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한다고 생각하면 진짜로 못 하게 되는 현상

배수정 인지심리학 박사님 / 심리학관

by 심리학관

무언가 Trigger가 되어 '못 한다고 생각하면 진짜로 못 하게 되는 현상'에 대해 며칠째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저는 잠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잠을 못 자면 다음 날 무너진다"는

확신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수면 시간이 부족하면 컨디션이 떨어지고,
컨디션이 떨어지면 아무것도 제대로 못 하고,
그러면 하루가 통째로 날아간다 —

이런 공식이 30년 넘게 제 안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출산하고 나서 그 공식이 무너졌습니다.

임신 중 불면증, 아기 때문에 강제로 깨는 밤,
그리고 그 상태로 다음 날을 또 살아야 하는 현실.
놓고 싶지 않던 끈이 그냥 놓여버렸습니다.

막상 그렇게 살아보니,

물론 피곤하지만 — 또 살아지더라고요.

그때 생각했습니다.
30년 넘게 붙잡고 있던

“잠을 못 자면 난 안 돼"라는 생각이,
혹시 제가 세운 경계막은 아니었을까.

너무나 고전이지만 Bandura(1977)가 말하는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을 리마인드해봅니다.

"할 수 있다고 믿는 만큼 시도하고,

시도하는 만큼 해낸다."

반대로 말하면,
"못 한다고 믿으면 시도를 줄이고,

시도를 줄이면 실제로 못하게 된다."

꽤 직관적인 이야기인데,

무서운 건 이 순환의 방향입니다.
자기효능감이 낮은 사람은

과제 앞에서 노력을 덜 투입하고,
조금만 어려워져도 더 빨리 포기합니다.
그 결과 실패 경험이 쌓이고,

그 실패가 다시 "역시 난 안 돼"를 강화합니다.



반면 Bandura가 말하는

자기효능감의 가장 강력한 원천은
'성취 경험(mastery experience)'입니다.

직접 해보고 "어, 되네?" 하는 경험인거죠.
이게 다른 어떤 격려나 관찰보다

효과가 크다고 합니다.

제 수면 이야기로 돌아가면,
저는 30년 동안 "잠이 부족하면 하루가 망한다"는

신념을 거의 검증하지 않았습니다.
검증할 필요가 없었으니까요.

그냥 무조건 잠을 채웠으니까.


대학 졸업까지 밤을 새며 공부해본 적이 딱 한번 있었는데, 그 과목 성적이 모든 과목을 통틀어 제일 안좋았고, 그 한번의 경험으로 "역시 그랬어"라고 생각해버린 것이죠.


그런데 출산이라는 외부 요인이

강제로 그 실험을 시켜버렸고,
결과는 — 망하지 않았습니다.
피곤하긴 했지만,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해냈습니다.

Bandura의 표현을 빌리면,

강제로 성취 경험이 만들어진 겁니다.
"난 이 조건에서 못 해"라는 믿음이,
"이 조건에서도 되긴 하네"로 업데이트된 거죠.



이게 저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 같습니다.

"저는 발표를 못 해요" —

한 번 떨었던 기억이 고정된 경우.
"저는 숫자에 약해요" —

수학 성적이 안 좋았던 초등학교 때의 잔상.
"저는 리더십이 없어요" —

한두 번의 팀 경험이 만든 라벨.

이런 것들이 실제 한계인지,

아니면 오래전에 제가 그어놓은 선인지,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구분해 본 적이 있는지

생각해봅니다.

흥미로운 건, 이 선들은 대부분 아주 오래전에 그어졌다는 겁니다. 초등학교 때, 사회 초년생 때, 첫 직장에서 언제든 어디에서든 그어질 수 있습니다. 저는 사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한다며 9시가 되면 불을 끄고 누워있던 아이였습니다. 불혹이 다되가는 지금까지 그 선은 업데이트되지 않은 채 제 행동 반경을 정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과신도 위험합니다.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다"고

우기는 건 다른 문제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건,

실제로는 할 수 있는데 "난 이런 사람이 아니야"라는 자기 정의 때문에 시도조차 안 하게 되는 경우입니다.


팀을 이끌거나, 누군가를 코칭하는 자리에 있다면
이 구분은 더 중요해지는 것 같습니다.

팀원이 "저는 이거 못 합니다"라고 말할 때, 그게 진짜 역량의 한계인지, 아니면 오래전에 스스로 그어놓은 선인지 생각해볼 수 있게 질문을 던져주고 그 선으로부터 한발짝 걸어나올 수 있게 손을 잡아주는거죠.

이걸 구분하지 않으면,
"그래, 그건 네 한계구나" 하고 넘어가게 되고,
그 선은 더 단단해집니다.

반대로 무작정 "넌 할 수 있어"라고

밀어붙이는 것도 답이 아닙니다.
Bandura의 연구에서도,

격려(verbal persuasion)는
자기효능감을 높이는 데 가장 약한 원천이었습니다.

결국 작은 성취 경험을 만들어주는 게 핵심인데,
(이건 말이 쉽지, 현장에서는 정말 어렵습니다)

"이건 좀 어려울 수 있는데,

일단 여기까지만 해볼까요?"
이런 식으로 선을 낮춰서 건너게 하고,
건넌 뒤에 "어, 됐네?" 하는 순간을 만들어주는 것

아마 이게 코칭에서 제일 세련된 개입일 텐데,
솔직히 저도 잘 되는 편은 아닙니다.



제가 "난 이런 사람이야"라고 정의한 것들 중에,
실제로 검증해 본 건 얼마나 될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정의 중 몇 개가 실은
그냥 오래돼서 익숙해진 것뿐인 것은 아닐까요.

* Bandura, A. (1977). Self-efficacy: Toward a unifying theory of behavioral change. Psychological Review, 84(2), 191-215. [링크](https://lnkd.in/d5VcefzQ)
* Bandura, A. (1997). Self-Efficacy: The Exercise of Control. W.H. Free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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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정 인지심리학 박사님

SK Research Fel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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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