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얼마짜리입니까 / 심리학관
* 저자 : 원(가명) / 예능작가
나는 15년차 예능방송작가다. 서당 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하니, 예능작가 15년이면 예능감이 웬만한 개그맨 정도는 돼야 할 것 같은데, 현실은 오히려 언제 웃었는지 모를 지경이다.
언제부턴가 예능 프로그램의 장르가 다양해지면서 프로그램의 분량과 녹화시간도 늘어났다. 80분짜리 방송을 위해 열시간 넘게 녹화하고, 오디션 프로그램 한회를 녹화하기 위해 사전녹화와 리허설 등이 며칠 넘게 걸리기도 하고, 여행이나 관찰 예능인 경우는 열흘에서 보름 동안을 카메라를 끄지 않고 녹화를 한다.
프로그램마다 사정이 다르긴 하겠지만, 예능 프로그램 특성상 출연자를 필수로 관리해야 하므로 모든 촬영지에는 작가가 있어야 한다. 녹화 수시간 전부터 대기하는 것은 물론 녹화가 끝나면 현장 정리 뒤 퇴근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사이에 잠은 물론 '못' 잔다.
그래도 고생 끝에 방송이 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허다하다. 통상 짧게는 서너달, 길게는 6개월이 넘는 기획 기간 도중에 프로그램이 무산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방송이 송출되어야만 작가료가 지급되는 현실에서 기획 준비를 아무리 오랜 기간 열심히 했다고 하더라도 돈은 한푼도 받지 못한다.
그나마 과거에 비해 사정이 나아져서 계약서도 작성하고 고용보험 개입도 가능해졌다지만, 그 또한 방송 편성 확정을 받은 뒤에 이뤄지기 때문에 기획 기간에 대한 노동은 보호받지 못한다. 그래서 작가들은 늘 불안을 안고 일한다. '방송될 수 있겠지?'
가끔 생각한다. 내가 사랑하는 일에 불안함 없이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과연 그런 날이 오긴 올까. 사람들은 카메라 뒤에 몸을 숙인 채 소리 없이 일하고 있는 방송작가들이 있다는 것을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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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얼마짜리입니까>
6411의 목소리 지음.
노회찬재단 기획.
노회찬재단과 한겨레가 손잡고 2022년 5월부터 '6411의 목소리'를 매주 연재해왔습니다. 노회찬 의원이 탔던 6411번 새벽버스에 몸을 실어야 했던 이주민과 청소노동자, 돌봄노동자 등 '존재하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못하는 투명인간'들이 직접 나서서 자신에게 그런 이름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아래에서, 노동 현장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아나가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