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 조절 방법
안녕하세요! 오늘은 우리의 18번째 만남이네요! 매번 느끼지만 어느새 이렇게! 라는 느낌이 드는군요. 한 번에 18번의 글을 쓰라고 했다면 아마도 전 못 했을 거에요. 아마도가 아닙니다. 반드시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씩 하다보니 벌써 18번이나 여러분을 만난 거 있죠. 인내력 편을 쓴다고 괜히 밑밥 까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로 놀라고 있어요.
그럼 오늘도 사례부터 보실까요! 고고!
사례
1 이번 시험은 잘 봐야해! 수업을 못 알아들은 것도 아니고 시험을 못 볼 이유가 없어. 지난 번에 긴가민가 하면서 쓴 답이 틀렸었지. 그건 내가 완벽하게 못 외웠기 때문이야. 외우기만 하면 시험을 못 볼 이유가 없어. 그럼 책부터 읽어보자. 우선 책을 정독하고 필기한 것을 다시 보자. 아… 책을 정독하다보니 뭔가 가슴이 터질 것 같아. 진도가 너무 안 나가. 자꾸 다음 줄로 눈이 가. 하지만 이렇게 읽으면 놓치는 부분이 있게 돼. 저번에도 그랬잖아. 다시 한 줄 씩 꼼꼼하게 읽자. 어떡해… 너무 힘들어… 벌써 저녁시간인에 이것밖에 못 했어. 아, 어떡해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고 눈물이 나려고 해. 왜 이러지, 왜 이러는 거야. 그냥 읽기만 하는 거잖아. 왜 이러는 거야! 다시 집중해서 읽자. 이럴 시간에 한 줄이라도 더 읽는 거야! 난 할 수 있어! 아, 너무 힘들어. 시험공부 할 때마다 너무 힘들어… 정말 너무 힘들어…
2 이번 보고서는 잘 써야 돼. 자료, 표, 어느 것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잘 정리해서 넣겠다. 이 보고서만 잘 써 놓으면 나중에 이력이 필요할 때 훨씬 수월하게 찾을 수 있을 거야. 결국 이 보고서 하나에 다 들어가 있어야 언제 어디서든 자료가 필요할 때 바로 찾을 수 있게 돼. 그럼 작성해 보자. 시간은 넉넉해. 목차부터 잘 잡자. 흐음… 근데 쓰다 보니 이 실험에서 변인 설명이 좀 부족한데? 실험 보고서를 한 번 찾아볼까? 이런, 여기도 이러네. 고치자. 이왕 고치는 거 지난 번 것도 같이 고치고 한 번 할 때 제대로 하자고. 여기 들어가는 표는 다양한 관점에서 보여주면 더 좋겠지. 괜히 질문 들어왔을 때 말로 설명하려고 하지 말고 아예 다 보여주자. 이럴수가, 벌써 시간이 이렇게? 아… 또 야근이네… 난 이렇게 야근을 밥 먹듯 하는데 다들 퇴근하고. 그러니까 이렇게 지난 보고서에서 미진한 부분이 남는 거야. 오늘도 나만 이렇게 열심히 하잖아. 얼른 하자. 이럴수가, 시간이 벌써 이렇게??? 아, 막차는 타고 가야겠다. 오늘 다 못 끝냈네. 내일 또 팀장 한소리 하겠지.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매일 그 놈의 다 됐어? 언제 돼? 소리… 지겨워. 억울하기까지 하다.
3 이번 작품은 중요하다. 지난 작품이 호평을 받아서 이번 작품에 평단이 거는 기대가 커. 평단의 기대 때문만은 아냐. 난 내 작품이 내 마음에 들지 않는채로 내놓고 싶지 않아. 그런 경험은 정말…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점 하나, 선 하나라도 내 손을 거친다. 시간이 얼마가 들더라도, 에너지가 얼마가 들더라도 대충은 없다. 작품 하나를 끝내고 나면 마치 나를 하얗게 태운 듯 허무하고 우울하기도 하지. 하지만 타협을 해서 작품을 내는 것을 선택 하느니 안 하고 만다.
4 이번 연주회는 중요한 자리야. 동호회에 가입하고 처음 하는 연주회니까. 난 취미로 악기를 다루지만 절대 취미라고 생각하지 않고 할거야. 이왕 할 거면 열심히 해야지. 누가 봐도 와 잘 한다 정도로 해야지, 그냥 취미라고 대충 할 거면 너무 시간 낭비야. 그래, 이왕 할 거면.
위의 사례를 보시고 아마 고개를 끄덕이시는 분들은 아, 맞아!! 이거 내 얘기야! 하실 것입니다. 위의 사례에 공감을 못하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뭘 저렇게까지? 하고 말이에요.
이번에 볼 기질은 인내력 중 “완벽주의”입니다. 아, 이번 완벽주의 편을 저는 매우 기다렸습니다. 왜냐! 상담에 오시는 분들 중 이 완벽주의 기질이 매우 높은 분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완벽주의
인내력에서의 완벽주의
인내력에서의 완벽주의에서 높은 경향성을 보이는 사람은 최선을 이루기 위해 끝까지 자신을 몰아붙입니다. 가능한 모든 일을 잘 하려 하고 가능한 방법 중 최선의 방법을 찾기 전 까지는 포기하지 않으려 하며 지칠 때까지 노력하려고 합니다. 이 경향성의 사람은 융통성이 부족하며 이번에 성공한 적이 있는 방법은 확실하다고 인식하기 때문에 맥락과 환경이 달라졌음에도 고집스럽게 과거의 방법을 사용하려고 합니다.
반대로 낮은 사람은 항상 타협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실용주의자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노력, 에너지, 방법만 사용하며 그 이상의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고 해도 이 정도면 통과한다 라는 적정선에서 노력을 멈춥니다. 이 방법이 안 되면 다른 방법을 써 보려고 하고 이 때 다른 사람의 조언도 쉽게 듣습니다.
완벽주의는 기질에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자연스럽게 쓰던 정도의 에너지를 계속해서 쓰게 되는데 개인의 고통은 기질대로 살아갈 때 나옵니다. 완벽주의에서도 기질의 이 법칙은 예외가 없는데 완벽주의 경향이 매우 높은 분들은 오늘 글을 더욱 되새기며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완벽주의가 높은 경우 얻는 이점이 많습니다. 우선 결과물이 너무나도 좋기 때문에 자신도 크게 위안 받습니다. 그러나 과업, 과제는 다양하고 그 난이도도, 합격선도 다양합니다. 통과만 해도 되는 시험에서 밤을 세워서 최선을 다 해 공부하는 것이 어떻게 보이십니까? 우리는 어릴 때 다음과 같은 말을 종종 듣고 자랍니다.
“최선을 다 해라. 대충 하지 말고 누가 보지 않더라도 최선을 다 해야 하는 거야.”
이 말 참 희한하지 않습니까? 왜 최선을 다 합니까? pass, fail만 있는 시험은 그냥 pass만 하면 되지 왜 굳이 최선을 다 해서 그 시험을 다 맞아야 하죠? 물론 그렇게 열심히 하면 스스로에게 큰 결실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최선을 다 하는 것을 온갖 것에 다 하는 것에 있습니다. 이 시험도 최선, 저 과제도 최선, 심지어 사례에서는 취미로 하는 것까지 최대치로 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모든 것에 최선을 다 할 경우 인간은 반드시 소진됩니다. 소진을 우습게 보시면 안 됩니다. 연료가 0이 된다는 건데 자동차 배터리가 0이 되면 아주 번거로운 작업을 거쳐야 하듯 우리의 에너지도 0이 되면 회복되기까지 에너지가 어느 정도 남아있을 때보다 훨씬 더 고통스럽고 오래 걸립니다.
©Eqd
그럼 완벽주의 경향이 낮은 것이 좋은 것인가? 제가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기질을 가지고 좋다 나쁘다 하지 않습니다. 조절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완벽주의 경향이 낮은 사람들은 실제로 일처리가 엉성하기도 하고 더 배우고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에서도 적당히 넘어가서 덜 배우고 덕 익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완벽주의가 너무 낮은 경우 수행에 문제가 생길 수 있고 기질을 조절하는데에 있어 내가 넘어서 볼 수 있는 지점까지 가지 못해 장기간에 걸쳐 자기효능감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완벽주의가 낮은 사람은 실용적으로 시간과 에너지를 활용하기 때문에 같은 시간에 더 빠르게 많은 일들을 해결해 내기 때문에 역시 기질은 자신을 인식하고 수용한 후 조절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 완벽주의가 최대치에 이르는 것을 권장하는 분위기의 현장에 있으신 분들이 있습니다. 바로 “예체능 영역”. 이 영역은 타협이라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고 애초 기준 자체가 “완벽”하나만 존재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이 영역에 계시는 분들은 자신의 완벽주의에 채찍질하며 더 완벽한 자세를, 더 완벽한 컨디션을, 더 완벽한 미장센을, 더 완벽한 조화를 추구하며 고군분투합니다. 그리고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지기 쉽죠. 그래서 그만큼 버티고(holding), 불안을 마음에 담아야(containing)해서 고되고 어려운 길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예체능 분야에 종사하는 분들에게 존경과 위로를 표합니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예술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오래도록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예체능 분야가 아닌 사람들은 대충하라는 것인가? 반대로 나는 예체능 분야니까 완벽하게 하는 것이 답인가? 아닙니다. 기질은 조절해 나가야 한다는 것은 모두의 과업입니다. 다만 내가 몸 담고 있는 분야에서 내가 성취하고자 하는 것을 현실적으로 가늠하라는 것입니다. 위의 사례에서 취미를 하면서 완벽하겠다는 것은 사실 말이 안 돼죠. 그렇게 한다는 것은 이미 취미가 아니고 직업이나 평생의 과업이 된다는 것입니다. 보고서를 완벽하게 쓰면 좋겠죠. 그런데 그 완벽의 기준은 도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동료들이 퇴근하고나서까지 보고서릐 퀄리티를 위해 열심히 하는 자신을 칭찬하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나 억울함을 느끼면서까지 하고 있다면 자신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표를 아주 다양하게 물샐 틈 없이 준비하면 물론 매우 좋겠지만 그냥 말로 설명해도 되지 않습니까? 누군가가 그 표는 왜 안 넣었냐고 하면 브리핑 시간에 “네, 추가하겠습니다.” 하면 될 일입니다.
시험을 잘 보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것 또한 스스로 너무나도 기특 하다고 칭찬해 주면서 공부할 수 있는데 꼭 책을 한 줄 씩 정독하고 필기한 것을 심하게 한 줄 씩 외워야 합니까? 그러다 가슴이 터지고 눈물이 터져서 공부를 더 못하게 될 확률이 더 크겠는데요. 집중력에 문제가 생기는 더 견디기 어려운 상황까지 갔다면 숨을 고르고 읽히는 만큼 읽고 다음 방법으로 공부를 하면 됩니다. 다 아는데 왜 틀렸냐는 말은 애초에 말이 안 됩니다. 알아도 틀립니다. 원래 시험은 여러가지 환경적, 심리적 요인이 영향을 미치는 수행이라 다양한 이유로 실수 하기도 합니다. 실수한 이유는 오로지 자신이 완벽하게 하지 않았다는 것에 귀인 하는 것이 바로 완벽주의 성향의 함정입니다.
그리고 완벽주의는 반드시 ~해야 한다는 당위성과 내가 잘 해내지 못했을 때의 수치심, 나라는 사람은 이 정도는 할 수 있다라는 자기애와도 많은 관련이 있는데 이는 이 주제가 나왔을 때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는 인내력의 영역으로서 완벽주의에 집중하였습니다.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 시간과 노력과 타협하며 과업을 수행해 나갈 때 가슴이 안 터지고 눈물이 안 터집니다. 그러나 정말로 스스로 이건 내가 사활을 걸어보겠다 하는 과제가 나타났을 때 그 때 자신의 높은 완벽주의에 기대보십시오. 매사, 모든, 항상, 언제나가 아니라 그 때 그 때 말입니다. 기질은 나의 것입니다. 언제든 내 편이 되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질에 끌려다니게 된다면 이렇게 무서운 적은 또 없습니다. 내가 고통에 몸부림칠 때까지 나를 채찍질 하거든요. 낮은 완벽주의 경향성을 가진 분들은 수월하게 지금까지 과업을 수행해 온 자신을 다독이고 정말 중요하다, 이건 내가 좀 힘 내 본다 하는 일이 생겼을 때 지금까지 와는 달리 더 해보십시오. 지금까지보다 더 큰 성취는 자신감을 선사합니다.
이렇게 행동 유지 시스템을 모두 살펴보았습니다. 긴 여정이었죠. 하나 하나 기질에 대해 다루면서 기질의 변인들이 마치 제 친구라도 된 것 같았습니다. 인간 기질의 개념일 뿐인데 제가 인격을 부여하고 있더군요. "날 좀 도와줄래? 오늘은 내가 이 만큼까지는 안 할 거니까 속상해하지마." 라면서요. 나와 함께 평생 살아갈 나의 소중한 누군가처럼 기질을 어르고 달래고 때로는 화도 내면서 저도 여기까지 달려왔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자신의 기질에게 인사해 주세요.
안녕? 나는 <기질, 너>이기도 하지만 너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았어. 어쨌든 나랑 잘 해보자.
©Eqd
다음 시간에는 기질을 조절하는 “성격”이 시작됩니다.
또 어떤 친구들이 나타날까요? 두근두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