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하는 힘

기록보다 중요한 것은 끝까지 나의 리듬을 지키는 일

by 조아

지금까지 10번 넘게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지만, 나는 여전히 초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대회 전날과 당일, 내 마음은 늘 놀랄 만큼 다르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대회 전날 밤에는 다짐한다. 내일은 최선을 다해 보자고, 준비한 만큼 해내자고, 스스로를 믿어 보자고.


그런데 이상하게도 대회 당일 아침이 되면 전혀 다른 목소리가 들린다.


“오늘 그냥 가지 말까.”


이 유혹은 생각보다 집요하다. 이미 참가 신청을 마쳤고, 몇 달 동안 훈련도 했고, 이른 새벽에 일어나 몸까지 준비했는데도 막상 출발해야 할 순간이 오면 마음 한구석에서 자꾸만 발을 붙잡는다. 그럴 때면 망설이다가 대회장에 늦게 도착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대회는 하루지만, 대회를 준비하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다. 참가 코스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 최소 3개월 이상은 준비해야 한다. 그 시간 동안 훈련의 고통을 견디고, 몸의 무거움을 이겨내고, 때로는 의욕이 바닥난 날도 버텨야 비로소 출발선에 설 수 있다.


특히 하프와 풀코스는 전혀 다르다. 하프코스는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부담이 아예 없지는 않지만,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와도 내면의 나를 잘 다독이며 버틸 수 있다.


하지만 풀코스는 다르다.


풀코스를 단지 하프의 두 배 거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단순한 판단이다. 풀코스에는 거리 이상의 것이 있다. 체력의 문제만이 아니라, 위기의 순간을 견디는 감정의 깊이 자체가 다르다. 무너지고 싶은 순간을 몇 번이나 건너야 하고, 그때마다 스스로를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


대구마라톤 이후 나는 달리기를 대하는 태도가 조금 달라졌다. 예전에는 완주 자체가 가장 큰 목표였다. 하지만 지금은 달리는 순간순간 내 몸의 상태를 확인하고, 몸이 나에게 보내는 신호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이제 내가 찾고 있는 것은 단순한 완주가 아니라, 건강하고 경제적으로 완주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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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요즘 가장 집중하는 것은 심박수 관리다. 심박수 능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Zone 2 훈련을 자주 한다. 물론 달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페이스와 기록에 눈이 간다. 숫자는 늘 사람을 흔든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다. 때로는 그 숫자에 마음이 쏠려 심박수가 흐트러질 때도 있다.


그럼에도 올해 훈련의 핵심은 분명하다.



심박수 관리.


심박수를 통제하지 못하면 달리기 효율은 떨어지고, 결국 비경제적인 달리기를 하게 된다. 그러면 에너지는 빠르게 고갈되고, 남는 것은 버티고 또 버티는 소모뿐이다. 나는 그런 어리석음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달리기로 했다. 그리고 내 훈련의 콘셉트를 심박수 관리로 정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오래 달리고 싶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 가능하다면 100세가 넘도록.


물론 기록은 중요하다. 페이스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지표다. 그러나 지금의 나에게 기록과 페이스만을 좇는 훈련은 큰 의미가 없다. 나는 이미 두 번의 부상을 통해 배웠다. 내 몸의 신호를 무시한 채 감당하기 어려운 거리와 페이스를 밀어붙이면, 결국 부상은 반드시 찾아온다는 것을.


그 사실을 깨달은 뒤 나는 과시를 위한 마일리지와 페이스를 내려놓았다.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은 장기적인 계획을 설계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더 멀리 가기 위해, 지금은 기초에 집중해야 할 때다.


거제 블루레이스 때도 그랬다. 새벽 5시에 일어났지만, 여전히 마음속에서는 “가지 말까”라는 소리가 들렸다. 후배와 함께 동반주를 하기로 한 약속이 없었다면, 어쩌면 나는 그날 대회장으로 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완주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했다.

왜 나는 대회 당일마다 이런 유혹에 흔들리는 걸까.


아마 그것은 단순한 게으름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대회에 대한 부담감일 수도 있고, 훈련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스스로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들려오는 내면의 고백일지도 모른다.


그날 나는 계획했던 페이스보다 느리게 달렸다. 심박수 관리도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그러나 발목 부상의 우려가 없었고, 무엇보다 끝까지 달릴 수 있었다. 그 이유를 돌아보면 결국 하나였다. 내 안에 아직 유지하는 힘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대회는 내게 또 하나의 숙제를 남겼다.


발목 부상의 원인 중 하나로 보이는 아치의 무너짐, 그리고 체중 감량. 그래서 더 특별하게 기억에 남는다. 단지 완주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앞으로 내가 보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조금 더 분명하게 보여준 대회였기 때문이다.



결국 달리기는 유지하는 힘이 결정한다.


출발선에서 결승선까지 일정한 리듬을 유지하는 힘,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도 끝까지 가겠다는 의지를 유지하는 힘, 주변의 시선이나 기록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나만의 페이스를 유지하는 힘. 달리기는 빠르게 달리는 사람보다 끝까지 자기 리듬을 지키는 사람이 더 오래 가져갈 수 있는 운동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더 빨리 달리는 법보다 더 오래 유지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그리고 아마, 나만의 달리기는 그 힘 위에서 완성될 것이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