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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리학관 Nov 09. 2021

[심리학관/박정민의 수다다방] 엄마는 해녀입니다

명랑한 하루

작년에 일을 쉬었을 때.


몸상태가 안 좋으니까,

당연히 몸과 긴밀하게 연결된

마음도 불안정해지더라구요.


게다가 50 평생에

일을 모두 중단하고

요양에만 전념하는 시간을

처음 보내다보니까,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거지?

라는 혼란스러움이 많이 생겼습니다.


저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어르신들이 편찮으신 모습을 바라보면서

죽음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 건가 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구요.


(결국 그 이야기는

죽음이 다가오기 전까지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더군요.)


지금까지의 삶에서는

어떻게든지 맡은 일을

잘해내려 최선을 다하기,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려서

기대하던 결과를 만들어내기,

성실하게 해야 할 과제를 완수하기.

일에 관련된 약속을

철저하게 지키기.

이런 것들을 중요하게 여겼었는데,


2020년 하반기에는

이런 투쟁적이고 목적지향적인

삶의 태도가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불안감만 높이는 장애물이 되더군요.


그래서 2021년 올해는

하루아침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

조금 더 눈앞의 하루하루에 집중하는

삶의 태도를 가져보기로 했습니다.


제가 수용전념치료(ACT /

Acceptance & Commitment Therapy)를

참 많이 좋아하면서도

아직 수용(acceptance)을

제대로 잘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코로나로 인해

너무나 많이 바뀌어버린

현재의 상황을 인정하고,


예전같이

절대 그 어떤 일도 거절하지 않고

뭐든지 받아들여서

이를 악물고 뛸 수 있게 해주던

체력이 많이 약해졌다는 사실을

수용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 & 전념(commitment)할 계획입니다.

제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은

과감하게 손을 들어버리고,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용기있게 뛰어들기로요.


매일매일

매순간마다

내가 통제할 수 없이

상상도 할 수 없는

형태와 색깔을 띄고

떨어지는 삶의 과제들을

최대한 유쾌하고 발랄하게(명랑하게)

바라보고 싶더라구요.


그러려면

가장 먼저

몸과 마음의 건강이 기반이 되어야 하고,

제가 하고 싶은 일의

전문성도 강화되어야 하고,


생각도 하지 않았던

바윗돌에 걸려넘어져

무릎에 피가 철철 날 때나

예상도 하지 못했던 사건이

뒷통수를 때려서

뚜껑이 열릴 때에도


힘이 다시 생길 때까지

초조불안해하지 않고

잘 엎드려 있다가

차근차근 일어나는

탄력성도 길러야 하고,


하루하루를 정성껏

만들고 다듬고

반짝반짝 닦아나가려는 태도도

몸에 배어들 수 있게

애써야 하겠지요.


물론 '명랑한 하루'라는 말은

저같이 불안 수준이 높아서,

가능하면 바지런하게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측하고,

모든 것을 미리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곧바로 긴장감이 높아져서

목과 어깨가 딱딱해지고

두통과 소화불량에

위통증과 장트러블이

급습하는 사람에게는

정말 이루어지지 못할

비현실적인 ‘꿈’같은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뭐.

꿈이라는 것은 당장 오늘 내일

이루어내야 할 단기목표는 아니니까요.


앞으로는

‘(내공이 쌓인) 명랑한 하루를

살고 싶어하는 사람’

제 정체성으로 밀어보려고 합니다.


얼마 전에는 저녁에 산책을 하다가

예쁜 동네 서점에서 

예쁜 그림책을 사왔습니다. 


‘엄마는 해녀입니다’

(글 : 고희영 / 그림 : 에바 알머슨 /

번역 : 안현모 / 출판사 : 난다)


손녀가 해녀이신 할머니께

질문을 합니다.

“공기통이 편하고 안전한데

왜 안 쓰는 거에요?”


할머니는 이런 대답을 해주십니다.

“해녀들의 바다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아름다운 약속이 하나 있단다.


바다밭(꽃밭)에서 자기 숨만큼 머물면서

바다가 주는 만큼만 가져오자는 것이

해녀들만의 약속이란다.”


할머님의 마지막 말씀이

마음에 정말 따뜻하고

크게 와 닿았습니다.


“오늘 하루도 욕심내지 말고

딱 너의 숨만큼만 있다 오거라”


이것이 바로

acceptance & commitment를

기반으로 하는

명랑한 삶의 태도

아니겠습니까.


작년 가을방학쯤,

제가 아파서 일을 쉬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제 석사과정때부터

가르침을 주셨던

수퍼바이저 선생님이

카톡을 보내주셨습니다.


우선 벼락같이 야단을 치시더군요.

“넌 너무 잘해야돼서 문제야!”

“대학원생때부터 그거 걱정했어!”

“근데 넌 언제 ‘잘해야 한다’ 내려놓을래?”


바짝 엎드려서

‘잘못했습니다’ 하고 빌었습니다.

우앵앵앵앵.


그렇게 한바탕 야단을 치신 다음에,


“괜찮아, 괜찮아”

“천천히, 서서히,

달팽이처럼 나오너라”


라고 쓰다듬어 주셨어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제가 올해 목표로 삼은

‘명랑한 하루’를

살고 싶은 마음이

더 많이 들었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2021년 동안에도

우리 독자 여러분들이

저와 같은 하늘 아래에서

명랑한 하루를 살아가는 과정을

함께 해주시기를 기대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____^


[COZY SUDA 박정민 대표]


* 박정민 소개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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