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는 엄마가 키워 vs. 애엄마 티내지말고 일해

일다(여성주의 저널) / 심리학관

by 심리학관

출산을 하고 육아휴직을 쓸 수 없어 70일 되던 날부터 출근을 했다. 복직 첫날 여전히 붓기가 남아 있는 내 얼굴을 보며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남성 관료는 “최근 출산한 딸이 있어 남일 같지 않다”면서도 내게 “비정한 엄마”라고 말했다. 그렇게 어린 자식을 두고 어떻게 일을 하러 나올 수 있느냐는 말이었다. 배우자는 단 이틀 출산 휴가를 사용했을 뿐이지만 그에게 비정한 아빠라고 말 할 이는 단언컨대 없었을 것이다.


회복되지 않은 뼈마디가 쑤셨다. 임신, 출산과 마찬가지로 출산 이후 몸의 변화에 대해 알려주거나 이해하려는 이는 드물었다. 내 몸 돌보는 건 사치였다. 밤마다 쉽게 잠들지 못하는 아이를 달래가며, 새벽까지 밀린 일을 해야 했다.


그런데도 나는 죄인이었다. 일을 하러 나가서, 아이 곁에 있어 주지 못해서, 아이를 대신 돌봐주는 시가와 친정가족들에게, 아이가 아플 때면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일터에서 늘 그랬다.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지”와 “애 엄마 티 내지 말고 똑같이 일해야지”라는 이중 잣대는 징그러울 만큼 내게 찰싹 붙어있었다.


평일에는 장거리 출퇴근을 이어가는 배우자 대신 아이 돌봄을 전담해야 했다.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일터와 근무를 조정해 병원에 데려가고 간호를 해야 하는 것도, 결국 보다 삶의 안전성을 갖기 위해 주거지를 옮기고 아이 돌봄에 집중하고자 일을 그만둔 것도 나였다.


남성보다 상대적으로 급여가 낮기에 가사와 돌봄 노동으로 내몰리는 수많은 여성들의 전철은 나라고 비켜 가지 않았다. 사회는 나를 ‘경력단절 여성’이라 부르며 단절시켰다. 나로서 살아온 이전까지 삶은 사라졌다. 그래도 결혼, 임신, 출산, 양육까지 너의 자발적 선택이니 수용해야 한다고, “모두가 다 그렇게 산다”고 세상은 말했다.


성과로 측정되기 어려운 가사노동과 돌봄은 그림자였다. 살아가려면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일이지만 보상은 없었다. 배우자는 자신의 사회적 위치와 임금 노동의 가치가 올라갈수록 “이건 우리가 함께 한 일”임을 강조했지만 나는 공허함을 떨치기 어려웠다. 졸지에 ‘집에서 노는’, ‘남편 카드로 속 편하게 사는’, ‘소비만 있고 생산은 없는’ 대상이 되었다.


이름 대신 아이의 ‘엄마’로 불리는 빈도가 늘어날수록 답답함을 설명해 줄 언어에 목말랐다. 틈이 나는 대로, 신문 한 귀퉁이처럼 눈에 보이는 공간마다 글을 써 내려갔지만 갈증은 해소되지 않았다. 아이와 배우자가 내 삶을 망친 것이 아니라 사회 구조에 문제가 있음을 알지만 그래도 답답했다. 나 혼자 아이를 잘 키운다(사실은 키우는 게 아니라 함께 살아갈 뿐이지만)고 될 일이 아니라는 인식은 ‘세월호’ 참사를 경험하며 더욱 강렬해졌다. 돌봄 공백의 사회를 더 이상은 방관할 수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나와 같은 이들이 만났다. <정치하는엄마들>이다. 앞선 나의 경험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고 김서령 작가는 책 『여자전』(푸른역사, 2007)에서 “한 여자가 한 세상이다”라고 말했다. <정치하는엄마들>은 저마다 딛고 있는 시대와 환경 속에서 자기의 세상과 서사를 만들어 왔다. 개별성을 가졌지만 공통점을 지녔고,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았다.


우리는 가부장적이고 위계적인 관계를 거부하고 동등한 위치에서 남녀노소를 ‘언니’라고 불렀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구조 속에서 굳어진 성 역할과 모성 소외를 떨치고 양육 당사자로서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는 절박함을 공유한 이들이었다.


정치하는엄마들은 창립 직후 스토리펀딩 ‘그들은 왜 정치하는 엄마가 되었나’를 통해 그동안 사적으로 치부됐던 돌봄 노동을 공적 의제로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했다. 첫 만남을 기록한 1화의 제목은 “엄마들은 왜 만나서 울었을까”였다. 우리는 만나서 울었다. 엄마라는 존재로 불리게 되는 순간부터 가장 힘든 일은 ‘약한 생명을 오롯이 책임져야 하고 그 모든 걸 혼자 해내야 한다’는 책임감과 두려움이었다.


처음으로 공적 공간에서 공감을 받고, “당신만 힘든 것이 아니”며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도 되는 세상”이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지지 세력이 있음을 발견했을 때 흘린 눈물은 그래서 각별했다. 공감은 변화를 이끄는 시작이 되기도 한다. 우리 더이상 울지만 말고 같이 이를 해결해 보자고 다짐한, 정치하는엄마들로서 ‘모멘트’기도 했다.


정치하는엄마들이 출간한 책 『정치하는 엄마가 이긴다』(생각의힘, 2018)의 부제는 ‘모성신화를 거부한 엄마들 반격을 시작하다’였다. ‘여성이 남성보다 양육에 있어 뛰어나다’, ‘여성은 본능적으로 모성애를 지닌다’로 무장한 모성신화는 자본주의와 결합해 여성에게 돌봄을 전가하고, 남성에게는 돌봄의 기회를 박탈했다.


‘맘 키즈’, ‘녹색어머니회’, ‘북텔러 맘’(책 읽어주는 엄마 독서 봉사), ‘스쿨 맘 톡’ 등 육아와 엄마를 동기화한 예는 여전히 숱하다. 정치하는엄마들 회원들은 포털사이트 육아 채널인 ‘맘 키즈’의 이름에 문제가 있음을 제기해 ‘부모아이’로 바꾸는데 일조했다. 녹색어머니회 역시 녹색부모회로 명칭을 변경하라는 권고 사항을 낳기까지 국민신문고 등에 신고하는 활동을 했다.


한국 사회를 휩쓴 <SKY 캐슬>이라는 드라마에서도 아이들을 극한 상황으로 몰아가는 가해자이자 또 이를 푸는 해결사는 엄마였다. 그러나 이제는 생물학적 여성이기에 모성애를 기본 장착하고 있고, 그래서 아이와 애착을 형성하고 이를 도맡아 책임져야 한다는 관념이 곳곳에서 거부되고 있다. ‘그 사람의 생각은 그 사람이 걸어온 인생의 결론’이라고 할 때, 우리가 엄마로 걸어온 삶과 시간 속에서 마주한 결론은 이것이다. “엄마여서가 아니라,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사회가 엄마에게 양육을 짐 지운 것이며 이제는 이를 보호자 모두와 공동체가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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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는 “애나 잘 키워라”지만 엄마들은 “정치한다”

2019 페미니스트 ACTion! ①정치하는엄마들

백운희 / 2019-04-15

일다(여성주의 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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