


2000년대에는 바비브라운과 맥 같은 새로운 브랜드들이 시장을 압도할 것이라 직감한 재닛 거위치는, 만 42세의 나이에 창업을 하기로 마음 먹어요. 바비브라운과 맥처럼, 메이크업 아티스트 기반의 프레스티지 화장품 브랜드를 론칭하기로 한 거예요.


그럼 이제 함께 할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골라야겠죠? 재닛 거위치는 보그(Vogue), 얼루어(Allure) 등 유명 매거진의 뷰티 에디터들로부터 미국 최고의 메이크업 아티스트들 연락처를 받아요. 그리고 그 중 5명을 만나보기로 하죠.


그 5명 중에 로라 메르시에가 있었어요. 그런데 다른 메이크업 아티스트들과는 달리 그녀는 만들고 싶은 화장품이 이미 뚜렷하게 있었고 이미 만들려는 시도도 해봤던 상태였던 거예요.


로라 메르시에가 만들길 원했던 카뮤플라지 제품의 현재 모습 ©로라메르시에 인스타그램


로라 메르시에의 뷰티에 대한 철학과 제품 아이디어에 매료된 재닛 거위치는, 로라 메르시에에게 화장품 브랜드를 함께 만들자고 제안하죠. 그리고 그로부터 1여년 뒤인 1996년 3월, 로라메르시에 화장품 브랜드가 론칭했어요.




로라메르시에의 실수와 성공


로라 메르시에 제품들 ©로라메르시에 인스타그램


로라메르시에 제품은 출시하자마자 인기를 끌었어요. 프라이머, 파운데이션, 카뮤플라지 컨실러, 그리고 세팅 파우더 4가지 제품을 미국의 고급 백화점에 론칭했는데요. 기존에 꼭 필요했는데 없었던, 시장의 공백을 메운 상품이었고 품질 또한 우수했기에 로라메르시에의 제품은 성공적으로 판매되기 시작했고 큰 굴곡 없이 성장해 나가요.


하지만 로라메르시에가 늘 탄탄대로만 걸었던 건 아니에요. 재닛 거위치에 따르면 로라메르시에는 론칭 초반에 두 가지 실수를 저질렀어요.


첫 번째 실수는 ‘무분별한 입점’이었어요. 프리미엄 브랜드가 대중적인 판매처에 들어가며 실패를 맛본 거죠. 로라메르시에는 프레스티지 브랜드였는데도 불구하고, 대중적인 백화점인 메이시스(Macy's)에서 입점을 제안하자 거절하지 못하고 매장을 서른 개 오픈했어요. 하지만 타겟 고객군이 달랐던 탓에 매출은 저조했고 결국 입점한지 2년만에 매장을 모두 철수하죠.


메이시스 백화점. 니만마커스와는 느낌이 다르죠. ©포춘(Fortune)


두 번째 실수는 ‘겉모양에 신경쓰지 않은 것’이었어요. 재닛 거위치와 로라 메르시에는 처음에 훌륭한 제품을 만드는 데에만 집중한 나머지 로고나 패키징에는 신경을 거의 쓰지 못했다고 해요. 로고(logo)로는 로라 메르시에의 사인을 사용했는데, 올드한 느낌이 나서 모던한 브랜드 컨셉과 어울리지 않았죠. 게다가 패키징은 너무 못생긴 나머지 손님들이 제품을 쓰면서도 패키징을 숨길 정도였어요.



초기의 로라 메르시에 제품들. 확실히 올드하죠. ©로라 메르시에


두 번째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로라메르시에는 브랜딩 에이전시를 고용해서 로고를 현대적으로 바꾸고, 흔한 검은색 패키징 대신 브라운 색을 쓰면서 리브랜딩을 해요. 그리고 전 매장의 모든 로라메르시에 제품을 하룻밤만에 모두 교체해버리죠.  


다만 이 과정에서 돈이 수십억원은 필요했기에, 1998년 말 니먼마커스에 로라메르시에 지분 51%를 70억원 정도에 팔게 돼요. 당시 로라메르시에의 연매출은 100억원 정도였고요.


다행히 패키징을 바꾼 직후 3개월 동안 매출은 3배 이상 뛰었어요. 그리고 그 이후에도 성장을 거듭해 2015년에는 연매출 1,800억원의 브랜드가 되죠.


로라 메르시에(좌) 자넷 거위치(우) ©에이이월드(AE World), 앨라배마대학(University of Alabama)


공동 창업주 로라 메르시에는 브랜드가 시세이도 그룹에 매각된 후에도 여전히 브랜드 운영에 깊게 관여하고 있어요. 로라메르시에 제품들이 세련되면서도 높은 퀄리티를 계속적으로 유지하는 데에는 그녀의 공이 클 거예요.


또다른 창업주 재닛 거위치는 2006년에 암웨이(Amway)의 자회사 알티코어(Alticor)에 로라메르시에 지분을 모두 매각한 뒤 사모펀드에서 일하고 있죠. 어반디케이(Urban Decay), 퍼스트에이드뷰티(First Aid Beauty), 달러 쉐이브 클럽(Dollar Shave Club) 등에 성공적으로 투자하면서 이제는 뷰티 브랜드 투자자로서 이름을 날리는 중이에요. 재닛 거위치는 우리나라 기업 미미박스의 투자자 겸 자문위원이기도 해요.



매트 아이 컬러 진저 ©로라 메르시에 코리아




로라메르시에 제품 중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건 진저 색상의 매트 아이섀도일 거예요. 일상생활할 때 무난하게 쓰기 좋으면서도 색감이 우아하고 분위기 있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인생템’으로 사랑받고 있죠. 고운 입자 덕에 바를 때도 기분이 좋아진답니다. 꼭 한번 써보시길 추천해요.



※ 이 글은 제가 티알앤디에프 외부필진으로서 기고한 글입니다. 무단 전재나 재배포는 금지됩니다. 즐겁게 읽어주셨으면 좋겠네요! :)


매거진의 이전글 뉴욕 농장에서 시작된 글로벌 뷰티 브랜드, 파머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