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빠른 신발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신발을 찾는 과정
달리기를 하다 보면 어느새 러닝화에 집착하게 된다. 원래도 신발을 좋아했던 나에게 러닝화는 단순한 장비를 넘어선다. 때로는 집착을 넘어 소유의 광기에 가까워질 때도 있다. 그래서 마라톤 대회에 나가면 다른 러너들이 어떤 러닝화를 신었는지 구경하는 일조차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된다.
물론 달리기에서 러닝화가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하면서 러너의 약점이나 한계를 보완해 주는 신발이 많아졌고, 그 덕분에 훈련에 대한 부담은 확실히 줄어들었다. 특히 카본화는 기록 단축에 큰 도움을 주었고, 러너를 더 빠르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런데 요즘 러닝화 선택의 기준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예전에는 ‘가장 빠른 러닝화’가 중요했다면, 이제는 ‘나에게 맞는 러닝화’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여전히 마라톤 대회에는 서브3를 목표로 하는 러너들이 있고, 기록 단축을 위한 노력도 계속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PB 달성보다 달리기 자체를 오래 즐기고 싶어 하는 흐름도 분명해지고 있다.
나 역시 카본 러닝화를 가지고 있다. 풀코스 마라톤을 준비하며 훈련 때 신어 본 적도 있다. 페이스에 따라 차이는 있었지만, 몸을 앞으로 밀어주는 듯한 탄성은 분명 인상적이었다. 처음에는 그 반발력에 감탄했다. 하지만 동시에 체중과 근력, 주력의 균형을 생각하면 아직 내 몸에 완전히 맞는 신발은 아니라는 것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카본 플레이트 러닝화에 대한 미련은 여전히 남아 있다. 하지만 나에게 카본화는 매력만큼이나 위험도 함께 안겨주는 존재였다. 잘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고 있는 듯한 어색함, 그리고 부상에 대한 불안이 늘 따라붙었다. 심박수 관리 중심의 달리기 훈련을 이어가면서, 빠른 페이스에서 진가를 발휘하는 카본화의 필요성은 점점 줄어들었다.
이제는 10km 대회를 제외하면 카본화를 거의 신지 않는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관심은 논카본화로 옮겨갔다. 그중에서도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온 모델은 아식스 슈퍼블라스트 2였다. 하지만 이 신발은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었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했고, 희소성은 점점 더 가치처럼 여겨졌다. 아식스 공식 홈페이지에서도 수차례 구매를 시도했지만, 늘 내 차례가 오기 전에 화면에는 ‘품절’이라는 두 글자만 떠 있었다.
국내에서 구하기 어려우니 일본 여행 중에라도 구해 볼까 싶었다. 하지만 일본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던 중 3월 초 일본 여행에서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여행 일정과 슈퍼블라스트 3 출시일이 우연히 겹친 것이다. 오비히로의 한 SPORTS DEPO 매장에서 실제로 슈퍼블라스트 3를 마주했을 때는 반가움보다 당혹감이 먼저 들었다. 분명 눈앞에 있었지만, 판매는 다음 날부터 시작된다고 했다. 결국 아쉬움을 안고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매장에서 슈퍼블라스트 시리즈를 실물로 본 것도 처음이었다. 더구나 구매일에 내가 일본에 있다는 사실은 쉽게 지나칠 수 없는 기회였다. 함께 여행하던 선배님께 양해를 구하고, 다음 날 오픈런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매장 오픈 시간은 오전 10시였다. 나는 8시 30분에 체크아웃을 마치고 매장으로 향했다. 이미 여러 차례 구매 경쟁을 경험해 본 터라, 많은 러너들이 몰릴 것이라 예상했다. 그런데 의외로 매장 앞은 조용했다.
그리고 오전 10시.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리자 나는 가장 먼저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슈퍼블라스트 3를 구매할 수 있었다. 다만 평소 신는 285 사이즈 재고가 없어 290으로 반업해야 했던 점은 조금 아쉬웠다. 그럼에도 환율과 면세 혜택까지 감안하면, 국내에서 웃돈을 줘도 구하기 어려운 러닝화를 정가에 가까운 가격으로 손에 넣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이번 여행에서 처음 찾은 부타동의 고향, 오비히로에서 아식스 슈퍼블라스트 3를 구매하고 나니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왜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이렇게 조용했던 걸까. 인구가 줄어드는 지역이라서일까, 아니면 평일 오전이어서 그랬던 걸까. 여러 가능성을 떠올려 보았지만, 결국 내 생각은 문화적 차이로 모였다.
한국보다 러닝 문화가 더 일찍 자리 잡은 일본에서는 마스터스 러너 사이에서도 이른바 ‘슈퍼 트레이닝화’에 대한 수요가 한국만큼 크지 않을 수 있다. 기록 단축을 노릴 때는 레이스용 러닝화를 분명하게 선택하고, 일상적인 달리기에서는 데일리 트레이너를 고르는 경향이 보다 뚜렷하게 나뉘어 있는 듯했다.
다시 말해, 빠른 훈련용 러닝화에 대한 열광이 한국처럼 폭발적으로 집중되지 않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어쩌면 그런 차이 덕분에 나는 여행 중 우연히 출시일을 맞았고, 운 좋게 슈퍼블라스트 3를 손에 넣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직 실제로 신고 달려 보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 러닝화의 진짜 매력을 말하기에는 이르다. 그럼에도 출시일에 직접 구매했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충분히 특별한 경험이 되었다. 논카본화 중에서도 가장 기대를 모으는 러닝화 중 하나를 손에 넣었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다. 이 신발이 정말 나의 달리기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 줄지, 그리고 앞으로 나를 어디까지 성장하게 해 줄지 직접 확인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