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 살아가기
안녕하세요! 짜잔! 우리가 또 만났어요! 만나도 만나도 반갑습니다! 하하하! 날씨가 부쩍 추워졌어요. 겨울이 왔어요! 추워진 날씨에 심리학관을 찾아주시는 분들이 감기에 걸리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오늘도 당위성에 대해 함께 살펴볼 것입니다. 과연 오늘의 사례는 어떤 내용일까요?
먼저 사례부터 보시죠! 이야야얏!
사례 5
실패해서는 안 돼. 그러면 사람들이 엄청 실망할 거야. 실패나 하고 너무 싫어. 그런 모습은 보여주고 싶지 않아. 실수 해서는 안 돼. 정신차리면 실수 하지 않을 수 있는 거 한 눈 팔면 큰일 나는 거야. 실패는 용납할 수 없어. 사회는 실패를 봐 주지 않아. 내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있겠지만 속으로는 나에 대해 안 좋게 생각하겠지. 엄마가 그랬어. 믿지 말라고. 좋은 모습만 보여도 믿을 수 없는 것이 사람이라고.
오늘 사례의 주인공은 결의가 남다르네요! 엄청! 너무! 정신차리면, 큰일, 용납 등 강렬한 단어들이 과연 오늘의 주인공이 “엄청” 결심한 것처럼 느껴지게 합니다. 오늘 당위성과 함께 볼 주제는 과연 무엇일까요? 여러 주제가 섞여있네요! 그러나 오늘의 핵심은!!
바로 “수치심”입니다!
사례의 주인공은 무엇인가 하고 있습니다. 연습을 하고 있을 수도 있고 연습한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또는 아무도 보고 있지 않지만 뭔가 머릿속에서는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네요.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에 대해 안 좋게 생각하겠지, 좋은 모습만 보여도 믿을 수 없는 것이 사람이라고’.
주인공은 자신이 실수하거나 실패하면 사람들이 자신을 싫어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때 찰빵심리를 보시는 누군가는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실패, 실수는 나쁜 거잖아요?”
“근데 저 말이 맞지 않나요? 실수하면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실패는 안 하는 것이 좋죠. 아무래도 좀 그렇죠.
겉으로는 실패해도 배우는 것이라고 하겠지만 속으로는 저 사람 능력이 저렇구나…
라고 생각하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니잖아요.”
라고 말입니다.
오늘 당위성과 함께 볼 수치심에 대해 먼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수치심은 스스로 부끄러워 하는 마음입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거부되고, 조롱 당하고, 노출되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존중 받지 못한다는 고통스런 정서를 가리키는 용어로서, 여기에는 당혹스러움, 굴욕감, 치욕, 불명예 등이 포함된다. 수치심의 발생에는 초기에 누군가에게 보여지고, 노출되고, 경멸 받는 경험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수치심 [SHAME] (정신분석용어사전, 2002. 8. 10., 미국정신분석학회, 이재훈)
와, 정말 견디기 어려운 감정인데요? 수치심에 대해 심리사회적 발달 단계를 주장한 심리학자 에릭슨은 다음과 같이 얘기했습니다.
약 2세에서 4세 사이에 인간은 심리사회적 발달의 두번째 단계에서 갈등을 경험하는데 이 단계에서 아이들은 환경의 통제를 이전보다 강하게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독립된 행동을 발달하기 어려워지기도 하는데 이 때의 갈등을 “자율성 대 수치심과 의심”이라고 불렀습니다.
사례의 주인공은 자신이 실수하는 모습이나 실패하는 모습을 보이면 결국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믿을 사람은 없다고 하죠.
수치심은 인간이라면 느끼는 강렬한 기본적인 감정입니다.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 인간은 없습니다. 수치심은 1차감정으로 외부의 자극이나 정보에 신체가 반응합니다. 몸이 반응하는 것으로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 상상이 되시나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순간의 찰나에 강렬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얼굴이 확 화끈거리거나 심장이 순간 철렁하는 신체의 감각은 생각이 작동하기 전에 일어납니다. 그래서 강렬하고 정보로 처리되기보다는 피하고 싶다는 강한 욕구를 불러일으킵니다.
열심히 준비한 발표를 사람들 앞에서 시연하는 장면을 상상해봅시다. 긴장하고 있지만 정확히 내가 준비한 것들을 전달하고 있는데 갑자기! 목소리가 갈라지게 됩니다. 내 목소리에 나도 놀라서 얼른 목소리를 가다듬고 자시 발표를 하려는데 내 목소리가 희한하게 나오던 순간 누군가의 “풉!” 하는 소리에 나의 머릿속은 하얘지고 맙니다. 갑자기 땀이 나고 다음 단어가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 때 누군가가 “천천히 해요~”라는 말을 하지만 그 말이 위로가 되기는커녕 긴장한 티를 다 내면서 발표한 것은 이 사람들이 전부 보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발표 후에 나를 괴롭힙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 부분은 넘어가세요.”
발표를 마친 후 동료들과 커피를 마십니다. 그 때 누군가가 또 얘기합니다. “잘 했어~” 그러나 이 말에 나는 더 부끄러워집니다. 그리고 준비한 말도 아닌데 갑자기 말이 장황해지면서 이상하게 나를 변명하게 됩니다. “아, 내가 사실은 이 부분을 좀 더 준비하긴 했었는데 너무 이론적인 설명만 한 것 같아서 빼다보니까 좀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는 것 같더라고~ 그런데 또 어쩌고 저쩌고~”
이렇게 나를 길게 설명하고 있자니 갑자기 주변이 날 지루해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내 얘기가 지루하구나 라는 생각이 빠르게 머릿속은 스치면서 갑자기 난 이 순간을 떠나고 싶어집니다. 최악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마침내 내 머릿속에는…
‘사람들이 날 불편해하겠지. 내 얘기는 재미도 없고 흥미도 없을 거야.
아까 발표 때도 사람들이 지루해 하는 것 같았어. 얼마나 우습게 보였을까…
그래, 사실 나도 뭐 그렇게 열심히 준비하지는 않았잖아? 그리고 오늘 발표가 뭐 발표 하나도 결정하는 자리도 아니었고~
됐다. 나한테도 하나마나 한 거였는데 뭐.’
가볍게 생각하고 어제 잠도 줄여가며 준비했던 자신을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 돌아갈 때 나도 내 자리로 돌아가려 하는데 갑자기 너무 쓸쓸하고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다 그만두고 싶은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침울해집니다. 그리고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보잘 것 없게 느껴집니다. 누군가가 나를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크게 요동칠 것만 같으면서도 누군가가 그냥 아무 얘기라고 하고 싶기도 합니다. 혼란스럽고 불편한 이 마음은 묘하게 화가 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 세상은 별 것 없다는 냉소적인 생각이 들면서 그냥 비웃고만 싶고 사는 게 별 거 아니지, 회사, 학교 뭐 다들 가면이나 쓰고 있는 사회 아니겠어? 라는 뭔가 정리되지 않은 생각도 듭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조금도 미소가 지어지지 않습니다. 주변에서 사람들이 크게 웃는 소리가 들리면 갑자기 짜증이 밀려오기도 합니다. 거리에 크게 붙어있는 활짝 웃으면서 상품을 광고하는 광고판에도 냉소적인 미소만 지어집니다. 결국 나 혼자 조명이 꺼진 무대에서 혼자 애쓴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 날 나는 나를 위해 사 둔,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가 그려진, 소중하게 아직 포장도 뜯지 않은 소품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캐릭터는 아니지만 나는 그 특유의 색이 바랜듯한 포근한 분위기를 너무 좋아했는데 어제 발표준비로 어지럽게 자료가 흩어진 책상 위의 그 캐릭터가 오늘 따라 쓸쓸하게 느껴져 뜯지 않은 포장을 외면한채로 잠이 듭니다…
너무 슬프군요. 주인공은 왜 저렇게 슬프게 하루를 보냈을까요.
수치심은 수치심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감정은 꼬리를 물고 바뀌며 생각과 범벅이 되어갑니다. 열심히 준비하던 자신의 모습에 기억이 머물면 사람들에게 웃음거리나 될, 중간 중간 넘어가도 될 내용으로 가득한 나의 발표자료를 붙잡고 피곤한 밤을 지새우며 좋은 자료를 찾았을 때 기뻐하던 자신도, 사람들이 더 이해하기 쉽게 준비한 그래프도 별 것 아닌, 빛 바랜 캐릭터처럼 초라하게 느껴집니다.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감정이 수치심이라고 했었죠. 수치심은 다른 사람이 자신을 결점 있는 사람으로 본다고 판단할 때 느껴집니다. 수치심이 강렬한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게 만들어졌고 이 수치심이 나의 핵심과 관련되어 있어서 다른 사람들이 나의 모자란 부분을 보았고 나는 그 모자란 부분 자체이며 그렇다면 나는 나쁜 사람이 되며 이런 날 사람들은 싫어할 것이라는 생각과 연결됩니다. 누군가가 싫어한다는 것은 거절과 연결되며 속한 무리에서 거절되는 존재를 아무렇지 않게, 가볍게 생각할 사람은 없습니다. 이렇게 고통스러운 감정을 다시 경험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다시는 내가 수치심을 느꼈던 행동을 하지 않으려 하고 나를 보며 괜찮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믿지 않습니다.
수치심이라는 감정은 한 화를 따로 준비하고 싶을 정도로 할 말이 많습니다. 오늘은 당위성과 연결되는 부분을 보려고 합니다.
고통스러운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라는 생각을 쉽게 할 수 있습니다. 애초 수치심에 연결된 생각들이 비합리적 신념으로 무장되어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기는 어렵습니다. 비합리적 신념도 결국 나를 보호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에 나를 보호하던 방법들이 경직되었고 이제는 수정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보다는 아예 경험을 회피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더 쉽기 때문입니다. 사실 선택이 아닌 자동적인 흐름이지만요.
이 때 당위성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틀리면 안 돼.”
“내가 제대로 준비하면 틀릴 리가 없다.”
“그러니 여러 번 확인해. 실수를 하지 않을 때까지 최선을 다 해!”
“사람들은 실수하는 사람을 싫어해. 그러니까 잘 해야 돼.”
“네가 하는 과제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알아야 돼.”
“어떤 질문을 받아도 척척 대답해야 돼. 그래야 사람들이 널 인정할 테니까.”
여기에 생애 초기 나에게 중요한 누군가가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너에게 모자란 부분은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마. 결국 뒤에서 다 욕 해. 그러니 항상 사람들 앞에서는 좋은 모습만 보여줘야 돼.”
숨이 막히는군요. 애초에 가능하지 않은 것을 세상에서 인정하는 단 하나의 정답인 것처럼 얘기하는 지금까지의 모든 문장들이 짜증납니다. 아닛? 본인이 써 놓고 본인이 성질을 내고 있다?!?!
네, 그렇습니다. 숨이 막히고 어디서 뭘 손대야 할 지도 모르게 틀린 말들 투성이라 짜증이 팍 하고 나네요.
여러분, 처음에는 내가 선택했고 또는 처음에는 내 일이라서 했을 수 있는 일이지만 하다보니 잘해내고 싶어서 한, 내가 소중히 여긴 나의 과업에서 실제로 사람들이 지루해 했을지라도, 사람들의 평가가 좋지 않았을지라도 자신이 밟아온 과정과 그로 인한 결과에 대해 아껴주세요.
주인공이 자신이 좋아해서, 너무 아껴서 아직 포장도 못 뜯은 캐릭터를 보며 초라함을 느꼈을 때 저는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혼자 침대 안으로 들어갈 주인공을 생각하니 눈물이 납니다. 사람들에게 최고로 인기 있는 캐릭터는 아니지만 내가 나 혼자, 아니면 몰래몰래 아껴주며 하나씩 사 모았을 캐릭터를 만지지도 못하는 주인공 모습이 너무 가여웠습니다.
실수를 하면 사람들이 싫어한다고요? 그럴 수도 있겠죠. 그런데 영구적이지 않습니다. 실패했다고 사람들이 싫어한다고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히는 아닙니다. 만약 한 번의 실수로, 한 번의 실패로 나라는 사람 자체에 대해 두고두고 얘기하고 두고두고 나를 싫어하고 두고두고 그러니 잘 하지 그랬냐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이상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이상한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왜 자신에게 합니까!!!
발표에서 실수를 했고 누군가가 그 부분은 넘어가자고 하거나 내 자료의 오류를 지적했다면 그냥 인정하고 넘어가면 됩니다. 그 하나의 부분을 물고 늘어지고 내가 틀렸을 수 없다고 중요한 부분으로 넘어가지 못한채 곱씹고, 그래도 마음이 불편해서 애초에 내가 한 일의 중요성을 폄하하는 방어기제까지 쓰면서 시간을 보내지 않았으면 합니다.
완벽하면 다 될 거라고 단순히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마세요. 그냥 실수하고 실패한 것입니다. 영원한 것이 아니며 다음에 또 기회가 옵니다. 생애 단 한 번 뿐인 기회가 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똑 같은 기회는 다음 번에 없을 수도 있겠죠. 그렇게 유일한 기회였다면 여러분은 아마 더 할 수 없을 정도로 해 냈을 것입니다. 그러니 부끄러워할 수 있고 후회할 수 있지만 자신 “자체”를 하찮게 여기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캐릭터와는 다르게 빛이 바랜듯한 포근한 그 캐릭터는 매력적이었을 것입니다.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상점에서 팔고 있었을 거에요. 소수의 취향을 위해 만들어졌다면 그게 또 매력입니다. 열심히 한 자신의 모습을, 별 것 아닌 것인데 애 썼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들켰다는 생각이 들 수는 있습니다. 근데 그게 뭐 어때서요. 오늘의 수치심을 내일까지 끌고 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이라면 더 아끼고 사랑한 것에 흠이 있다는 것을 더 부끄러워합니다. 내가 부끄러울수록 내가 애썼다고 스스로를 다독여 주세요. 다음에 나의 과제를, 나의 작품을 선보일 기회가 있을 때 다시 해 봅시다.
오늘은 수치심과 당위성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다음은 과연 어떤 내용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다음 시간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