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한 지출과 일본식 계약 문화
처음 일본에서 집을 구할 때, 가장 먼저 놀랐던 건
‘집세보다 계약금이 더 비쌌다’는 사실이었다.
월세는 괜찮은데, 왜 입주 전에 돈이 이렇게 많이 들까?
그때 나는, 일본의 부동산 시스템이
‘살면서 조금씩’이 아닌, ‘시작부터 확실히’라는 문화라는 걸 배웠다.
한국에서 전세나 월세 계약을 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일본 부동산 용어는 정말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게 이 두 단어다.
시키킹(敷金): 한국의 보증금 개념이다.
나갈 때 집 상태에 따라 일부 돌려받는다.
레이킹(礼金): 집주인에게 드리는 ‘사례금’이다.
말 그대로 선물이라, 돌려받지 못한다.
나의 첫 자취방 계약금 내역을 들여다보면 이랬다.
시키킹: 1개월치
레이킹: 1개월치
중개 수수료: 1개월치
첫 달 월세: 1개월치
화재보험 및 열쇠 교환비: 별도
보증회사 수수료: 또 별도
즉, 월세 7만 엔(약 70만 원)짜리 방을 계약하는데
처음 낸 돈은 30만 엔(약 300만 원)을 훌쩍 넘었다.
계약 기간이 2년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리고 2년이 지나면 ‘갱신료’라는 명목으로
한 달치 월세를 또 낸다는 것도.
나에게 일본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집주인 입장에선 다시 계약서를 새로 써야 하니까 그 수고비랄까….”
하지만 한국에서 살아온 나에겐
살던 집을 계속 살겠다고 하는데 왜 돈을 또 내는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게다가 이사할 때마다 다시 레이킹과 보증금이 필요하니,
그냥 한 번 정착하면 ‘최대한 오래 살아야겠다’는 결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내가 이사를 할 때, 집 상태는 거의 처음처럼 깔끔했다.
청소도 전문 청소업체에 맡겼고, 벽지에도 흠집은 없었다.
그런데 보증금 일부만 돌려받았다.
“청소비, 도장 보수비, 관리비 일부”라는 명목이었고,
내가 따져 물을 수 있는 구조도 아니었다.
영수증 한 장과 함께 남은 금액만 조용히 입금되었다.
이 역시도 일본식 ‘기대보다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시스템이겠지만
처음엔 뭔가 허무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은 그런 구조를 안다.
계약 전 꼼꼼히 확인하고, 조건을 충분히 비교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부동산 중개인에게 뭔가 ‘실례일까 봐’ 질문을 참지 않아야 한다는 것.
일본의 임대 시스템은
형식과 절차가 분명한 만큼,
알고 준비하면 피해 볼 일은 줄일 수 있다.
나처럼 처음 일본 생활을 시작하는 사람에게
이 시스템은 조금 당황스러울 수 있지만,
그 안에도 나름의 ‘논리’와 ‘질서’가 있다는 걸
지금은 조금씩 이해하고 있다.
지금 일본에서 집을 알아보고 있다면,
‘월세’만 보지 말고 ‘계약 시 비용’과 ‘갱신 시 조건’을 꼭 같이 체크하자.
처음엔 억울하게 느껴지던 구조도
조금씩 익숙해지고 나면
의외로 안정감 있는 시스템처럼 느껴질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