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디'의 말도 안 되는 공짜노동

나는 얼마짜리입니까 / 심리학관

by 심리학관

* 저자 : 김리현

(캐디 / 전국여성노동조합 상록CC분회 조합원)


20년 전 캐디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직업을 숨기고 싶었다. 캐디를 보호하는 시스템은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새벽 첫 팀으로 밤새 술을 마신 만취 고객을 만났다. 골프장에서는 공을 치다가 함부로 앞으로 나서거나 금지구역으로 들어가면 안 된다. 이를 어긴 만취 고객을 제지했더니, 욕설이 돌아왔다. '지금 저한테 욕하셨냐'고 되받아 물으면서 고객과 마찰이 생겼고, 회사는 새벽 첫팀부터 마지막팀 경기가 있는 오후 일고여덟시까지 일은 주지 않으면서 대기하도록 하는 '벌당' 열흘 처분을 내렸다. 그렇게 첫 골프장을 그만뒀다.


그래도 확 트인 자연에서 계절이 변하는 것을 느끼며 살 수 있는 캐디 일이 좋다. 대부분 고객은 보통의 선한 사람들이고, 매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는 게 즐겁다.


골퍼가 샷을 하면 잔디가 파이고, 그 파인 부분을 메꾸는 배토 작업을 해야 하는데 이 일이 캐디 몫이다. 고객이 많아 바로 배토 작업을 하기 어려운 요즘은 라운드가 끝난 뒤 회사가 지정한 홀에서 배토 작업을 한다. 또 두세달에 한번은 혹시 있을지 모르는 사고를 대비해 '스페어 캐디'로 골프장에서 대기해야 한다.


배토 작업과 스페어 캐디 근무에는 관행적으로 아무런 대가가 지급되지 않았는데, 내가 일하는 화성을 비롯해 천안, 김해 상록골프장 캐디들이 노조를 통해 무급노동의 부당함을 호소하며 임급 지급을 요구하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회사는 우리들의 파업을 두고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캐디들은 오래 못 간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서민들이 지탱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투쟁을 외치는 조합원이든, 생계를 위해 일하는 비조합원이든 모두 절박함이 있다. 마땅히 존경받고 존중받고 싶은 간절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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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얼마짜리입니까>

6411의 목소리 지음.

노회찬재단 기획.


노회찬재단과 한겨레가 손잡고 2022년 5월부터 '6411의 목소리'를 매주 연재해왔습니다. 노회찬 의원이 탔던 6411번 새벽버스에 몸을 실어야 했던 이주민과 청소노동자, 돌봄노동자 등 '존재하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못하는 투명인간'들이 직접 나서서 자신에게 그런 이름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아래에서, 노동 현장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아나가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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