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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작생 Aug 26. 2024

10km짜리 고민에 힘들어 했습니다

내 모든 고민과 사랑은 딱 그 정도 였다

  지면을 꾹꾹 눌러가며 앞으로 달려가는건 마치 하얀 유선지에 글을 쓰는 것과 비슷하다. 모든 걸음, 모든 달리기가 완벽할 수 없듯 모든 단어, 모든 문장이 아름다울 순 없다. 글을 쓸 땐 작은 반발력을 느끼며 손 끝에, 달리는 순간엔 온 몸에 스치는 바람을 경험한다. 달리기 끝에 보이는 후련함과 내가 서 있는 곳의 풍경은 글 쓰기가 끝나고 내 글을 다시 바라보는 것 같다. 조금 더 잘 달릴걸, 좀 더 잘 써볼걸 하는 후회보단 무언가 다른 감정이 피어오른다. 스스로 대견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오늘도 뛰러 나왔구나, 오늘도 열심히 너의 생각을 담았구나. 아픔, 절망, 기쁨, 슬픔, 피곤함, 나른함 모든 좋고 나쁨의 감정을 도로 위에, 그리고 종잇장 위에 담아둔다. 그렇게 달리며 나를 발견하고 글을 쓰며 나를 바라본다.

달리기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달리기를 처음 시작한건 단순한 이유였다. 아니, 어쩌면 단순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갖가지 문제에 휘말리고 내가 잡고 있던 마음의 끈 하나가 끊어진 상태였으니까. 아직 다 끊어진 것은 아니지만 어떻게든 버티고 있는 상황이었다. 아직도 기억난다. 불안한 마음을 해소하고자 밤길을 걷다 잠깐 쉬던 순간, 정말 마주하고 싶지 않던 사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 순간 내 감정의 선이 끊기는 것을 느꼈다. 집에 와서 침대에 누을 기력도 없이 바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당시엔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이 상태로 집에 계속 있으면 문제가 더 커질 것만 같았다. 더 이상 내 감정을 바닥에 내려놓기 싫었다. 이젠 정말 마주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별 생각 없이 달리기를 하러 나갔다. 약 5년만의 달리기였다. 군 생활 이후 거의 처음 달리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정말 힘들었다. 1km를 채 달리지 못하고 멈췄다. 그리고 울었다. 새벽 3시에 강가를 걸으며 그렇게 울었다. 뭐가 그렇게 슬펐을까. 지금 생각하면 정말 별 일 아닌 것으로 많이 울었다. 끽해야 20대 초반에 겪었어야 하는 일을 나는 뭐하러 그렇게 미루고 미루다 지금 느끼고 있었을까.


  다음날도 또 뛰었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문제가 생길 것 같았다. 스스로 내 감정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꽤 많이 뛰었다. 한 달에 100km씩 차곡차곡 달렸다. 처음으로 10km를 달렸던 순간이 기억난다. 3km, 5km를 성공하고 나도 10km를 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 번 도전했다. 아뿔싸, 정말 힘들구나. 약 8km지점부터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그냥 다리를 끝까지 움직이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그만 포기하면 더 이상 난 아무것도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10km를 달리고 나서, 나는 비로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내 고민이 고작 10km달리기에 진 것이다. 그렇게 힘들어하고 불편해했던 감정이 딱 1시간의 달리기에 끝날 문제였던 것이다. 전 글에서 말했던 내 마음을 지탱하는 두 문장 중 하나는 바로 이거다. "내 모든 고민은 10km도 되지 않는다". 그래, 고작 그 정도 고민에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래서 난 매일 달린다. 아무리 힘든 하루였어도 달리고 나면 그것들이 그다지 힘든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과연 10km달리기보다 힘들까? 정말로?


  내가 하는 달리기는 명상이랑 비슷하다. 그렇게 빠르게 뛰진 않더라도, 분명 꽤나 힘들다. 누구나 하진 않지만 달리는 사람 모두는 꼭 달리기를 해라고 한다. 나도 주변 사람들에게 꼭 달리기를 해라고 말 한다. 그리고 나와 하루 정도 같이 있는 사람들과는 같이 달리는 시간을 가진다. 달리고 나면, 다들 내 글에 비로소 공감한다. 5km만 뛰어도, 이 세상 고민은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달리기가 끝나면 다시 생각이 들겠지만 아무렴 어떤가. 내 생각을 조절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내 인생은 안도감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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