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1년의 고용안정성 차이가 이렇게나 큰 간극이...
만 43세에 공기업에 재취업에 성공한 썰을 풀겠다.
20대 내내 공무원 시험을 종류별로 기웃거리며 약 7년을 백수로 지낸 난
동생과 엄마의 자본으로 차린 학원으로 기어들어갔고 거기서 '부원장' 직함으로 학원의 회계, 원생과 학원 강사들과 차량기사 임금 및 고용 등 잡다한 업무를 처리하며 고정급 250만 원을 받고 살았다.
그러다 동생이 결혼하고 타지로 이사 가며 엄마와 나 둘이서 학원을 운영하기엔 힘들다고 여기는 차에 코로나가 터졌고, 자연스레 폐업 수순을 밟았다.
백수가 된 나는 10여 년간 250만 원으로 동결됐던 월급을 아껴 모은 예금(재테크를 쥐뿔도 모르고, 안 해서 그저 적금 통장과 예금 통장 2개만 있었다... 아... 틈틈이 재테크 유튜브를 봤었어야 했는데... 후회한다... 후회하는 게 이 것뿐만 아니지만)과 엄마가 퇴직금이라 생각하라며 주신 학원 건물 보증금 3천만 원이 남았다.
이 돈을 굴려야 한다는 생각에 그때부터 주식, 부동산 공부를 하러 경매 수업도 듣고, 유튜브 강의도 들었다.
경매 수업을 들으러 평생교육원에 드나들다 보니 무료수업에 대한 정보를 꽤 많이 접하게 되었다. 덕분에 영상편집, 한국 수어, 캘리그래피 등을 마구잡이로 배우게 되고, 그 수업마다 또 동아리와 커뮤니티가 생겨 꽤 바쁘게 살게 되었다. 영상편집 수업은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분을 만나 최저시급 정도의 돈을 받고 편집을 도와드리게 되었고, 수어 수업에선 봉사 동아리가 만들어져 일주일에 한 번씩 농인들 행사나 수어 통역이 필요한 농인분들을 위해 만났고, 캘리그래피 또한 내 글씨를 마음에 들어 한 목사님이 교인들에게 나눠줄 홍보물과 편지에 문구를 써달라고 부탁하시면서 소정의 수고비를 받게 되었다.
물론 먹고 살만큼의 생활비가 되기엔 턱없이 부족한 돈이었지만, 그래도 '어? 이렇게도 돈을 벌 수 있네?'라는 생각과 함께 수어통역사 자격증도 있으면 좋겠단 생각에 시험 준비도 하면서, 또 시험 준비하는 걸 영상으로 찍어 유튜브 쇼츠에도 올렸다.( 하지만 구독자 21명에서 멈춤 -_-) 앉아서 돈이 들어온대서 애드센스 승인도 받아보려고 수어통역 공부한 내용을 열심히 T-story에 올려봤는데, 러시아 학자 이름이 있다고 실패했다 ㅠㅠ 러-우 전쟁 여파로 구글이 러시아 이름은 무조건 거르는 상황이라 승인이 안 났다고 한다. (애드센스 도전하시는 분들 참고하셔요.)
바쁘게는 살지만 3년 간 연봉 300만 원(월소득 아닙니다! 연 소득이!!!)이 될까 말까 한 상황이 이어지니 막막했다.
역시 나이 든 여자는 공장에 가거나 공무원시험밖에 답이 없는 건가, 하지만 아직 공장에 가기엔 경제적으로 압박이 심한 상태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공무원 공부를 다시 시작하는 건 시른뒝~ 이러고 있는 사이
수어봉사동아리에서 친해진 언니(나보다 10살이 많이 그 당시 50이 넘은 상태)가 재취업을 하셨다며 동아리에서 나가 더 박탈감이 커졌다.
그래, 돈 되는 일을 해야지, 우아하게 돈 벌려하다가 벼락거지 되지, 하지만 대체 어디로 취업해야 하는가! 마흔이 넘은 날 누가 필요로 한다는 건가! 이런 감정의 널뛰기를 겪고 있었는데
위에 재취업했다는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 한방병원에 누워있다."
"읭? 왜유?"
"일하다가 허리 삐끗해서."
"언니 사무직이라면서 허리 쓸 일이 뭐 있다고."
"내 나이 돼 봐. 앉아있다가도 허리 삔다."
"ㅠㅠ 큰일이네"
"여튼 나 일 그만둬야겠는데, 니가 후임으로 들어와 주라."
"갑자기?"
"일 쉬워. 혼자 일하는 거라 누구 눈치 볼 일도 없고. 일단 어려운 일들, 프로그램 짜기, 강사 배정 등은 다 내가 해놔서 니가 와서 운영만 해주면 돼. 4개월만 도와줘."
주 4회 출근이고, 세전 200만 원 남짓의 최저시급 수준의 월급이지만 일이 쉽고, 또 지금 당장 언니의 대타가 필요한 상황이라 해서 그렇게 난 충남평생교육진흥원에 원서를 내게 되었다.
언니는 꽤 쉽게 얘기했지만
막상 편도 한 시간 이상 운전해서 진흥원 본사에 가서 면접을 보러 가니 지원자가 꽤 되는 데다
(난 언니가 말만 하면 내가 되는 줄... 이렇게 순진할 수가!)
꽤 오랜 시간 '청년도전지원사업'에 대한 이해도와 경력에 대한 압박 질문이 있었기에 진땀이 났다.
속으로 선생님, 전 4개월 땜빵하러 온 계약직인데 이토록 진을 빼야 하는 건가요?를 되뇌었다. -_-
게다가 면접을 보고도 합격 여부를 연락을 준다던 5일 후 오후가 되도록 문자가 없어서
역시나, 내 옆에 앉았던 그 대학 갓 졸업한 20대 여자애가 되었구나, 아님 맞은편에 앉아있던 30대 초반의 덩치가 좋은 그 청년이 되었나, 하며 다시 우울해질 무렵
진흥원이 아니라 언니한테 전화가 먼저 왔다.
"거 봐, 내가 너 됐을 거라고 했잖아!"
"뭔 소리유. 합격하면 문자 준댔는데 여태 연락 없는 거 보면 안 된 거라니까."
"지금 진흥원 홈페이지에 합격자 명단 떴는데 송OO 010-****-1234 면 너잖아. "
언니한테 면접 보고 와서 뭔 4개월짜리 계약직에 20~30대 청년들이 3명이나 와있더라고~ 이렇게 빡쎈 거 왜 안 알려줬냐고~ 누가 청년들 말고 40대 아줌마를 뽑겠냐고~ 징징댄 참이었는데
내가 합격이 되다니!
나중에 팀장님께 물어보니 내가 예상했던 30대 남자분을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그분이 다른 곳 정직원으로 합격해서 취업을 포기하는 바람에 내가 됐다는 후문을 들었다 ㅎㅎㅎ
여튼 난 진흥원에서 4개월짜리 '청년코디'로 취업을 해서 2023년 11월~2024년 2월까지 일하게 되었다. 언니 말대로 이미 언니가 모든 준비를 다 해놓은 상태라 난 꿀만 빨았으면... 좋았을 테지만... 월급을 주는 이유는 그만큼 힘들어서이지 -_- 꿀은커녕 공공기관의 어떻게 파일 관리를 하는지 혹독하게 배우느라 4개월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전자문서로 공문 쓰고, 출장신청 & 결과보고서 쓰느라, 지출 품의, 결의를 하고, 무엇보다 현재 청년도전지원사업에 참여한 참여자 관련 파일과 강사 관련 파일 등을 충남 전역에서 일하는 다른 코디분들과 통일하다 보니 수정과 재수정, 최종 수정, 최최최종 수정, 진짜 마지막 수정, 찐막최최초최챠최최종 수정을 거치느라 일주일에 홍성을 2~3번씩 출장갔다오며 '와, 이게 쉽다고? 이 언니 입만 열면 거짓말이네.' 왕창 욕을 했다.
그리고 계약 종료 날이 다가왔고, 사무실에 있던 모든 짐을 홍성으로 내면서 4개월간 그래도 많이 배웠다, 정도에서 멈추려 했는데
이 사업이 23년엔 시범사업으로 시작해 24년~28년 5년 확정된 사업이라 3월부터 다시 코디를 뽑고, 이번엔 2년 고용확정 +1년 재계약 가능 조건이라는 말에 다시 원서를 매만지는 날 발견했다.
일단 주 4일(월-목)만 일하는 게 제일 매력적이었고, 본사와 떨어져 파견근무다 보니 연차를 당일 날도 받아주고, 혼자 일하는 게 좀 외로울 수도 있지만 쓸데없는 회사 인간관계에서 벗어나 내 개인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장점이 많았다. 무엇보다 4개월간 배운 지식으로 3년의 고용보장이 된다니, 안 할 이유가 없어 보였다.
그렇게 24년 3월~현재까지 고용이 확정되고 다행히 26년 재계약을 할 만큼 근무평가를 받게 되었다. 그 따뜻한 팀장님들도 근평 앞에선 어찌나 차갑던지, 재계약에서 밀려난 코디 3명이 오늘까지만 근무한다고 마지막 인사를 올린 카톡에 난 조용히 ♡만 눌렀다.
그리고, 오늘 글의 주제인 '계약직들 사이에 있는 계급'이 드디어 이제야 나온다 -_-
진흥원 사업지원팀에서 진행하는 사업들 중에 내가 몸담은 "청년도전지원사업"은 코디들에게 위와 같이 2년 확정 +1년 연장의 고용안정성이 있는데
"청년성장프로젝트"라는 사업에서 뽑은 코디들은 무조건 1년씩만 계약을 하게 되어있어서(팀장님이 예산이 이렇게 배분되었다고 하면서 굉장히 미안해하며 말씀해하시는데, 나로선 그 시스템들을 다 이해할 수 없다 ) 작년에도 '도전' 쪽 코디들이 여유로운 겨울을 보낼 때 '성장'쪽 코디님들은 계약종료-원서 다시 내기-또 면접의 과정을 통해 함께 일하게 되었다. 오늘도 성장프로젝트 코디님들은 인사도 없이 이미 며칠 전부터 연차소진을 위해 (연차보상금 따위 없다!) 다 쉬시고 계시고 아마 오늘로 계약종료가 될 것이다.
'도전'과 '성장' 모두 청년들 대상 사업인 데다 일하는 구조가 주 4일로 같고, 직책 이름도 '코디'로 같고, 강사님들도 서로 공유해서 워낙 교류가 많은데, 작년에도 이맘때 여유로운 '이쪽'과 고용불안정과 다시 원서를 써야 하는 번거로움에 어두운 '저쪽'이 있다.
그렇다.
정규직-비정규직의 간극은 너무나 커서
진흥원에 있는 팀장님들, 선임님들을 우리가 감히 탐내지 않지만,
같은 계약직인 주임, 코디들, 게다가 그 코디들 사이에서 조차 이렇게나 '급'이 나뉜다.
그렇다고 내가 상위계급에 있다는 게 아니다. 그저 1년의 고용안정성 차이뿐이다.
그럼에도 지난달까지 서로 '슨생님~ 감사합니다~죄송합니다~' 라며 함께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 오가던 수많은 부탁, 독촉, 죄송, 감사가 동등했다면, 계약의 조건에 따라 '이쪽'은 도장 하나만 들고 회사에서 마련한 계약서에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몇 번 도장을 찍으면 되지만,
'저쪽'은 작년 한 해 새로운 자격증을 따놓지 않으면 과연 면접까지 갈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원서를 쓰고 자기소개서를 고치는 고민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쪽'에 있는 나도 불안한데
'저쪽'에 있는 분들은 얼마나 불만이 많을지, 가늠이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