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을 평지처럼
어제 대구에서 나는 다시 한 번 나의 약점을 마주했다. 출발선을 조금 지나자마자 펼쳐진 첫 업힐. ‘오늘 쉽지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러나 그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날씨가 너무 좋았다. 겨울 대회를 준비하며 혹한을 상정해 세워둔 전략은, 한낮 기온 22도 앞에서 힘을 잃었다.
바람이 강해 체감 온도가 조금 낮아지긴 했지만, 작년 영하 5도의 대회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축복 같은 조건이었다. 넓은 대구스타디움을 빠져나올 때까지만 해도 나는 오늘 레이스가 순조로울 것이라 믿었다.
착각이었다.
날씨는 달라졌지만, 코스는 달라지지 않았다.
대구마라톤의 악명 높은 업힐은 그대로였다. 그동안 추위 속에서 묻혀 있던 진실이, 따뜻한 햇살 아래에서 또렷하게 드러났다. 이 대회는 고저차가 분명한, 만만치 않은 레이스라는 사실. 사전에 코스를 검토했고, 데이터를 살폈고, AI를 통해 정보도 얻었다. 하지만 달리기에서 가장 정확한 정보는 결국 몸이 체감한 경험이다.
어제 나는 ‘알고 있다’는 것과 ‘겪어냈다’는 것 사이의 간극을 다시 확인했다. 돌아보면 늘 그랬다. 첫 풀코스였던 서울에서 수서 IC 이후 끝없이 이어지던 업힐. 제주에서 업힐인지도 모른 채 천천히 체력을 갉아먹던 완만한 오르막. 진양호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나를 작아지게 만들던 경사.
나는 늘 업힐에서 무너졌다.
훈련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충분하지 않았다. 평지에서의 페이스 유지에 집중했고, 오르막에서는 ‘버틴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업힐에 들어서면 페이스는 떨어졌고,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소진했다. 부상을 입었던 순간도, 무리했던 구간도 대부분 오르막이었다.
어제 대회를 마치고 분명해졌다.
업힐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풀코스 완주는 반복일 뿐 성장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래서 결심했다. 5월 전국의병마라톤까지 업힐 훈련에 집중하겠다. 그리고 그 대회에서조차 부족함을 느낀다면, 올해 풀코스 도전은 멈출 생각이다. 대회 출전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과정을 통과했는가이기 때문이다.
업힐은 단순한 코스의 일부가 아니다.
나의 약점이고, 나의 한계이며, 동시에 나의 성장 가능성이다. 그동안 오르막을 마주할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찾아오던 막막함. 저절로 깊어지던 한숨. ‘나는 업힐에 약하다’는 자기암시. 이제는 그 인식을 바꾸고 싶다. 이미 심박수 훈련을 통해 욕심을 내려놓는 법을 배우고 있다.
속도를 증명하려는 달리기에서, 지속 가능성을 설계하는 달리기로 옮겨왔다. 이제는 그 위에 업힐이라는 과제를 얹을 차례다. 업힐을 문제로만 두지 않겠다. 해결해야 할 대상이자 반드시 통과해야 할 관문으로 삼겠다.
“산악을 평지처럼.”
언젠가 업힐이 나타났을 때 숨이 가빠지기 전에 마음이 먼저 흔들리지 않는 러너가 되고 싶다. 오르막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르막에서 작아지지 않는 사람. 그날까지, 나는 오르막을 달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