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린 시절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초등학생이던 시절에는 전교에서 가장 먼저 등교해 고요한 교실에서 한쪽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책을 읽는게 매일 아침의 일과였고, 주말에는 집 근처에 있는 구립 도서관에 틀어박혀 하루 종일 책을 읽어댔다. 방학 때도 어김없이 시간만 나면 도서관에 틀어박혔다.
어린이날과 크리스마스, 생일 선물은 항상 책이었고 엄마와 함께 대형 마트에서 장을 보는 날이면 마트 2층에 있는 서점에 꼭 들러 책을 한 권씩 사오곤 했다. 학생 시절 받은 상장들은 죄다 다독왕 아니면 독후감 상이었다. TV 프로그램에도 별 관심이 없던 나는 책을 거의 버릇처럼 손에 쥐고 있었다.
중학생 때도 책 읽는 버릇은 여전해서, 아침 자율 학습 시간에도 종종 책을 읽곤 했는데, 하루는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담임 선생님이 '그런 책 읽을 시간에 공부나 더 하라'며 핀잔을 준 일도 있었다. 그 해 내내 나는 전교 10등 밖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꽤나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이었는데 말이다. (이건 자랑이 맞다.) 하지만 이렇게 특수한 경우(?) 를 제외하면 어른들은 책을 열심히 읽어대는 나를 대부분 기특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아침에 제일 먼저 등교하던 아침형 인간이었던 내가 어느샌가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버린 것처럼, 미친듯이 책을 읽어대던 나 역시 어디론가 조금씩 멀어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읽는 행위'만큼은 아직도 계속하고 있다. 그것이 책이 아닌 빈도 수가 조금 많아졌을 뿐.
텍스트보다는 영상이 더 파급력을 가지게 된 지금에도 나는 여전히 영상보다는 텍스트 콘텐츠를 훨씬 더 많이 본다. 영상 콘텐츠는 아무리 호흡감을 짧게 줄인다고 해도 텍스트의 속도감보다는 훨씬 뒤쳐진다. 3분이면 뚝딱 읽고 끝날 요리 레시피를 10분 넘게 지켜봐야 하는 것은 아직도 영 적응이 되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속도로 조절해서 받아들일 수 있는 텍스트가 아직도 나에겐 더 유효한 콘텐츠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나무위키를 탐독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사건 사고', 특히 미제 사건 항목을 자주 들여다 보는 편이다. 피가 조금이라도 튀기는 영화는 잘 못보는 주제에 어릴 때부터 추리 소설은 참 좋아했었는데, 아마도 그 영향이 있지 않을까.
나무위키 탐독의 매력은 하나의 항목을 읽다가 그 내용과 연계되는 연관 항목으로 계속해서 넘어가면서 전혀 새로운 장르의 글을 마음껏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화성 연쇄 살인 사건에 대한 내용을 읽다가, 살인의 추억으로 넘어가고, 봉준호 감독에 대해 또 읽고, 미장센 기법에 대해 탐독하다가, 시민 케인까지 넘어가는 과정은 한 권의 완결된 책에서는 느낄 수 없는 흐름이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텍스트를 읽고, 또 읽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