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보다 더 자주 우리를 흔드는 것

결핍과 여유에 대한 생각

by 조아

2026년 3월 26일, 목요일의 독서노트는 센딜 멀레이너선의 <결핍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입니다.





원시인의 삶을 떠올려 보면, 그들의 하루는 결핍 그 자체였을 것이다. 늘 먹을 것을 구해야 했고, 몸을 누일 자리를 찾아야 했으며, 추위와 더위 속에서 스스로를 지켜야 했다. 내일을 걱정하는 일조차 사치였을지 모른다. 어쩌면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 오늘을 무사히 살아내는 일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후대의 편의를 위해 그 시간을 구석기와 신석기로 나누어 부른다. 그러나 이름이 무엇이든, 그 시대는 결국 부족과 곤궁 속에서 버텨야 했던 시간이었다. 전기도 없었고, 더운 여름을 식혀 줄 얼음도 없었으며, 추운 겨울을 견디게 해 줄 난방 시설도 없었다. 지금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누리는 것들이, 그들에게는 애초에 주어지지 않은 세계였다.


원시시대보다 훨씬 발전했다고 여겨지는 조선시대 역시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얼음은 여전히 귀했고, 왕실과 일부 양반들만 누릴 수 있는 호사에 가까웠다. 조상들은 무더운 여름에도 얼음을 보관하는 지혜를 찾아냈지만, 그 귀한 차가움은 누구에게나 허락되지 않았다. 쉽게 녹아 사라지는 얼음처럼, 풍요 또한 오래 붙들어 둘 수 없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보통 ‘결핍’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먼저 가난을 떠올린다. 부족함, 빈곤, 궁핍 같은 단어들이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실제로 결핍은 경제적 빈곤을 뜻하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결핍을 곧 가난이라고 이해하는 일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나는 결핍을 경제적 빈곤으로만 체감하며 살아오지는 않았다. 6·25 전쟁과 보릿고개를 지나온 부모님 세대와 달리, 나는 부모님의 희생 덕분에 경제적 궁핍을 크게 느끼지 않고 자랐다. 지금도 넉넉함을 자랑할 만큼 풍족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니지만, 사치를 줄이고 아껴 쓰면 최소한 경제적 빈곤에 사로잡히지 않고 살아갈 수는 있다.


그런데도 내 삶에는 분명한 결핍이 있다.



그것은 돈이 아니라 시간이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하루 24시간이지만, 내게 하루는 늘 짧기만 하다. 해야 할 일은 끝이 없고, 하고 싶은 일은 그보다 더 많다. 그래서 한때는 잠을 줄여서라도 하루를 더 길게 쓰고 싶었다. 남들보다 조금 더 깨어 있으면 삶도 조금 더 많이 살아낼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가지 못했다. 잠을 줄여 억지로 마련한 시간은 결국 나를 더 풍요롭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몸을 지치게 했고, 생각을 흐리게 했으며, 삶 전체의 균형을 무너뜨렸다. 시간을 더 얻고 싶어 한 선택이, 오히려 나를 더 가난하게 만들고 있었던 셈이다.


샌딜 멀레이너선과 엘다 샤퍼의 책 《결핍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에는 이런 문제를 꿰뚫는 표현이 나온다.


“결핍은 지능을 갉아먹는다.”


이 문장은 처음 읽었을 때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결핍이 단지 불편함이나 아쉬움의 문제가 아니라, 사고와 판단의 방식 자체를 바꿔 버릴 수 있다는 뜻으로 읽혔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여기서 ‘터널링’과 ‘대역폭’이라는 개념을 설명한다. 결핍 상태에 놓인 사람은 눈앞의 급한 문제에 시야가 좁혀진다.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 모든 정신적 에너지가 쏠리면서, 더 넓게 보고 더 멀리 생각할 여유를 잃는다.


결핍은 이처럼 우리에게 두 얼굴을 보여 준다. 하나는 ‘집중 배당’이고, 다른 하나는 ‘결핍의 함정’이다. 마감 직전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해 평소보다 빠르게 일을 끝내는 경험은 집중 배당의 사례다. 부족하기 때문에 오히려 집중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하지만 결핍은 늘 선물만 주지 않는다. 당장 내야 할 월세 때문에 저축을 미루고, 바쁜 일정 때문에 건강검진을 뒤로 미루고, 눈앞의 급한 일에 쫓겨 더 중요한 삶의 기반을 놓치는 일은 결핍의 함정에 가깝다. 결핍은 우리를 예민하고 효율적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더 큰 손실을 향해 몰아가기도 한다.


원시인들이 생존을 위한 물질적 결핍 속에서 살았다면, 현대인은 그보다 시간의 결핍 속에서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먹을 것이 부족해 괴로운 날보다, 시간이 없어서 허덕이는 날이 더 많다. 일정은 촘촘하고, 할 일은 끊이지 않으며, 쉼은 늘 가장 마지막으로 밀려난다.


그래서 더 중요해지는 것이 여유다.


책에서는 이를 ‘슬랙(slack)’이라고 부른다. 삶의 빈틈, 일정 사이의 공간, 예상치 못한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남겨 둔 여백 같은 것들이다. 많은 사람은 여유를 낭비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 반대인지도 모른다. 여유는 돌발 상황을 견디게 하고, 실수를 회복하게 하며, 다시 생각할 힘을 남겨 둔다. 삶을 오래 버티게 하는 것은 빽빽한 성실함만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도록 받쳐 주는 이 작은 틈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종종 결핍을 개인의 게으름과 연결하려 한다. 특히 가난에 대해서는 더욱 쉽게 그런 판단을 내린다. 하지만 가난은 단순히 의지 부족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오히려 사람의 판단력을 좁히고, 더 나은 선택을 할 여력을 빼앗아 가는 환경의 산물일 수 있다. 결핍은 사람을 나태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너무 급하게 만들고 너무 좁게 보게 만든다.


결핍은 우리를 약하게 만든다기보다, 우리를 눈앞에 묶어 둔다. 시야를 줄이고, 생각을 조급하게 만들고, 더 멀리 보아야 할 삶을 당장의 문제에만 붙들어 놓는다. 그래서 결핍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말 필요한 것은 더 강한 의지나 더 많은 인내만은 아닐 것이다.



삶을 조금 덜 빽빽하게 만드는 일, 나를 몰아붙이지 않아도 되는 구조를 만드는 일, 예상치 못한 일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을 만큼의 여유를 남겨 두는 일이 더 중요할지 모른다.


어쩌면 우리가 진짜로 경계해야 할 것은 결핍 자체가 아니라, 결핍을 당연하게 여기며 여유 없는 삶을 계속 반복하는 태도인지도 모른다. 삶은 끝없이 채워 넣는 것으로만 나아가지 않는다. 때로는 비워 둔 자리에서, 남겨 둔 틈에서, 숨 쉴 수 있는 여백에서 비로소 다시 앞으로 나아갈 힘이 생긴다.


결핍을 이기는 힘은 더 악착같이 버티는 데 있지 않다.


조금 덜 몰리고, 조금 더 숨 쉬고, 조금 더 넓게 볼 수 있는 삶을 만드는 데 있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