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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자격'과 '존재할 자격'을 평가받는 시대

시사IN / 심리학관

by 심리학관

지난 5월 4일 <너의 연애> 제작사는

휴방을 공지하며 출연자 리원의 분량을

최대한 삭제하겠다고 밝혔다.


논란의 시작은

'벗방(벗는 방송의 줄임말로,

인터넷 방송의 BJ들이

시청자들의 요구에 따라

탈의하거나 성적인 행동을 함으로써

수익을 창출하는 성인방송)' BJ로 활동한

리원의 경력에서 비롯되었다.


'음지에서 노출 방송이나 하던 여자가

무슨 낯으로 당당히 얼굴을 드러내는가'

'남성을 상대로 성적 콘텐츠를 제작한 사람이

어떻게 레즈비언일 수 있는가'


리원의 문제는 무엇인가?

'벗방'을 제작한 이력이 있는 사람이

'양지'에 나왔다는 사실 자체인가?

아니면, 그 사람이 자신을 레즈비언이라 말하고

사랑을 시작하려 했다는 점인가?


'벗방'을 제작한 이력이 있는 사람은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서는 안되는가?

남성을 상대하는 콘텐츠를 제작한 사람은

반드시 이성애자 여성이어야 하는가?


반성매매 인권활동가 황유나씨는

책 <남자들의 방>에서,

성매매를 기획하는 이들에게

'여성혐오'는 필수적인 동력이라 말했다.


리원의 사례는 낯설지 않다.

겉보기에 그 명분은

'음지문화'를 근절하자는 주장이다.


그러나 그 폭력적 방식은

성매매로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여성에게 씌우는 '창녀 혐오'와,

정체성의 증명을 요구하고

무결하지 않다면 곧바로 배척하는

'퀴어 혐오'가 교차한 결과다.


레즈비언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출연자가 '정상적이고 안정적인 인간'인지를

묻는 시험이 되었다.


리원에게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은

이 과정에서 자신이 무엇에 가담하고 있는지를

자각하지 못한 채,

타인의 삶과 존재를 지우는 일에

정의감을 부여했다.


사회는 여성과 퀴어의 존재가치를

조건부로 승인한다.

'순결한 여성'만을 여성으로 인정하고,

'오염된 여성'을 규정하고 배제하는 인식이

배후에 자리 잡고 있다.


리원이 겪은 일은,

사실 우리 모두가

'사랑할 자격', 나아가 '존재할 자격'을

매체와 대중에게 평가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리원은 입장문에서

"음지는 양지로 나와선 안 된다,

청소년에게 유해하다는 말씀들,

모두 동의하고 받아들이고 있다.


프로그램이 종영된 후

한국에서 다시는 미디어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겠다.


다시는 누군가에게

불편이나 부담이 되지 않도록

숨어서 살겠다"라고 밝혔다.


그는 어디로 가야 할까?

그를 쫓아낸 우리는

또 어디로 가는가.


함께 슬퍼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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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롭게' 삭제된 그 여성의 분량.

한 퀴어 연애 리얼리티에서

출연자 출연 장면을 삭제하기로 했다.

그가 과거 성인방송을 한 이력이 논란을 샀다.

이제 사랑한 자격, 존재할 자격은

매체와 대중에게 평가받는다.

* 저자 : 복길(자유기고가)

* 시사IN / 2025.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