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뭔가를 뺏으려는게 아니라, 같이 걷고 싶을 뿐

시사IN / 심리학관

by 심리학관

키얼스틴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젠더 디스포리아(성별 불쾌감)을 경험했고,

가족에게 말했지만 학대당한 경험을 털어놓았다.


* 엄마의 브래지어를 꺼내 입고

'Man! I Feel Like A Woman!'이라는 노래에 맞추어

장난을 치며 춤을 추자, 엄마는 웃지 않았다.

엄마는 키얼스틴을 끌고 가 피부가 벗겨질 정도로

쥐어짜듯 꼬집으며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하지 마. 역겨워. 이상해.

넌 괴물이야. 남자애는 그런 짓 하면 안 돼"


* 일곱살 때 아빠는 키얼스틴을 불러 조용히 말했다.

"네가 게이여도 괜찮아.

그런데 트랜스젠더가 되지는 마.

그런 사람들은 정말 이상하단다"


* 성별 불쾌감은 점점 심해져서

자기는 나쁜 일을 겪어 마땅한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사춘기에는 자살 시도도 했다.

(미국 트랜스젠더의 자살률은 일반 자살률의 10배)


안면 여성화 수술(facial feminization surgery)을

마친 후, 얼마 전에는 목소리 여성화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힘겹게 부기를 빼고 나니

딱 원하던 '옆집 소녀' 같은

친근하고 예쁘장한 얼굴이 됐다.


특히 최근엔 사람들이

키얼스틴을 자연스럽게 여성으로 인식한다.

그녀는 더는 잘못된 사람이라고 느끼지 않는다.

'너는 나쁜 사람'이라고 매일같이 말하던

자기 안의 검은 구멍이 사라졌다.

빈자리에 따뜻함과 사랑과 빛이 스며들었다.


* 트랜지션을 하고 반 년이 지났을 때

직장에서 갑자기 해고당했다.

키얼스틴은 대기업 영업 분야에서 에이스였고,

그해 인생에서 가장 높은 연봉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 여자 화장실에서 항의를 받으면

키얼스틴은 그저 자리를 얼른 뜬다.

체육관 탈의실에도 가지 않는다.

겁에 질려 있기 때문이다.

증오범죄가 두렵다.


키얼스틴은 트랜스 여성으로 살기 시작하며

사회적 지위가 확실히 추락했다고 느낀다.

여성으로 살아가기 위해 선택한 어려움이라

좋은 면도 나쁜 면도 다 받아들이려 한다.


여성만의 공간에 침투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키얼스틴은 말한다.

그저 들어갈 수 있는 화장실이 필요하다.

생물학적 여성들의 고통을 깎아내리려는 게 아니다.

그저 출산 축하 파티에 초대받고 싶다.


평범한 고모, 이모, 누나,

여동생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

아무도 잘 기억하지 않지만,

있으면 좋은 그런 사람 정도면 된다.


현수막을 들고 행진의 맨 앞에 서려는 게 아니다.

그저 여성들이 싸울때 옆에 같이 서고 싶다.

당신들을 지지하며

우리가 자신의 삶을 살 수 있기를 원한다.


어떤 상황에선 여성들이 그렇게

느낄수밖에 없으리라고 이해하면서도,

자신을 그저 '남성'으로 보는

성별 이분법에 반대한다.


"우리가 진짜 누구인지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준다면,


우리가 뭔가를 빼앗으려는 게 아니라

조용히 같이 걷고 싶을 뿐이라는 게

보일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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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의 사람들> 시리즈.

정상성과 이분법 기준 바깥에 놓인 채

거절당한 이들을 만납니다.

차별과 혐오가 일상이 된 시대에

정치와 제도가 누락시킨 사람을

다시 삶으로 이끄는 '틈의 목소리'를 기록합니다.


[네게도 등받이 베개를 물려주고 싶어]

* 트랜지션 수술 뒤 통증을 완화해 줄

등받이 베개와 겨드랑이 베개 세트

-> 그 베개는 한 트랜스 여성에게서

다른 트랜스 여성에게로 전달되며

몸과 마음을 기대게 해주고,

회복하기까지 함께한다.

* 김인정 / 논픽션 작가(샌프란시스코)

* 시사IN / 2025.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