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정 인지심리학 박사님 / 심리학관
나를 잘 모르는 100명에게
“괜찮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는 것과,
나와 깊이 일해본 3명에게
“다시 같이 일하고 싶다"는 말을 듣는 것
이 둘 중 하나만 고른다면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실 것 같으신가요?
저는 후자입니다.
어떤 인정이
나에게 진짜 만족감을 주는지 생각해보면
한 두명이라도 "다시 같이 하고 싶다"는 평이
훨씬 오래 남더라고요.
자기결정이론(SDT)의 하위 이론 중 하나인
관계 동기 이론
(Relationships Motivation Theory)이
이걸 설명해줍니다.
관계성(relatedness)이라는
기본 심리 욕구는
사회적 접촉의 양으로 충족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과 만나고,
많은 곳에서 좋은 인상을 남기는 것만으로는
심리적 만족감이 채워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 이론이 짚는 핵심은
‘진정성 있는 참여(authentic engagement)'
라는 개념입니다.
좀 풀어보면 이런 겁니다.
직장에서 우리는 상당히 많은 시간을
‘수행 모드'로 보냅니다.
회의에서 적절한 말을 고르고,
메일에서 톤을 관리하고,
인상을 조율하는 거죠.
이건 자연스러운 사회적 기술이지만,
이 이론에 따르면
이런 상호작용만으로는 관계성이 충족되지 않습니다.
관계성이 진짜 충족되려면,
수행이 아니라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요"라고
솔직하게 말하는 순간,
상대의 아이디어에
진심으로 동의하는 순간,
모르는 걸 모른다고
인정하는 순간과 같이
그런데 이런 순간은
보통 깊이 일해본 사이에서만 일어나거든요.
얕은 관계에서는 리스크가 너무 크니까요.
흥미로운 건
이 이론이 한 가지를 더 짚는다는 점입니다.
처음에 이게 좀 의외였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납득이 됩니다.
내가 상대에게 인정받으려고 애쓰는 것보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나와 다르게 판단하지만,
그 판단에는 이유가 있을 거다"라고 여기는 태도
이런게 관계의 질을 만든다는 겁니다.
갈등 상황에서 이게 특히 어렵죠.
처음부터 이렇게 되긴 더 어렵습니다.
상대의 의견이 내 생각과 정면으로 다를 때,
그걸 틀린 게 아니라
다른 맥락에서 온 판단으로 받아들이는 건
꽤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거든요.
이런 생각을 하다가,
예전에 읽었던
Lewicki와 Bunker(1996)의 신뢰 모델이
떠올랐습니다.
이 연구는
이건 "이 사람이 약속을 어기면
손해가 크니까 지키겠지"라는 수준의 신뢰예요.
계약, 평판, 상호 이익에 기반한 거죠.
대부분의 업무 관계가 여기서 시작합니다.
상대를 잘 모르니까, “일단은 믿어보자" 정도인거죠.
함께 일하면서 상대의 패턴을 알게 되는 거예요. "
“이 사람은 압박이 오면 이렇게 반응하고,
이런 상황에서는 저렇게 판단한다"는
예측이 가능해지는 단계.
시간과 반복된 상호작용이 필요합니다.
상대의 필요와 선호를 아는 것을 넘어서,
그걸 공유하는 단계예요.
"이 사람이 왜 이런 선택을 하는지 안다"가 아니라
"나도 그 상황이면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로
넘어가는 거죠.
계산적 신뢰는 깨지기 쉽습니다.
한 번의 불일치로도 관계가 끝날 수 있어요.
"이 사람 생각보다 별로네" 하고 돌아서는 거죠.
반면 지식 기반 신뢰까지 올라간 관계는
불일치가 있어도 버텨요.
"이 사람이 왜 그랬는지 알 것 같다"는
맥락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 전환이
자연스럽게 일어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깊어지는 게 아니라,
돌이켜보면,
저한테 의미 있었던 업무 관계들은
전부 한 번쯤 힘든 순간이 있었습니다.
프로젝트에서 의견이 정면으로 충돌하거나
서로 다른 방향을 끝까지 주장하거나
하는 일들인데요.
결국 누군가가 양보하거나
제3의 길을 찾아야 했던 그런 경험들이죠.
얕게 아는 사람은 그 갈등의 과정을 모릅니다.
결과만 보거든요.
그래서
직접적으로 의견을 말하는 사람은
"까다롭다"는 인상을 받고,
신중하게 고민하는 사람은
"느리다"는 평가를 받고,
기준을 양보하지 않는 사람은
"고집이 세다"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그런데
같이 그 과정을 겪은 사람은 다르게 봅니다.
참고문헌
Deci, E. L. & Ryan, R. M. (2014). Autonomy and Need Satisfaction in Close Relationships: Relationships Motivation Theory. In Weinstein, N. (Ed.), Human Motivation and Interpersonal Relationships, 53-73. Springer.
Lewicki, R. J. & Bunker, B. B. (1996). Developing and Maintaining Trust in Work Relationships. In Kramer, R. M. & Tyler, T. R. (Eds.), Trust in Organizations: Frontiers of Theory and Research, 114-139. Sage Public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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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정 인지심리학 박사님
SK Research Fellow
2026.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