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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들어달라는 것이었는데.....

박정민 배우님 / 심리학관

by 심리학관

듣는 것에 인색한 사회다. 어쩌면 그런 시대인지도 모르곘다. 듣기보단 말하는 것에 익숙한 시대. 들리는 것을 듣는 것조차 원하지 않는 이곳에서, 듣고 싶어 듣는 행위는 사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나 죽고 싶어"

"지랄하지 말고 술이나 먹자"

이런 식이다.


* 내가 왜 죽고 싶은지 묻지 않는다.

* 다섯 글자로 말하니 열한 글자로 답한다.

* 딴에 여자랑 헤어져서 죽고 싶은 것이겠거니 한다.


* 여자랑 헤어졌으니

술이나 진탕 마시면 죽고 싶지 않겠거니 한다.

* 왜 헤어졌는지,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헤어졌는지, 헤어지고 뭘 했는지, 내가 지금 집인지 공원인지 한강 다리 위인지 듣지 않고 술을 먹자고 한다.

* 술을 마시면 된다고 열한 글자로 답한다.



이 시대가 편집의 시대고 무관심의 시대다. 비단 영화나 TV 프로그램뿐만이 아니다. 우리 삶 깊숙이 파고들어와 있다는 거다.


상대의 말을 편집해서 듣고

어떠한 상황을

오역하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사실 관심도 없으면서

듣고 싶은 대로 들어버리고

금세 잊어버리는 일이 잦다.


"어, 그랬어?"

"난 이런 줄 알았는데"

"네가 그렇게 얘기하길래"

"그럼 내가 잘못 들었나보네"

"미안해, 됐지?"



누군가와 대화를 하면 나도 모르게 '다음을 듣고 맞는 것을 고르시오' 식의 듣기 평가를 하고 있다. 듣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맞는 것을 고르는 게 중요해졌다. 어쩌다 틀리면 꾸중을 듣고, 실수하면 돌이킬 수 없는 시대에서 맞는 것을 고르는 데 혈안이 되어버렸다.


그저 들어달라는 것이었는데,

그러다가 오히려 틀린 답을 말하는 바람에

상대는 더 힘들고 죄스러운 감정을 부풀린다.


우리가 필요한 건

그저 잠깐동안


내 입을 닫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침묵과


그랬구나 라는

짧은 동의의 말뿐.


********************************

<쓸만한 인간>

* 저자 : 박정민 배우님

작가는 아니다.

글씨만 쓸 줄 아는

그저 평범한

당신의 옆집 남자.


가끔 텔레비전이나 영화에 나오기도 한다.

영화 <파수꾼> 혹은 <동주>

또는 <그것만이 내 세상>

아니면 <사바하> 등에서 볼 수 있고,

<타짜: 원 아이드 잭>에도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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