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감 앞에서 멈추던 내가 매일 쓰는 사람이 되기까지
글쓰기를 할 때 가장 막막한 순간은무엇을 써야 할지 모를 때이다. 그래서 나는 글감 노트를 만든다. 떠오르는 생각을 적어 두고, 언젠가 글로 이어질 수 있도록 붙잡아 둔다. 하지만 글감이 있다고 해서 모두 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메모로 남겨 둔 생각을 한 편의 글로 바꾸는 일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아마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 벽 앞에 서게 될 것이다. 예전에 활동했던 글쓰기 모임에서는 글감 달력을 만들어 주곤 했다. 덕분에 글감을 찾느라 허비하는 시간과, 무엇을 써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는 시간을 꽤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청개구리 같은 성격의 나는 그렇게 좋은 글감 달력을 거의 활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작가님들은 꽤 유용하게 사용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돌이켜 보면, 글감을 제안받는 일만으로도 글쓰기의 진입 장벽은 분명 낮아진다.
글감을 찾지 못하면 문장을 시작하기도 어렵고, 문단을 이어 가기도 어렵다. 그 막막함은 곧 글쓰기의 부담으로 번진다. 그래서 글감을 찾으려는 노력은 오늘의 글쓰기를 시작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내일의 글쓰기를 준비하는 일이기도 하다.
요즘은 공저 출판을 계기로 글쓰기의 세계에 들어오신 장모님을 보며 이 문제를 더 자주 생각하게 된다. 마음속에는 분명 글을 쓰고 싶은 열정이 가득한데, 그 열정을 바깥으로 꺼내는 방법을 몰라 답답해하시는 모습을 볼 때면 문득 예전의 내가 떠오른다.
나 역시 처음 글쓰기를 시작했을 때 무엇을 써야 할지 몰라 자주 멈춰 섰다. 쓰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막상 쓰려고 하면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답답했고, 힘들었고, 어떤 날은 여기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도 어렵게 들어온 글쓰기의 세계에 계속 머무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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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름대로 발악하듯 방법을 찾았다. 매일 책을 읽었고, 그 안에서 글감을 건져 올려 글을 썼다. 매일 책을 읽는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굳은 의지로 <1년 365권의 책 읽기>라는 나만의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그 일을 일상의 익숙한 루틴으로 만들기 위해 애썼다. 생각보다 빠르게 목표를 달성했을 때, 비로소 매일 글쓰기의 리듬도 조금씩 자리 잡기 시작했던 것 같다.
얼마 전 장모님과 글감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장모님께서 내게 물으셨다.
“어떻게 하면 매일 쓸 수 있니?”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생각해 보니 딱 떨어지는 답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말 이상하게도, 나는 이제 특별한 이유 없이 그냥 쓴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나도 무엇을 써야 할지,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한참 헤맸다. 하지만 인증이라는 강제성, 곁에서 함께 써 주던 작가님들의 응원, 그리고 읽기 부끄러운 글일지라도 일단 발행해 보았던 용기가 조금씩 나를 바꾸었다. 그 과정 속에서 글쓰기는 부담감에서 의무감으로, 의무감에서 다시 즐거움으로 옮겨 갔다.
어쩌면 글감의 문제는 끝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만 글쓰기 자체가 즐거움이 되는 순간, 그 문제는 더 이상 나를 짓누르는 고민으로 남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과시하거나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롯이 나를 위해 쓰기 시작할 때 글감은 더 이상 압박의 대상이 아니다.
그때 글감은 써야 하는 숙제가 아니라, 즐거움의 문을 여는 작은 열쇠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