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팔리기 싫어서 몸부림쳤던 것의 결산이 나의 오늘이다

박정민 배우님 / 심리학관

by 심리학관

수많은 부끄러움이 내 삶을 훑고 지나가며

크고 작은 상처를 남겼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그것에 대비하고

만회하며 사는 버릇이 생겼다.


창피당하고 싶지 않았고,

무시당하고 싶지 않았다.


비웃음과 수치심에는 장사가 없다.

지져도 지져도 굳은살이 생기지 않는다.


아물지 않는 입병 같은 것이다.

아프긴 더럽게 아프고.

하루 종일 그 상처에만

온 신경을 몰두하게 되니 말이다.



그래서 웬만하면 나서지 않았고, 나설 거면 무조건 잘하려고 했었다. 남들 앞에 서는 직업을 가져버린 나라는 인간 자체가 심히 모순적이어서 내 자신에게 혐오감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자중하지 못하고 욕망에 굴복한 스스로가 한심스러운 그 시기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나설 거면 잘하기'를 명심하고 명심했다.


"부끄러움을 알면 부끄러움은 나의 몫인 거야.

절대 부끄러운 짓을 하지 마. 안 되겠지만."

영화 <동주>에 나오는 정지용 시인(문성근 분)의 대사("부끄러움을 아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야.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지.")를 난 항상 이렇게 바꿔 읊는다.



'부끄러움을 알면 부끄러운 게 아니'라는 말에는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것이다. 일종의 소심한 반항인 셈이다. 나는 부끄러움을 아는 순간이 지독히도 싫었다. 그래서 꼭 잘하고 싶었고, 잘해야만 했다.


잘하지 못하는 순간은 너무나도 끔찍해서 그럴 땐 누구보다 야멸차게 내 자신에게 온갖 험담을 퍼부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반복했다. 결심이 반복되니 결심조차 실수처럼 느껴진 적도 허다하다. 그럼에도 절대로, 절대로 그 입병 같은 수치심과 비웃음만은 면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슬프지만 그게 내 삶을 돌봤다. 최대한 수치심을 빗겨 가자는 각오, 내 자리에서 가만히 잘하자는 결심, 거듭되는 실패와 후회.


그리고

다시 멱살을 잡고

제자리로 돌아오는 과정의 무한 순환.


만약 내 삶에 어떤 성과가 있다면

그것은 순전히 그 순간들의 공인지도 모르겠다.


후회와 강박, 자책과 오답으로 점철된 역사가

삶을 떠받든다니 자칫 비극적이지만 '-2의 네제곱'이나 2의 네제곱이나 마찬가지로 결국엔 16이니 이 따위로 살아도 무방하겠다고 판단한지도 오래다. -2를 더 곱하면 -32가 되는 것은 함정이나, 다시 -2를 곱해 64로 만들어 '요건 몰랐지?' 하는 익살로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내년이면 마흔이다.

제기랄.


그간 모아온 채찍의 상흔이 가슴속에 온통이다.

나의 훈장. 나의 무용담.


아팠고 처절했고 지랄맞았다.


쪽팔리기 싫어서 몸부림쳤던

그 모든 것들의 결산이

나의 오늘이고 내일이다.


뭘 그렇게 남 신경을 쓰냐고, 너를 믿으라고 조언하는 그 모든 사람들에게 난 속으로 말한다. '내가 그렇게까지 남 신경을 써서 이렇게라도 살아. 그리고 그런 나를 내가 어떻게 믿냐'고.



난 내일도

남 신경을 쓸 것이다.


모두를 만족시키겠다는

불가능의 벽에 또 부딪히고


거듭 좌절하고

다시 일어날 것이다.


징글징글한 집착으로

하루를 채울 것이다.


편히 자기 위해서.

편히 꿈꾸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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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심의 역사>

* 박정민(朴正民) 배우님 & 출판사 무제 대표님

* 창작과 비평

* 제53권 제4호 / 통권 210호

* 2025년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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