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와 당위성
안녕하세요! 이렇게 또 다시 만났습니다. 이제 많이 추워졌죠? 낮에 잠깐 덥다 싶은 날씨도 완전히 사라졌어요. 계절이 지난다는 것은 저에게 설레는 기분을 가져다 주지만 아쉬움도 함께 느껴집니다. 여러분은 어떠실까요? 설레기도 하고 아쉬움도 있지만 변함없이 여러분을 만난 것은 안도감을 가져다주네요! 여러분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하하하!
오늘도 함께하는 주제 “당위성” 새로운 사례를 바로 봐 볼까요? 고고!
사례 4
한번 시작했으면 끝장을 봐야지. 중간에 포기할 거면 시작 안 하는 게 나아. 그 동안 들인 시간과 노력이 물거품 된다고. 쓸데없는 짓을 한 거잖아. 제대로 해야지. 최선을 다 하는 거야. 성공한 사람들을 봐봐. 할 수 있는 데까지 다 하는 거야. 기초부터 완전 튼튼하게 잡고 시작해야 돼. 아… 근데 이거 시간이 엄청 오래 걸리겠다… 섣불리 시작을 못 하겠어. 그래도 제대로 해야 돼. 근데 엄두가 안 나…
사례의 주인공이 안절부절하네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무거운 마음에 꽉 눌려서 생각만 한가득입니다.
당위성과 함께할 오늘의 주제는 “완벽주의”입니다. 완벽주의라는 단어를 들으면 앗! 이거 내 얘기야! 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종종 “내가 완벽주의 성향이 있어서…” 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과연 누가 이 말을 할까요?
먼저 완벽주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제 질문에 답해보며 완벽주의에 대해 함께 알아봅시다!
완벽주의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어떤 감정들이 느껴지시나요? 어떤 감정이 느껴지는지 묻는 질문이 많은 분들에게 쉬운 질문이 아닌 것을 심리상담을 하며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질문을 바꿔보겠습니다.
완벽주의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좋은 기분이 드나요, 나쁜 기분이 드나요?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감정을 떠올리고 계시나요? 어떤 분들은 판단하는 생각을 떠올리고 계실 것입니다. 다음과 같이요.
“완벽주의는 나쁜 것 같아요. 너무 힘들잖아요.”
우리는 감정을 떠올리려고 할 때 생각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은데 완벽주의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도 생각이 떠오르시는 분들이 꽤 많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완벽주의라는 단어와 함께 흔히 그려지는 모습이 이 정도면 된 것 같은데 자신을 계속해서 몰아붙이고 장면이기 때문입니다. 어디서 본지는 모르겠지만, 그 모습이 나인지 TV나 책에서 본 장면인지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자신을 몰아붙이고 어떤 일에 몰두하는 장면이 “완벽주의”라는 단어를 설명하는 것처럼 함께 떠오르기 쉽습니다.
완벽주의는 어떤 일을 수행할 때 결함이 없이 완전함을 추구하려는 태도나 자기 자신의 수행기준을 매우 높이 잡는 경향입니다. 이 정의는 어학사전에서 찾았습니다. 완벽주의는 신념이기도 하고 태도이기도 하며 성향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이 자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완벽주의를 경직되게 내면화 했을 경우 우리는 이보다 괴로울 수는 없다 지경에 이를 정도로 고통받게 됩니다.
어떤 일을 수행할 때 이 정도면 됐어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보다 좀 더 높이, 좀 더 정교하게, 좀 더 능숙하게 하기 위해 노력을 거듭한 사람들이 더 큰 보상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을 “최고”, “1인자”, “장인” 등으로 부릅니다. 경기나 대회, 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사람들의 찬사를 받는 모습과 겹치죠. 완벽주의를 내면화 한 사람들은 실제로 더 큰 수행을 해내며 더 큰 보상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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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완벽주의는 좋은 건가요? 여기서 좋고 나쁘다는 이분법에 대해서도 말씀드리고 싶지만 오늘은 참겠습니다. 이 주제만으로도 우리의 만남에 할애된 시간을 다 보내버릴 것 같거든요! 제가 또 한 번 말하기 시작하면 한 말 또 하고 예를 또 들고 그것도 모자라서 주의! 이런 첨언을 붙이고 그것도 보자라서 부록! 이라는 파트를 만들고 그것도 모자라서 “다음에 자세히 볼 것입니다” 라고 하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죠! 하하하! 민망… ^O^
완벽주의는 성취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좋은 무기가 됩니다. 그리고 어떤 분야는 완벽주의를 갖추고 있을 때에만 진입할 수 있기도 합니다. 다양한 연구분야, 예술분야, 순위를 다투는 분야 등이죠. 사실 모든 분야에서 완벽주의는 큰 보상을 가져다 줍니다. 제가 “모든”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지금의 자신보다 더 섬세하고 능숙하고 높은 질의 수행을 위해 연습하고 또 연습하면 실제로 어제의 나보다 잘 하게 됩니다.
그러나 항상 이렇게만 할 수는 없습니다. 그 분야가 내 생계와 연결되어 있을지라도 매일, 매 순간 더 할 수 없을 정도로 할 수는 없습니다. 쓴 책의 오타를 보고 또 보면 교정을 완벽하게 할 수 있겠죠. 그러나 마감기일을 넘길 때까지 가지고 있다면 어떨까요?
“내 능력이 부족하니 마감기일을 놓친 거죠!”
혹시 위와 같은 생각이 드신 분이 있나요?
완벽주의는 내가 지쳐서 더 할 수 없을 때까지를 마감기한으로 설정합니다. 부적응적 완벽주의는 그렇습니다. 오늘 얘기할 주제는 바로 이 부적응적으로 기능하는 완벽주의입니다. 그리고 완벽주의는 할 일을 미루는 지연행동을 유발하거나 아예 외면해버리는 회피를 불러일으킵니다.
경직성은 좋을 것이 없습니다. 앞서 보았던 역할도 그랬죠. 내가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고통을 받으면서까지 손에 쥐고 있어야 할 것은 없습니다. 도대체 나보다 중요한 게 어딨다고 그럽니까?
눈물을 철철 흘리면서도 결국 내가 원하는 목표를 달성했을 때 기쁘게 웃으며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는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우울해지고 하고 있는 거의 모든 일은 마감을 넘기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제대로 해 내지 않으면 난 비웃음을 살거야.’ 등의 자동적 사고가 날 지배하는 순간까지 ‘더 해야 해!’라고 스스로 몰아붙이는 상태를 경직된 상태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경직된 당위성은 결국 죄책감을 불러일으킵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흘리는 피와 땀을 폄하하는 것이 아닌, 결국 목표를 이룰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리는 지경이 될 때가지 일에 몰두하는 것은 많이 이상합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렇게까지 하는 것인가 자문할 순간이 온 것입니다.
이 경우 완벽주의에 빠진 사람들의 목표는 수행하고 있는 과업을 잘 하는 것이 최종목표가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바로 다음과 같은 숨겨진 생각들이 목표라고 부를 수 없는, 목적성을 상실한 채로 “당위성”에 매몰된 상태로 마음에 자리잡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1. 내가 잘 해내지 못한다면 나는 비웃음을 살 거야.
2. 내가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사람들이 날 싫어할 거야.
3. 내가 완벽하게 해 내지 못하면 스스로를 속이는 거야.
4. 내가 완벽하게 해 내지 못하면 나에게 기대하는 사람들을 속이는 거야.
5. 내가 완벽하게 해 내지 못하면 누굴 속이는 건지 생각 안 해 봤지만 하여간 속이는 거야!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 여러분. 위의 생각 중 한 가지라도 강력하게 신념처럼 거의 매일 곱씹는 분이 있으시다면 오늘 “완벽주의와 당위성”의 글을 꼭 끝까지 읽어주세요. 위의 말들에 휩싸여 살면 이루고 싶은 것을 이루지 못하게 됩니다. 완벽주의 성향이 있는 분들이 가장 견디기 어려워하는 것 아닙니까? 결국 해내지 못하는 것 말입니다. 그러니 오늘 끝까지 함께 해서 우리에게 더 큰 열매와 결실을 가져다 주는 좋은 무기인 “완벽주의”와 친하게 지내봅시다.
저는 최근 제 분야에서 새로운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심리상담을 계속 해 오던 제가 누군가를 지도하는 작업을 하게 된 것입니다. 너무나도 기뻤습니다. 새로운 이론을 알아가는 즐거움, 분야에서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갔다고 인정받은 “역할”을 수행한다는 뿌듯함, 실제로 잘 해내는 과정 속에서 획득한 “자신감”. 기뻤습니다. 그러나 어김없이(크크크. 어김없이 찾아온다는 말이 너무 식상하지만 너무 적절해서 웃었습니다) 실망하는 순간이 오더군요. 누군가를 지도하는 제 모습에서 어렴풋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저 정도로 적나라한 줄 몰랐던 제 “불안”이 여과없이 보였습니다. 와, 정말 땀이 줄줄 나던데요? 그 날 안감에 기모가 든 티셔츠를 입었는데 윗도리가 흠뻑 젖었고 머리에서는 땀이 나자마자 마르면서 심하게 시원했습니다. 불안한 저는 옆에서 누가 보면 말도 못 붙일 정도로 단호한 말투를 사용하고 있었고 문장을 얘기하는 속도는 어쩜 그리 빠른지 제가 하는 말이 진리라고 믿으며 듣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압도감을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제 막 시작한 새로운 역할을 어느 누가 능숙하게 하겠습니까? 그런데 저렇게 전투적으로 말하고 있으면 어딘가 이상하다 생각해야 합니다. 바로 말하는 그 사람이 불안했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더 강한 표현을 쓰고 혼자 얘기하는 것 같으며 주위를 둘러보지 않는 것 같은 자세로 “선언적”으로 발표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 것입니다.
이럴수가!! 아니, 저 모습은 무엇인가!! 아니, 난 전공이 심리학 아닌가! 그런데 저 자기인식 안 되는 모습은 무엇인가!! 저는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창피했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좋은 동료들과 스승의 얘기를 들으며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의 끝에 얻은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 잘 하고 싶었구나…’
잘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새로 시작한 누군가를 가르치는 역할을 저는 잘 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이 역할을 잘 해서 제가 몸담고 있는 분야에 큰 도움이 되고 싶었습니다. 세상에 저는 어디까지 생각이 뻗어나간 걸까요? 이러다 상담으로 세상을 구한다! 라는 문구를 옷에 새겨 입고 다니겠습니다? 이럴수가!
내가 잘 하고 싶었던 마음을 스스로 알아차리자 내가 너무 기특했습니다. 누군가는 스스로 안쓰러워할 수 있을 것입니다. 스스로에게 “연민”을 느끼는 순간이 찾아온 것입니다.
연민은 동정이 아닙니다. 기특해보이고 마음이 쓰이는 것이 “연민”입니다. “으이그 쯧쯧”이 아니라 “잘 하고 싶었구나? 아이구 쓰담쓰담” 이게 연민입니다!
완벽주의에 매몰된 사람들은 기준이 자신 안에 없습니다. 자신이 아닌 외부, 타인에 초점이 집중되어 내가 실수하면, 내가 못하면, 저 사람이 생각하는 만큼 내가 해내지 못하면, 세상에서 인정받으려면… 라는 선택한 생각이 아닌 자동적으로 드는 생각에 사로잡혀 자신을 처벌합니다. 자신을 단 한가지 절대적인 기준에 맞춰 처벌하는 상황만이 반복된다면 그 끝에는 우울함이 남습니다.
잘 하고 싶었던 제 마음을 스스로 알고 나니 실제로 제가 한 수행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저 잘 했던데요? 하지만 미진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후 전보다 진지한 마음으로 책을 읽고 다른 사람의 수행에서 본받을 부분에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땀을 뻘뻘 흘리던 저를 안아주던 동료들과 스승을 떠올리며 가슴이 벅찼습니다.
완벽하게 해 내야 해! 라는 생각이 들면 ‘내가 잘 하고 싶구나’라는 말을 바로 떠올려주세요. 그리고 다음의 과정으로 생각합시다. 경직된 상태로 완벽한 상태를 이루려는 지점부터 시작해 보겠습니다. 과제를 제출하거나 시험을 보는 상황을 예로 들겠습니다.
1. 완벽하게 해야 돼! 더 확인하고 더 연습해야 돼! 지금 제출하면 안 돼. 이래서는 100점을 맞을 수 없어. 최고 점수를 받기 위해서는 더 봐야 돼!
2. 어떻게 하지? 시간이 촉박해. 하지만 지금 내면 안 돼. 더 봐야 돼!
3. 아 이제 더는 안 돼. 하지만 한번만 더 점검하자. 아직 시간이 좀 남았으니까 한 번 더 점검하자. : 이 지점에서 많은 분들이 기한을 넘깁니다.
4. 아, 언제 시간이 이렇게 됐지? 어떻게 해! 안 돼! 아, 제출 버튼이 안 눌려! 안 돼! 그래, 직접 가서 내자. 그러면 돼. 아, 이게 뭐야… 내가 다 망쳤어!
5. 다행히 이번에는 직접 제출하면서 사정을 얘기해서 다행이다. 하지만 내가 이런 적이 한 두번이 아냐… 저번에는 공부가 덜 되었다는 이유로 신청기한을 놓쳐서 아예 시험을 응시하지 못한 적이 있었지. 고등학교 때도 누구보다 잘 했지만 기한을 넘겨서 패널티를 받았고… 난 왜 항상 이래… 하지만 완벽한 결과물을 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어…
6. 아니, 잠깐…? 내가 지금 완벽한 결과물, 어쩔 수 없어… 라고 했어? 이럴수가!
7. 한 번 더 보고 더 연습하면 물론 더 좋은 결과물을 낼 확률이 높아질거야. 하지만 그로인해 기한을 놓치고 시험을 응시조차 못한다면 이건 내가 원하는 것이 아냐.
8. 때로는 좀 마음에 안 들더라도 제출하자. 마음이 찝찝할테지만 이 찝찝한 마음을 없애버리는 것이 정답이 아냐. 불편한 마음을 내 마음 한구석에 간직한채로 다음을 기약하자. : 버텨주기 안아주기
9. 그리고 잘 하고 싶었던 내 마음을 스스로 알아주자. : 자기인식과 타당화
10. 잘 하고 싶었구나. 그래서 그렇게 손에서 놓치 못했구나. 잘 하고 싶은 마음을 갖는 것은 누가라도 갖는 자연스러운 욕구야. 잘 했어. 이번에 제출한 것이 좀 마음에 안 들더라도 제출한 것 자체로 애썼어. 밤을 새고 눈물이 나려는 것을 참고 밥도 제대로 못 먹으면서 며칠을 했지? 애 썼어. 그리고 잘 했어. : 셀프수딩
그리고 다음을 꼭 기억해 주세요.
내가 하는 수행은 모조리 내 마음에 들어야 한다거나, 내가 뭔가 해서 세상에 보여주면 사람들이 그 수행 하나로 날 평가한다는 생각 안에는 “자기애(나르시시즘, Narcissism”가 들어있습니다. 자기애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닙니다. 부적응적인 나르시시즘을 말하는 것이며 부적응적이라는 것은 경직되어 있고 근거 없이 무조건적인 자기애를 말합니다.
절대 실수하지 않는 나, 최상의 모습만을 보여서 사람들이 환호하는 모습 속에 둘러싸인 나, 모두 부러워 하는 나 라고 자기애적인 상상을 자신도 모른 채 계속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생각해 보세요.
처음 누군가를 지도하는 초심자면서 교과서에 나오는 모든 기법을 수행하길 기대한다면 이상합니다. 또한 몇 년을 연습하고 그 분야에 몸담고 있어도 오늘의 내 수행이 마음에 안 드는 날이 있을 것이고 때로는 실제로 날 비웃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잘 하고 싶었던 나는 여전히 존재하고 실제로 어떤 부분은 잘 했으며 더 잘 하려고 오늘도 먹고 자고 읽고 연습하는데 이 모습이 어찌 사랑스럽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리고 다음에는 이번에 한 것을 바탕으로 더 보완해 나가겠죠.
저를 거울처럼 비춰볼 수 있었던 것은 좋은 동료들과 스승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찰빵심리가 여러분에게 좋은 동료가 되고 싶어요. 그래서 이번 화 열심히 썼습니다.
우리 앞으로도 “당위성”에 대해 계속 살펴봅시다!
©Eq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