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선생님 / 심리학관
* 오늘 무기력한 아이들은 오늘이 주는 급성적인 충격으로 갑자기 무기력해진 것이 아니라, 제각각의 사연에 따라 오랜 시간에 걸친 결과로서, 오늘의 무기력을 보이는 것
* 결과로서 이루어진 무기력을 이해하지 못하고 조바심을 내면, 우리는 아무 변화도 만들어내지 못함
-> 조바심은 무기력한 아이들에게 채찍이 되어 더 무기력한 상태를 만들고 말 것
(TIP) 차분한 마음으로 심사숙고하면서, 우리 아이가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었던 과정을 이해하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하자
* 정신적 죽음(psychic deadness) : 시간을 죽이면서 버티고 있는 무기력한 아이들
-> 주체가 빠진 삶, 내용 없는 삶, 다른 사람이 시키는 대로 하는 삶, 기계처럼 움직이는 삶, 세상과 닿아 있는 부분은 죽여놓고 내적 공상만 부여잡고 살아가는 아이들
* 무기력한 아이들의 공통점 : 감각의 상실
-> 그 가운데서도 핵심은 '통증의 상실'
-> 살아 있으면 통증이 너무 심하니까 통증을 느끼는 감각을 죽여놓는 것
* 마음과 정신의 죽음을 대신할 수 있는 것
-> 깊은 잠, 잠과 비슷한 상태인 게임이나 텔레비전, 이와 유사한 뭔가에 빠지는 행위
-> 해리된 생활 : 수업 시간에는 죽어 있고 쉬는 시간에는 깨어 있기 / 요구하는 어른들 앞에서는 죽어 있기 / 이해하는 친구들 앞에서는 살아 있기 / 강요받은 일 앞에서는 무능함 보이기 / 좋아하는 일 앞에서는 미치도록 폭발하기 / 숨기기와 보이기 / 온오프를 반복하는 이중생활
(TIP) 열정이 싸늘히 식은 정지된 심장을 갖고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심폐소생술은 '열심히 해라' '꿈을 가져라' '나처럼 해봐라'가 아닌 다른 것이어야
"자더라도 학교에 가는 이유는, 부모님을 위한 최선의 효도에요. 고등학교는 졸업해야 한다는 부모님의 마음에 대못을 박고 싶지는 않아서 학교에 가기는 가는 거죠. 하나밖에 없는 자식인데 어떻게 저만을 위해서 살아요. 전에 안 한다고도 해보고, 집도 나가보고 했는데 엄마랑 아빠가 너무 힘들어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최대한 아무 생각 안하려고 해요"
"학교 선생님들이 사정도 모르고 너무 다그치면 힘들어요.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는데 깨어 있는 것이 얼마나 힘든데. 어차피 깨어 있어도 자고 있어도 수업을 안 듣는 건 똑같은데요, 뭐. 그리고 지금 열심히 해서 뭐가 되겠어요. 더 피곤해지기만 하지. 아무 생각, 아무 느낌 없는 게 편해요"
(TIP) 아이들이 그래도 어딘가에 나가서 멍 때리고 있는 것도, 자고 있는 것도, 한편으로는 아이들의 노력이고 협력이며, 어른들을 위한 최선의 노력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아줄 필요가 있다
"아, 그냥 제가 너무 싫어요. 뭘 해도 싫고. 또 그냥 이렇게 무기력하게 지내는 것도 싫어요"
"내가 밉고, 내가 쓸모없게 느껴지고, 그냥 이렇게 지내다가 어떻게 되겠지 하는 생각인데... 그렇다고 포기란 말을 쓰고 싶지는 않은데.... 일단 그냥 잠만 자고 싶을 때가 많아요"
"나 자신을 긍정하고 사랑하라구요? 너무 어려운 일이네요. 지금까지 내가 지내온 걸 보면 나를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으니까요"
* 아이는 자신이 자신을 싫어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증거들을 제시하려고 애쓴다
-> 부모가 아이에게 화가 났을 때 퍼부은 말들, 학교에서 선생님이 아이에게 실망해서 던진 말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음
-> 벌레, 쓰레기, 배신감, 쓸모없음, 가치 없음이라는 딱지를 스스로에게 붙임
-> 그런 자신에게 할 수 있는 일은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이 미워했던 것보다 더 자신을 미워하면서 무기력하게 지내는 것
* 자기혐오의 자리에는 깊은 절망이 채워져 있음
-> 해봤는데 기대에 못 미친 경험 / 해봤는데 실망스런 결과 / 열심히 해본 적도 있는데 도달하지 못한 목표 / 돌아온 싸늘한 시선 / 사랑받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에 휩싸였던 기억들
(TIP) 절망의 자리를 희망의 자리로 대체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함. 특히 자신에 대한 관점을 다시 정립하고 자신을 수용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 아이들 스스로 그 계기를 만들기는 힘들기 때문에, 부모 / 학교 / 사회의 관점 변화와 수용이 선행되어야 한다
"(초등학교 6학년) 공부가 지겨워요. 벌써 10년은 했잖아요. 10년! 엄마가 그러는데 저 공부 세살때부터 시켰다고 하더라구요. 태어나서 한 거라곤 공부밖에 없어요. 엄마 시키는 거 거의 다 했잖아. 근데 이젠 못 하겠다니까! 지겹고, 지쳤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고!"
"선생님, 제가 이제껏 편히 잠을 자본 날이 없어요. 맨날 밀린 숙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잠자리에 들었거든요. 하루라도 편히 자고 싶어요. 그리고 이제 아무것도 안하고 싶어요. 뭘 하라는 말 자체가 싫어요. 아무도 나한테 뭘 하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TIP) 우리 문화에서는 어릴 때부터 자식에게 무언가를 쏟아부으려는 강박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자. 우리 아이들은 만연한 피로를 호소하고 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 패잔병들의 집합 : 교실에는 학벌 전쟁, 학업 전쟁에서 부상당하고 포기하고 낙오한, 그래서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기는 아이들이 잔뜩 앉아 있음
-> 아이들은 모두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하고 패배한 채 트라우마를 입은 환자들처럼 가끔 흥분하고, 주로 멍 때리고, 각성되기 어렵고, 에너지가 없는 상태
->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텨내고 있다는 표현이 맞는 일상
* 여전한 패배감과, 곳곳에서 맞닥뜨리는 트라우마
- 학원을 다니기 위해 테스트를 받을 때 / 레벨업에서 떨어질 때 / 성적표를 받았을 때 / 이웃집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엄마에게서 / 학교에서 자신을 대하는 선생님들의 태도에서
* 실망과 무관심이 갈수록 커지면서 위축된 상태로, 그야말로 전선에 나서기 두려워짐
-> 큰 부상을 입으면 전선에서 후송되기를 바라는 병사, 낙오되거나 도망친 병사처럼 지내기로 결정함
(ex) 특목고를 준비하다 떨어진 한 아이의 이야기
- 자신이 특목고를 지망하며 공부를 열심히 하던 때와, 낙방하고 일반고에 진학하면서 겪은 주변의 태도는 천지차이
- 세상에게 다른 대접을 받고, 자신을 보는 자신의 태도도 달라져서 고등학교 입학 이후에 생전 해보지 않았던 피시방 가기, 지각하기, 시험 기간에 공부 안하기 같은 '짓들'을 하며 살게 되었음
(TIP) 공부 상처, 진학 실패가 요즘 아이들에게는 학대와 방임 다음으로 가장 큰 트라우마
-> 부모의 기쁨이나 사회적 환대를 받을 수 없으므로, 패배를 겪은 이후에 아이들은 탄력성을 잃어버림
-> 무기력은 패배에 대한 낙심에서, 마음의 부상에서 회복하지 못하고 처져 있는 상태라는 것을 이해하자
* 무기력하게 지내는 아이들을 보며, 함께 지내고 있는 어른들의 어려움을 살펴보는 것도 중요함
* 진짜로 무기력한 사람은 이 상황을 바꾸지 못하는 어른들
-> 그런데 우리는 무기력감에 망각 중이거나 회피 중이거나 전가 중
-> 아이들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시스템이 있다는 것을 대한민국 어른들이 모르지 않지만, 어절 수 없다는 자괴감이 도사리고 있음
* 우리가 지금 아이들에게 제시하는 것이, 아이들을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그것을 '해내야만' 한다고 주장함
- 초등학생은 중학 수학을 풀어야 한다
- 청소년기에는 여행 한번 제대로 가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 인류의 유산인 다양한 문화 체험을 사치로 여겨야 한다
-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시대가 강요하는 시스템에 갇혀 지내야 한다
(TIP) 무기력한 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있는 어른들은 사실 아이들에게 화를 내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화를 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 어른들이 화를 내는 이유
첫째, 무기력한 아이들을 변화시킬 힘이 자신에게는 없다는 데서 생기는 화
둘째, 아이들에게 결핍해 있는 희망을 제시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화
셋째, 체면, 생존, 부담, 두려움, 걱정에 대한 회피에서 생기는 화
* 무기력한 아이들에 대한 화는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 자신을 향한 화로 바뀌어서, 증오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함께 포기한 채로 지내게 됨 -> 어른들 자신도 무기력해지고 마는 것
어른들이 화난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다른 방식, 다른 전략을 찾아야 하는데
아마 그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해본 일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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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들 무기력의 비밀>
우리 아이들의 의욕과 활기는
왜 사라졌을까.
* 김현수 선생님
안산 마음건강센터 센터장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