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는 반드시 인생이 무너지고, 미래없이 살아야하나?

시민언론 민들레 / 심리학관

by 심리학관

밝고 활기찬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는 학교 운동장. 여고생 주인(서수빈)은 남학생들을 압도하며 타고난 운동 신경을 뽐낸다. 열여덟 주인이는 공부도 잘하고 친구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운동 신경도 탁월하고 외모도 준수하다. 그야말로 인기 많은 여학생이다.


지난해 개봉해 좋은 평가는 물론 관객도 제법 동원한 윤가은 감독의 영화 ‘세계의 주인’ 주인공은 주인이다. 이 여고생의 진짜 치트키는 베테랑 연애인이라는 것이다. 상대를 리드하며 농도 짙은 스킨십도 서슴없이 시도하는 멋쟁이 여학생. 로맨스 웹툰을 제작하는 단짝 유라(강채윤)에게 주인이는 훌륭한 소스 제공자다. 다만 특유의 변덕스러움으로 오래가는 연애는 못하는 게 흠이라면 흠이랄까?


아무런 문제 없이 모범적인 학교생활을 해나가는 주인이에게는 누구에게도 쉽게 털어놓을 수 없는 비밀이 있다. 알고 있는 사람들조차 생각에서 지워버린 그 비밀은 아동 성폭력 전과자가 동네로 이사 온다는 소식에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반대 서명 운동을 주도하는 같은 반 친구 수호(김정식)는 유일하게 서명하지 않은 주인이를 설득하려고 한다. 성폭력 피해자의 고통을 얘기한다. 매일 지옥에서 살면서 일상생활도 하지 못하고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인생이 무너져 영혼도 피폐해져 한마디로 미래가 없는 삶을 산다고 얘기한다. 피해자를 돕고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 서명에 동참하기를 요구한다.


그러나 주인이는 수호가 생각하는 피해자의 어두운 삶에 대한 묘사가 잘못되었음을 지적하며 서명에 완강히 거부한다. 그러다 얼떨결에 자신도 성폭력 피해자임을 고백해 버린다. 이제 주인이의 삶은 더 이상 고요할 수 없는 격랑 속으로 빨려든다.


주인이는 아동 성폭력 피해자이며 트라우마를 안고 사는 사람이다. 친족에 의한 성폭력은 인간에 대한 신뢰감과 친밀감은 물론, 몸의 경계를 파괴한다. 수호의 생각처럼 우리도 역시 그들을 몸과 영혼이 파괴된 채 어둡고 비주체적인 삶을 사는 불행한 피해자들이라 여긴다.


선의를 가진 대다수는 진심으로 그들을 이해하고 도와주려 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오히려 피해자들과 멀어지며 그들의 분노와 절망을 유발하기도 한다. 왜일까?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영화는 관객들에게 주인이의 상처에 대해 함께 울어주거나 분노에 동참해달라고 호소하지 않는다. 또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새로 거듭난 인생을 살아가는 주인이의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리지도 않는다. 대신, 성폭력 피해를 고백한 피해자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고정관념을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친구들은 주인이의 불행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예전처럼 살갑고 편하게 다가오지 못하고 거리를 두면서 조심스러워 하고 실수할까봐 망설이기도 한다. 주인이와 격렬한 토론을 벌였던 수호는 입을 다물고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남자친구 찬우(김예창)는 예전처럼 친밀하게 지내려 노력하지만 주인이의 미묘한 감정 변화에 힘들어 한다.


이들의 태도는 선의의 행동이지만 기존의 관계를 멈춰버리고 주인이를 더 고립시킨다. 명백히 2차 가해는 아니지만 어쩐지 주인이의 일상을 더 엉망으로 만드는 데 일조하는 듯하다.


이 시점에서 관객들은 당황스럽다. 친구들이 잘못한 게 없는 것 같은데 왜 주인이는 더 힘들어지는 거지? 영화는 이들을 가해자로 고정하지 않는다. 우리가 당황하는 이유는 악의 때문이 아니라 배워본 적 없는 상황에 던져졌기 때문이라는 것을 가르쳐준다.


주인이에게 쪽지를 보내는 익명의 인물이 있다. 그는 주인이가 고백한 뒤에도 어떻게 멀쩡한 일상을 살 수 있는지, 고백이 진짜인지 의문을 제기한다。다소 노골적이고 무례하지만 우리의 궁금증을 사실적으로 표현해준다.



우리의 시선에서

성폭력 피해자는

나와 같은 주체적인 존재가 아니라


동정의 대상이며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다.


피해자의 고통에 대해 듣고

이해하려 애쓰며

용기를 주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 이유로 피해자가 밝은 모습을 보이면

“불행을 잊기 위해 애쓰는구나” 동정하고、

우울해하면 “언제까지 저럴까,

더 힘든 사람들도 많은데,

어서 이겨내야지”라고 말한다.


우리는 마음껏 피해자를 동정할 수 있도록

피해자가 자신의 불행을

속속들이 설명해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피해자가 그래야 할 어떤 의무도 없다.

우리는 그들에게 그것을 요구할 자격도 없다.



피해자는 주체적인 인격체로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불행을

이해시켜야 할 의무를 갖지 않으며


반드시 이른 시일 안에 상처를

온전히 극복해야 할 의무도 갖지 않는다.


주인이는 고백은 하되 설명하지 않는다. 분노에 동참해 주길 바라지도 않고 상처를 완전히 치유하는 데 얽매이지도 않는다. 그녀는 그냥 상처를 안고 일상을 보내는 선택을 했고 남들이 생각하는 불행한 삶도 살지 않는다.


그렇다고 주인이가 마냥 담담하고 아무렇지 않게 생활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피해자들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희미하게 흐려놓지 않는다. 주인이의 가족들은 상처를 숨기려 애쓰지만 문득문득 밀려오는 고통과 분노로 몸살을 앓고 있으며 주인이 또한 가끔 폭풍처럼 울부짖으며 엄마를 원망하기도 한다. 친아버지의 성폭력으로 여전히 법정에 불려 다니는 미도는 용서할 수 없는 아버지에 대한 미움으로 괴로워하며 남은 가족과의 관계도 단절된 채 외롭게 지낸다.


주인이가 속한 청소 봉사 모임은 성폭력 피해자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상담을 통한 치유나 가해자들에 대한 성토、피해 서사를 공유하는 데 시간을 쓰지 않는다. 감정을 소모하는 일 대신 몸을 쓰는 작업을 통해 아무 것도 아무 말도 요구하지 않는 시간을 경험한다.


별 말 없이 청소에만 집중하는 느슨한 공동체로 보이지만 분명 그들은 서로를 보듬고 연대하고 있다. 트라우마를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하더라도 그런 시간들이 그들에게 일상으로 돌아갈 힘을 주고 평범한 연애, 결혼, 출산도 가능하게 한다.



이 영화는 앞서 말했던 것처럼 치유의 과정을 보여준다거나 희망적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주인이의 친구라면 정말 잘 할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곁에 있을 수 있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진짜 회복이란

상처를 안고도

내 삶의 주도권을

놓지 않는 것,


설명하지 않아도

존재 자체로 소중하며


스스로 삶의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담담히 이야기한다.


세상의 모든 주인들이여,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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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 이겨내고 온전한 내 삶 찾기.

윤가은 감독의 영화 ‘세계의 주인’ 리뷰.

이인순 시민기자님.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2026.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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