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계의 에르메스라는 별칭이 있을 만큼 프리미엄한 이미지이면서도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브랜드. 바로 조 말론 런던(Jo Malone London)입니다.
한 때 우리나라에서 열풍이라고 느낄 만큼 조 말론 런던에 열광할 때가 있었습니다. 수많은 고급 향수 브랜드가 나온 지금도 조 말론 런던은 누구나 한 번쯤 갖고 싶은 럭셔리 향수 브랜드로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죠. 그런데 조 말론 런던의 창업주 조 말론(Jo Malone)은 사실 굉장히 가난한 집안의 장녀였습니다.
조 말론은 1963년 영국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습니다. 아버지는 도벽이 있는 데다 집을 나가서 며칠간 안 들어오기 일쑤였죠. 어머니는 아버지를 대신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에 일하느라 바빴습니다. 자연히 집안일과 동생을 돌보는 일은 모두 말론의 몫이 되었습니다. 무려 10살일 때부터 말이죠.
“앞으로도 인생을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번 돈 모두를 먹는 데 쓰고, 내일은 먹을 것이 없을까 봐 걱정하는 삶이었다”라고 조 말론은 그녀의 어린 시절을 회상합니다.
하지만 힘들었던 그녀의 어린 시절은 그녀의 성공 기반이 됩니다. 피부관리사였던 어머니의 일을 도우면서 말론은 자연스레 피부관리사, 더 나아가 화장품 제조의 길을 걷게 되었고, 그러다 향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니까요. 화가였던 아버지와 함께 거리에 나가서 미술작품을 팔면서 마케팅과 세일즈에 대한 감각을 어릴 때부터 익히게 되기도 했고요.
조 말론의 어머니는 처음에 생계를 위해 레브론(Revlon)에서 네일 아티스트로 일을 하다, 실력을 인정받아 마담 루바티(Madame Lubatti)가 운영하는 유명한 피부관리실에 취직하게 되죠. 리셉션 직원부터 시작한 그녀는 뛰어난 실력과 열정으로 뷰티 테라피스트로 일하게 됩니다. 조 말론은 어머니를 도와 11살 때부터 페이셜 크림을 만들기 시작했고요.
마담 루바티가 세상을 떠나기 전 그녀는 조 말론의 어머니에게 40여 년간의 경험을 담은 스킨케어 제품 제조 레시피를 전수합니다. 조 말론의 어머니는 그간의 경험과 레시피를 토대로 본인의 피부관리실을 열어 운영하게 되죠.
조 말론은 그런 어머니를 도와 스킨케어 제품들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다 어머니가 신경 쇠약으로 쓰러졌는데, 그때 그녀는 어머니 대신 페이셜 크림을 만들고 납품하면서 어머니의 피부관리실을 정상적으로 운영해나가는 수완을 발휘합니다. 21살부터는 어머니 샵의 지분을 정식으로 나눠가지면서 진짜배기 공동 대표로 함께 일하게 되고요.
하지만 이후 조 말론의 어머니는 뇌졸중으로 또 한 번 쓰러지게 됩니다. 그리고 뇌졸중 이후 그녀의 어머니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리고 말았죠. 조 말론이 하는 행동 하나하나를 트집 잡고 싫어하게 되었거든요. 어머니가 말론의 얼굴에 페이셜 크림을 던져버린 어느 날, 그녀는 어머니로부터 독립하기로 결심합니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스물다섯이었습니다.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일하던 시절 알게 된 고객 중 12명에게 연락을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집에 방문해 피부관리를 시작하죠. 첫 12명은 22명, 나중엔 50명으로 늘어났고, 말론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런던 곳곳을 오갔습니다.
스케줄이 너무 타이트해지자 조 말론은 첫 번째 큰 도전을 하게 됩니다. 바로 피부관리실을 차리는 것이었죠. 자금 문제로 독립된 샵을 차릴 수는 없었고, 방 하나 있는 집을 렌트해 그곳을 그녀의 집이자 피부관리실로 꾸미게 되죠.
그녀의 피부관리실은 깨끗하면서도 고상하고 편안한 느낌이었어요. 스툴, 소파, 조명 색깔을 모두 하얀색으로 통일했고, 테이블 위에도 백장미를 꽂아 놓았죠. 그리고 좋은 향기로 공간을 가득 메웠습니다. 레몬, 로즈메리 향이 아로마 캔들과 은은하게 어우러지며 감각적인 향을 만들어냈죠. 여기에 조 말론이 직접 만든 스킨케어 제품들과 그녀의 섬세한 손길이 더해졌습니다.
사람들은 그녀의 피부관리실에서 받은 느낌을 잊지 못했습니다. 입소문을 타고 금방 고객이 몰려들었죠. 그녀가 만든 스킨케어 제품들 역시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고요. 그중에서도 터닝포인트가 되었던 건 생강과 너트맥을 담은 목욕용 오일이었습니다. 몇 년이 지나자 크리스마스 즈음에는 수백 병을 만들어야 할 정도였죠.
그렇게 피부관리와 스킨케어 제품으로 유명세를 떨치던 조 말론은 서른 살이 되던 해인 1993년, 그녀는 그녀의 스킨케어 제품들 중에서 '향'만을 떼어내 향수로 만들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무작정 프랑스로 건너가죠. 프랑스에서 조향을 배우며 조 말론은 여러 가지 향기의 제품들을 고객들에게 선보이기 시작합니다.
고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그녀의 집 겸 피부관리실은 제품으로 가득 차서 화장실도 편하게 이용하지 못할 정도가 되었죠. 이 시점에 조 말론은 두 번째 큰 도전을 감행합니다. 1994년 10월, 조 말론은 그녀의 첫 향수 가게이자 향수 브랜드 조 말론 런던을 론칭했습니다.
조 말론 런던의 성공 비결
조 말론 런던은 론칭 이후 가파른 성공 가도를 달렸습니다. 개점한 지 1년도 안 된 시점에 5년 치 목표 매출을 달성했고, 1998년 미국에 진출한 뒤 반년도 되지 않아 11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죠. 그리고 1999년 조 말론 런던은 에스티로더 그룹에 수십억 원에 인수됩니다.
가장 큰 건 탁월한 제품력이었습니다. 놀라울 정도로 뛰어난 조 말론의 후각 능력 덕분에 그녀가 만드는 향수는 말 그대로 향기로웠습니다. 2017년 영국의 의학 탐지견 센터(Medical Detection Dogs)에서 진행한 한 실험에 따르면, 조 말론은 일반 사람들의 1,000배 이상의 후각 능력을 가졌다고 합니다. 사람보다 후각 능력이 훨씬 뛰어난 개 중에서도 고도로 훈련된 탐지견들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해요.
그녀는 실제로 색깔이나 소리에서도 향을 느낄 수 있다고 하죠. 이러한 천부적인 재능에, 그녀의 완벽주의 성향까지 더해져 압도적인 퀄리티의 제품이 나왔던 겁니다.
게다가 조 말론 런던은 기존 상품들과 다르기까지 했습니다. 당시 향수들은 향보다는 이미지 위주였다고 하죠(Image leads, scent follows). 멋진 모델을 이용해서 도피, 열정, 미스터리 등의 이미지를 향수와 연관시켰고 사람들은 향수를 통해 그 이미지를 구매했죠.
조 말론 런던은 이와 반대였습니다. 조 말론은 이미지보다는 향이 먼저라고 봤죠(Scent leads, image follows). 그녀는 특정 향수를 쓴다고 해서 그 사람이 갑자기 더 섹시해지거나, 강해 지거나, 더 성공적인 사람이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향수는 이미지를 소비하는 도구가 아니라, 향을 즐기고 좋은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데 가치가 있다고 본 거죠.
그래서 조 말론은 그 향을 만들어낼 수 있는 원료를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즉, 라임 바질과 귤을 주 원료로 한 향수의 이름은 라임 바질 앤드 만다린(Lime Basil & Mandarin)이 되는 겁니다. 평생 피부관리실을 운영하며 제품의 원료에 집중해 온 조 말론에게 이는 당연한 일이었지만, 향수 업계에서는 이례적이라는 평을 들었죠. 이로써 조 말론 런던은 향수의 문법을 바꾼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차별화된 향수가 되었습니다.
마케팅 또한 놓치지 않았죠. 아무리 훌륭한 제품을 담은 멋진 브랜드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단기간에 알려지지 않으면 성장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으니까요.
영국에서는 조 말론이 피부관리실을 오랫동안 운영하면서 조 말론 런던의 탄탄한 고객층을 만들었지만 미국에서는 다른 이야기였죠. 대대적인 광고를 하기엔 예산이 부족했고요.
한정된 예산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기 위해 조 말론 런던은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활용합니다. 무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에 말이죠. 버그도프 굿먼 백화점에 론칭하기 1년 전인 1997년부터 차근차근 홍보를 진행했는데요.
먼저 영국에서의 친구와 고객을 통해 뉴욕 연예계와 정재계 주요 인사 50여 명의 연락처를 확보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개별적으로 연락해 집들이나 생일 선물로 활용해 달라며 10~20개의 제품을 무료로 배포했죠. 혼자 사용하기에는 많은 양이었기에 조 말론 런던 제품을 선물 받은 유명 인사들은 자연스럽게 남은 제품들을 주변 지인들에게 선물하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조 말론 런던은 뉴욕 사교계에 퍼지기 시작하죠.
그러고 나서 조 말론 런던은 기자들을 공략합니다. 기존의 기자회견과는 다르게 말이에요. 5성급 호텔의 스위트룸을 5일간 빌려놓고, 거기서 조 말론이 직접 60명의 기자들을 차례로 만나며 브랜드 스토리를 들려준 겁니다. 일부 기자들에게는 피부관리 서비스를 직접 시현해주기도 했고요. 이로써 연예계와 정재계를 넘어 기자들까지 조 말론에 대해 입소문을 내기 시작하죠.
그 다음은 깜짝 선물이었습니다. 버그도프 굿먼 백화점 고객이 묵을만한 최고급 호텔의 450개 룸 투숙객에 크리스마스 기념 서프라이즈 선물로 조 말론 런던 제품을 선물하기로 한 거죠. 향수 한 개, 목욕용 오일 한 개, 향초 한 개를 크리스마스 양말에 담아서 450개 방에 묵는 모든 고객들에게 건넸습니다.
그렇게 조 말론 런던은 기발하면서 브랜드 이미지와 어울리는 마케팅을 꾸준히 진행하죠. 200개의 빈 조 말론 런던 쇼핑백을 친구들에게 나눠주고 밖에서 들고 다니도록 한 마케팅은 그러한 사례 중 하나고요.
조 말론 런던은 어떻게 이렇게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브랜드를 전개할 수 있었던 걸까요? 그 비법은 사람이었습니다.
조 말론의 남편 개리 윌콕스(Gary Wilcox)는 부동산 감정사로 일하다 말론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녀 사업의 든든한 파트너로 합류하죠. 크리에이티브한 조 말론과 비즈니스 감각이 있는 개리 윌콕스는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강력한 시너지를 냈습니다.
그는 특히 조 말론 매장 입점에 큰 역할을 했죠. 조 말론이 첫 피부관리실 겸 집을 계약할 때, 개리 윌콕스는 집을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고, 사업이 잘 안 될 경우 아무 불이익 없이 언제든 퇴거한다는 좋은 조건을 얻어냈습니다. 좋은 입지의 매장을 골랐음은 물론이고요.
버그도프 굿먼에 입점할 때에도 버그도프 굿먼 쇼핑백만을 이용해야 한다는 룰을 그가 최초로 깨면서 조 말론 런던의 쇼핑백을 손님들에게 나눠줄 수 있게 되었죠. 조 말론의 브랜딩을 철저하게 신경 쓴 것도 바로 그였고요.
사실 조 말론 런던의 성공 뒤에는 개리 윌콕스뿐만 아니라 수많은 숨은 조력자들이 있었습니다. 조 말론의 열정과 훌륭한 서비스, 멋진 제품을 경험한 고객들이 주로 그녀에게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죠.
창업주와 브랜드의 현재
조 말론 런던은 1999년 조 말론이 크리에이티브에 있어 통제권을 가지며, 기존의 직원들을 모두 고용한다는 조건으로 에스티 로더 그룹에 매각됩니다. 더 많은 국가에 효과적으로 진출하면서도 브랜드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으리라는 그녀의 판단 하에 이뤄진 결정이었죠.
실제로 조 말론은 그 이후 오랫동안 크리이에이티브 디렉터로 행복하게 활동합니다. 하지만 2003년 유방암 진단을 받게 되고 1년간 항암 치료를 받죠. 그리고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자 2006년에는 에스티 로더 그룹에 자신의 모든 지분을 매각하고 조 말론 런던 사업에서 아예 손을 뗍니다.
조 말론 런던은 우리나라에 2012년 신세계백화점 본점을 시작으로 정식 론칭했습니다. TV 프로그램 겟 잇 뷰티(Get it Beauty)에서 배우 고준희가 ‘나만의 향기를 찾고 싶어 조 말론 런던을 사용한다’라고 소개하면서부터 인지도가 높아졌고, 이후에도 지속적인 방송 PPL과 협찬으로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죠.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조 말론 런던이 프레그런스 컴바이닝(Fragrance Combining)으로 유명한데요. 다른 향수와 섞어 쓰면 향이 변형되는 기존의 향수와는 달리, 자신에게 맞는 향을 조합해서 쓸 수 있다는 조 말론 런던의 특장점이죠.
이번 주말에는 가까운 조 말론 런던 매장에 들러서, 나만의 향기를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