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새로운 취미를 시작한다.
나는 기분이 쳐지고 무기력한 기분이 들 때, 제 3자의 시선에서 내 상황을 관찰하는 것으로 문제의 진단을 시작한다. 꽤나 오랜 관찰 끝에, 우울의 원인이 되는 문제는 딱 두가지로 나눌 수가 있었다. 문제의 원인이 해결 가능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문제에 원인이 있다면 그 우울함은 오래 가지 않는다. 모든 에너지를 끌어 모아 그 원인을 해결하는 데 몰두하면 그만이었으니까.
문제는 역시 후자의 경우이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줄곧 나를 괴롭혔던 문제들은, 내가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것들이었다. 문제도, 그 원인도 뻔히 보이지만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은 나를 더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무기력감과 우울한 감정들이 계속해서 쌓이다 보면, 때론 마음 속에서 미처 소화가 되지 못하고 나도 모르게 바깥으로 계속해서 새어 나왔다. 소화되지 않은 감정들은 때론 눈물로, 어떤 날에는 분노로 터져 나왔다.
학생 시절, 감정들이 멋대로 터져 나오지 않게 하는 방법은 싸이월드 다이어리의 비밀 일기장에 넘쳐나는 감정들을 모두 활자로 배설해내는 것이었다. 매일 잠들기 전 나는 가상의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는다는 느낌으로 글을 쓰곤 했는데, 그러고 나면 조금은 후련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감정의 잔여물들이 계속 남아 나를 뒤덮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렇게 글을 쓰는 일은 매일 우울감과 마주하는 일이기도 했다. 여전히 해결될 수 없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을 매일같이 반추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랜 시간 우울함의 파도를 지나오면서 깨달은 것은,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원인이라면 그 문제가 사라질 때까지 눈을 질끈 감고 도망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이다. 문제를 자꾸 반추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면, 있는 힘껏 내 시선을 돌려 애써 외면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우울한 감정이 나를 뒤덮기 시작하면, 새로운 취미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한 새로운 취미는 대부분 단순 노동을 반복해서 잠시 동안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게 만드는 것들이다. 레고 조립이나 퍼즐, 마크라메, 가죽 공예, 목공예, 그림 그리기 등등. 하는 동안에는 하는 일에 몰두할 수 밖에 없어 딴 생각을 할 겨를도 없고, 완성하고 나면 성취감까지 얻을 수 있는 그런 취미들 말이다.
지금 내가 지내고 있는 공간에는 내가 힘들 때마다 조립한 레고들이 여기저기 장식물이 되어 놓여 있고, 벽에는 몇 시간 동안 목과 어깨를 희생하며 만들어 낸 마크라메가 걸려 있다.
그리고 정말이지,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있더라도 언젠가는 끝이 난다. 새로운 취미 생활을 하면서 사소한 성취감들을 계속 쌓다보면, 당신을 괴롭히던 문제들은 이미 끝이 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