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준비하는 삶
일본 서점의 한 켠에는 ‘엔딩노트(Ending Note)’라는 제목이 붙은 책들이 다양하게 진열돼 있습니다. 겉표지는 밝고 부드러운 색감이지만, 그 속에는 자신의 죽음 이후를 위한 준비가 담겨 있죠. 엔딩노트는 단순한 유언장이 아닙니다. 법적 효력보다 ‘남겨진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라는 의미가 강합니다.
일본 사회는 초고령화로 인해 ‘죽음’이 일상의 한 부분처럼 다뤄집니다. 특히 홀로 사는 노인들이 늘어나면서,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 절차와 감정을 어떻게 남겨진 가족이 감당할지를 미리 정리하는 문화가 자리잡았습니다. 엔딩노트에는 재산 목록, 장례 방식, 유품 처리 방법뿐 아니라, ‘누구에게 어떤 물건을 주고 싶은지’,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까지 적습니다. 어떤 이들은 좋아했던 음악 목록이나, 남기고 싶은 요리 레시피를 적기도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엔딩노트가 단지 죽음을 준비하는 도구가 아니라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작성 과정에서 과거의 중요한 순간들을 되짚고, 앞으로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계획하게 되죠. 일본 노인들 사이에서는 “엔딩노트를 쓰고 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는 이야기가 자주 들립니다.
정부와 지자체도 이 문화를 지원합니다. 일부 시청과 복지센터에서는 무료 엔딩노트 양식을 배포하고, 작성법 강좌를 열어 주민들이 쉽게 접근하도록 돕습니다. 이는 고독사나 사후 혼란을 줄이는 동시에, 노년층의 심리적 안정을 높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최근 비슷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지만, 일본처럼 생활 속에 깊게 스며든 단계는 아닙니다. 일본의 사례를 보면,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곧 남은 삶을 더 충실히 살아가게 하는 과정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엔딩노트는 ‘마지막을 계획하는 일’이 아니라 ‘남은 시간을 가치 있게 쓰는 선언문’에 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