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의식과 당위성
안녕하세요! 하하하! 짜잔! 오늘따라 유난히 여러분들이 반가운걸요? 이유가 뭘까요? 괜히 더 반가운 날도 있고 한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도 찰빵심리가 반가웠으면 좋겠어요!
오늘은 지난 화에 이어 당위성 사례 두번째를 함께 살펴볼 것입니다. 우와 우리가 함께할 사례들이 많으니 저는 너무 좋아요! 이 당위성 사례에 관심 있는 분들은 어쨌든 이번 주제를 마칠 때까지는 찰빵심리를 보러 오실 거잖아요? 이야야얏! 헤헤…
그럼 바로 사례를 볼까요!
사례 2
이번 시험은 꼭 잘 봐야 돼. 학점을 받으려면 이번 학기 진짜 잘 해야 돼. 학점이 중요하다고. 요즘 다들 자격증이다 영어 점수다 갖추고 있어서 학점도 잘 받아야 돼. 시험 범위가 꽤 많다. 이거 다 봐야 하는데… 다 외워야 하는데 어떻게 하지. 시험을 잘 봐야 하는데… 지금 이렇게 앉아 있는 게 너무 괴롭다. 지난 학기에 집중을 잘 못해서 성적이 영 안 좋았지. 그러니 이번 학기에 만회를 해야 돼. 근데 너무 하기 싫다. 좋아하는 과목도 아니고 내가 원했던 과도 아냐. 수강신청도 망해서 이 과목 듣게 된 거라 이 과목에 흥미가 가질 않아. 자료는 왜 이렇게 많아. 이거 다 외워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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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휴, 이런… 사례의 주인공이 너무 힘들어 보이네요. 이번 사례는 당위성의 결정판인 것처럼 주인공이 말하는 문장 하나하나가 당위성으로 범벅이 되어있습니다.
여러분, 시험은 왜 잘 봐야하는 걸까요? 이 질문에 혹시 ‘당연한 소리 하고 앉았네! 그럼 잘 봐야지, 못 보냐?’ 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지금 당위성이 문제가 아니라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를 생각해봐야 할 단계이므로 이와 같은 반응을 하시는 분이 있다면 다른 방향으로 자신을 돌아보길 바랍니다.
위의 사례와 같은 상황을 단 한 번도 겪지 않으신 분이 계신가요? 만약 계시다면 부럽습니다. 빈정거리는 것이 아니고 진심으로 부럽습니다. 시험은 내가 잘 본다고 반드시, 100% 잘 봐지는 것도 아니고 꼭 잘 봐야 하는 시험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즉, 내가 어떻게 해서든 이룰 수 있는 면과 어찌할 수 있는 면이 공존하면서 꽤 자주 우리의 삶에서 만나게 되는 “성장과 위기”의 관문입니다. 그리고 시험이라는 형태를 다양한 이유로 몇 번은 만나게 되는데 그 때마다 위의 사례와 같은 심적 고통이 강렬한 반응을 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시험이란 관문이 두렵지 않고 성적도 괜찮았을 것이며 도전과 성장의 기회로 잘 활용되었을 것이기 때문에 저는 부럽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평가가 필수적인 “시험”을 달갑지 않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평가”는 필연적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냥 내가 열심히 한 것으로 충분한 경우도 분명 존재하지만 성과에 대한 결과물을 측정하고 또 그 결과를 활용하여 다양한 장면에서 활용하기 위해 시험은 점수화 되고 서열화 됩니다.
특히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시험에서는 떨리고 머리가 새하얘지고 심장이 크게 요동치고 펜을 잡은 손이 떨리기도 합니다. 괜찮았던 배가 아프기도 하고 눈물이 날 것 같은 압도감에 시험을 완수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결과가 나왔을 때 내가 받고 싶었던 결과가 아닌 경우 자신에 대한 실망, 시스템에 대한 분노, 기대한 자신에 대한 창피함, 원치 않았던 결과로 인해 벌어지는 상황에 대한 절망 등 하나만으로도 벅찬 온갖 부정적 감정에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 같은 통제감 상실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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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시험 하나 못 봤다고 저렇게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다고?’ 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저는 이 분들도 부럽습니다. 그리고 당위성 시리즈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당위성과 유연함 사이에서 잘 조율해 나가는 분들보다는 당위성을 경직된 형태로 사용하는 분들을 위한 글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사례뿐아니라 앞으로의 사례에서 ‘너무 심하네. 뭘 이 정도 가지고…’ 라는 분들을 예상하면서 부연설명 하는 일은 가급적 줄이려고 합니다.
그럼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시험을 왜 잘 봐야할까요? 이 당연한 질문을 명확하게 스스로에게 아무 판단없이 해 보는 사람은 생각보다 드뭅니다. 오늘의 주제는 바로 <목적의식과 당위성>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자는 생각과 나는 반드시 시험을 잘 볼 것이다는 비슷해 보이지만 상당히 다른 말입니다.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자고 하고서는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회피하고 합리화하는 상황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심으로 나에게 중요한 시험을 대하는 스스로의 자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에게 중요한 시험이란 무엇인지부터 생각해 봐야겠네요. 이렇게 생각은 하나하나 층을 이룹니다. 그러나 우리는 가장 표면에 있는 생각만 하는 것이 익숙합니다. 바로 ‘반드시 시험을 잘 봐야 해!’ 와 같은 생각 말입니다.
그럼 생각의 층을 따라 가 볼까요? 다음과 같은 순서로 생각해 보면 됩니다.
1. 이번 시험을 잘 봐야 돼!
2. 이번 시험을 잘 봐야 하는 이유는 학점을 4점대로 유지해야 하기 떄문이야!
3. 그래야 장학금을 타지. 집에 손 벌리기 싫어. 등록금 달라고 할 때마다 눈치 보이고 내가 스스로 할거야!
4. 내가 스스로 하면 나도 당당하니까 할 말 다 할 수 있겠지. 내가 손 벌리는 것도 아니고 알아서 하는데 이래라 저래라 더 이상 듣기 싫어.
위의 생각을 따라가보니 어떤가요? 위의 사례의 주인공은 시험을 잘 보려는 이유가 “독립성의 확보”에 있었습니다. 독립성은 학점을 잘 받아서 장학금을 받고 등록금을 받을 때마다 눈치를 보지 않으면서도 확보될 수 있겠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확보됩니다. 그리고 사실 위의 생각에는 더 깊이 있는 생각들이 있으니…
5. 내가 어느 정도 해 내야 눈치보지 않고 내 얘기를 떳떳하게 하는 거야. 내가 아쉬운 게 있으니까 나도 집에서 제대로 얘기도 못 하고 죄인이 되는 기분이잖아. 결국 사람은 주고 받는 관계인 거야. 내가 나 스스로 다 하면 눈치 안 보고 당당한 게 결국 세상의 이치인거야!
6. 항상 그래 왔어. 내가 시험을 잘 보면 내가 갖고 싶던 것을 사 주셨어. 그래. 투자한만큼 해 내야 보상을 받는 거지. 결과를 가져가지 않으면 좋은 소리 못 듣는 거야…
“독립성의 확보” 이면에는 “조건적인 관심”이 있었습니다. 내가 한 만큼, 내가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을 만큼 혼자 다 할 줄 알아야 내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든지 내가 할 수 있는 정도를 얘기할 수 있고 호기롭게 장담했지만, 나에 대해 누군가가 큰 기대를 했지만 그 결과가 내 다짐에, 나에 대한 기대에 미치지 못했더라도 우리는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서로를 대할 수 있습니다. 위의 주인공은 어느 시점부터 저렇게 조건적인 관심과 애정을 채택하게 된 걸까요…
굳이 어린시절의 부모님이라던가, 세상이 돌아가는 것이 결국 그렇더라 라는 이유를 오늘 깊이있게 다루지 않겠습니다. 오늘은 사람이란, 그 존재 자체만으로 얼마든지 당당할 수 있고 내가 생각한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았더라도 그 결과가 나라는 전체집합이 아니며, 배가 아프고 정신이 흐릿해지고 화가 치밀어 오르고 눈물이 날 때까지 내가 흠결 없기 위해 나를 몰아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목적의식”은 과연 당위성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내가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있을 때, 내가 꼭 얻고자 하는 결과가 있을 때 그 고된 과정에서 연료가 되는 것은 억압이 아닌 “목적의식”입니다. 이 시험을 왜 잘 보고 싶은지부터 생각의 층을 다른 방향으로 따라가 봅시다.
1. 이 시험 진짜 잘 봐야 돼!
2. 잠깐, 난 왜 이렇게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순간까지 책상 앞에 앉아있는 거지?
3. 이런 상태라면 시험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은 뻔한데… 지난 번에도 이렇게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순간까지 버티다가 결국 무너졌었어…
4. 그래. 생각 좀 해 보자. 나에게 시험 점수는 과연 뭐길래…?
5. 우선 오늘 내가 공부해야 하는 시험은 전공시험이고 전공시험 성적이 좋아야돼. 문제는 내가 이 전공을 진짜진짜 하고 싶어서 하는 것도 아닌데 매번 이렇게 날 스스로 괴롭히면서 악착같이 공부를 한다는 거야. 교양시험은 진짜 내가 즐겁게 공부하는데 난 왜 이런 전공을 선택해가지고… 그래, 이유가 있었어. 취업 잘된다고 이 전공 선택한거지.
6. 나에게 취업은 뭐였길래… 취업 이후에는 뭐가 있었을까…?
7. 그래, 난 안정된 직장을 갖고 싶었어. 안정되지 않은 직장을 가지면 항상 돈 걱정 하면서 살 거라는 부모님의 얘기를 너무 자주 들었어. 부모님은 열심히 사셨지만 안정적이지 않은 수입으로 힘들어 하셨어. 그리고 어린 나도 힘들었어…
8. 안정된 직업을 갖고 싶은 욕구는 나의 욕구인가? 생각해 보자. 부모님의 욕구를 내가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인 것은 아닌지.
9. 일부는 부모님의 영향인 것 같다. 이건 부정 못하겠어. 하지만 나도 안정적인 게 좋아. 그래서 지금도 알바를 여러 개 하면서 내가 필요한 걸 사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어.
10. 돈이 전부가 아닌 건 알아. 하지만 난 없으면 불안해. 내가 학생 신분을 벗어나게 되면 난 진짜 불안해질거야. 미래에 대한 불안이 날 이렇게 스스로 몰아가는 거였구나…
11. 미래와 안정적인 삶에 대한 불안이 나쁜 건 아냐. 그리고 미리 대비하는 건 내 성격이기도 해. 그래서 지금까지 누구보다 꼼꼼하게 계획을 세우고 내가 챙겨야 할 것들을 놓치지 않고 해 내서 평판도 좋고 나 스스로도 내가 좀 뿌듯한 면이 있어.
12. 그래, 오늘 공부하는 시험은 잘 보고 싶다. 이왕이면 잘 보고 싶어. 하지만 내가 받을 점수를 딱 정하고 있지는 말자. 다 맞는 것만 생각하면 너무 힘들어. 그저 보호하게 무조건 잘 봐야한다는 것도 나에게는 좋지 않아. 난 불확실한 것에 대해 더 불안해 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오늘 내가 외울 수 있는 만큼 하자. 난 어느 정도는 다 외우는 공부 습관을 가지고 있어, 도저히 안 외워지고 배가 아플 때까지 앉아있지는 않을 거야. 도저히 안 외워지는 건 최대한 해 보고 표시하고 넘어가자. 부분적인 것에 집착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는 것을 지난 시험을 공부하면서 겪었잖아. 그래, 한 번 해 보자! 우선 심호흡 하고!
여러분, 주인공의 자신의 목적을 찾아가는 과정을 함께 해 보셨습니다. 안정적인 미래는 멋진 목적이네요. 내가 삶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목적의식”의 목적에 해당됩니다. 주인공은 학점이 목적이 아니었어요. 좋은 학점은 수단이었습니다. 사실 안정적인 삶은 최종 목적은 아닙니다. 최종 목적은 그럼 무엇일까요? 마지막 생각의 층을 따라가며 주인공이 진짜 원하는 삶의 나침반에 해당하는 목적을 함께 찾아가봅시다.
13. 안정적인 미래라… 그래 좋지. 안정적인 미래를 싫어할 사람이 있나 싶다. 그런데 나에게 안정이란 과연 안정적인 수입일까? 그 수입으로 아무 고민없이 살아가고 싶은 걸까? 세상에 내가 지금 “아무” 고민없이 라고 생각했네? 그런 건 없는데… 살아가는 동안 크고 작은 고민은 필연적으로 일어나는데 내가 절대적인 상태를 가정하고 있었구나…
14. 그래, 다시 생각해보자. 안정적이란 것은 음… 그래,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사는 삶인 것 같다. 나의 욕구를 충족하면서 사는 미래. 이거구나. 내 목적이.
15. 그럼 내 욕구를 충족하면서 사는 것이 내 삶의 최종 목적이면 아니, 난 지금 뭐한거야…? 이렇게까지 괴로워하고 눈물이 나기 직전까지 날 몰아친거야… 아 이런… 몸과 마음아, 그 동안 주인이 미안했다. 앞으로는 이렇게 몸과 마음이 비명을 지를 때까지 채찍질 하지 않을게! (유연성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함)
16. 난 기본적으로 주어진 것은 완수하는 스타일이야(자기인식을 함). 그래서 내가 아무리 여유를 부려도 손 놓고 널부러지지는 않아. 오히려 내가 다 탈 때까지 긴장상태에서 책상 앞에 있었을 때 소진되어 버려서 완수하지 못했었어(자신의 패턴에 대한 인식함). 그 때 배가 아파지고 식은땀이 나고 갑자기 졸음이 쏟아졌었지(자신의 신체반응에 대해 자각함). 그래, 내가 원하는 건, 내 욕구는 엄청나게 큰 돈이 아냐. 남들이 봤을 때 입이 떡 벌어지는 비싼 물건들도 아냐. 물론 그럼 좋겠지. 크고 비싼 것이 주는 멋짐이란 게 있으니까. 그런데 내가 날 봤을 때 난 내가 원하는 정도가 있었어. 내가 미 소지어졌을 때, 내일 또 하고 싶다라고 생각했을 때 그게 내가 좋아하는 거였어. 오케이. 어느 정도 알겠다. 오늘은 이 정도로 내 삶의 목적에 대해 생각하자. 그리고 나머지는 시험 끝나고 생각하자. 학교상담센터를 가 보던지, 친구와 대화를 해 보던지, 그리고 저번에 즐겨찾기를 해 놨는데 <심리학관> 이라는 브런치에 댓글을 남기던지(나를 위해 도움이 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냄). 자, 그럼 다시 시작이다!
©Eqd
여러분, 주인공이 자신의 목적의식을 키워가는 과정을 함께 했습니다. 목적의식을 키워가는 과정 또한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주인공은 우선을 내 앞의 과업에 대해 열심히 하자고 생각하고 집중하기 시작합니다. 생각이 꼬리를 물고 갑자기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허무함을 느끼는 지경까지 가지 않았습니다. 생각을 적당한 선에서 멈추는 것도 유연함입니다.
오늘은 <목적의식과 당위성>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그럼 이 글을 읽으신 모든 분들에게 건강한 유연함이 함께 하길 바라며!
다음 시간에 새로운 사례로 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