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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친구 사귀기, 생각보다 어려운 이유

대인관계 문화, 언어 장벽, 그리고 내가 겪은 실제 순간들

by 라일락향기

처음 일본에 왔을 때 나는 생각했다.

‘나는 낯가림이 심하지 않으니까 금방 친구를 사귈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막상 생활이 시작되자, 그 믿음은 조용히 무너졌다.

일본 사람들은 무례하지 않다. 오히려 지나칠 만큼 친절하다.

문을 잡아주고, 길을 알려주고, 웃으며 인사도 잘 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그 ‘다음 단계’로의 진입이 생각보다 어렵다.


조용히 거리를 두는 문화

일본의 대인관계는 기본적으로 ‘조심’에서 출발한다.

상대의 경계를 침범하지 않으려는 배려가 오히려 거리로 느껴질 때가 많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매일 마주치는 동료와도

점심 한 번을 먼저 제안하기가 쉽지 않다.

어느 날 용기 내어 물어본 적이 있다.

“다들 왜 이렇게 조용해요? 친해지기 어려워요.”

그 친구는 조금 머뭇거리며 이렇게 말했다.

“일본에서는... 관계를 급하게 만들면, 오래 가지 않아요.”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조심해서 천천히 다가가는 방식.

그게 일본식 ‘배려’였던 것이다.


언어 장벽은 단어보다 뉘앙스에서 온다

일본어를 조금은 할 수 있었지만, 그들이 웃는 포인트를 놓치거나

농담을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반복됐다.

단어는 아는데, 분위기를 모르는 느낌.

‘겉으로는 괜찮은데 왠지 소외된 기분’은 그래서 생겼다.

예를 들어, 그룹 대화에서 모두가 ‘에~ 진짜?’ 하며 웃고 있을 때,

나는 그 상황의 공기를 못 읽고

혼자 어색하게 ‘그게 뭐지?’라고 되묻는 일.

아주 사소한 순간들이 쌓여

“같이 있는 건 괜찮지만, 아주 가까운 친구까진 안 될지도 몰라”라는 벽으로 바뀌곤 한다.


그래도 마음이 닿는 순간

그렇다고 일본에서 친구를 못 사귀는 건 아니다.

다만, 서로가 시간을 충분히 쌓은 후에야 비로소 '친구'라는 느낌이 생긴다.

나는 회사에서 6개월쯤 지난 후,

늘 조용하던 동료 한 명이

점심시간에 슬며시 “혹시 오늘 도시락 말고 라멘 먹으러 갈래요?”라고 말했을 때

속으로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그날 우리는 평소엔 하지 않던 이야기를 했다.

가족 이야기, 꿈, 취미.

그제야 나는 ‘아, 이게 일본식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이구나’ 하고 느꼈다.


일본에서 친구를 사귄다는 건

한국에서는 낯선 사람과도 금세 친해지는 일이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시간을 두는 용기’가 필요하다.

당장 친해지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해야

오히려 편안한 관계가 시작된다.

나는 이제 조급하지 않다.

대화가 짧더라도, 인사를 건네는 그 사람의 표정에서

진심이 느껴진다면

그건 충분히 관계의 씨앗이 된다고 믿게 되었다.

일본에서의 친구는

‘빠른 관계’보다 ‘깊은 신뢰’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 신뢰는 천천히 자라나지만,

한 번 자리 잡으면 꽤 단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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