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약을 복용하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을 줄이야...
청년 N은 시에서 운영하는 정신건강복지센터 소개로 '청년도전지원사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정신건강복지센터는 시에서 운영하며, 시립병원 정신과 의사가 센터장으로 역임하고 여러 개의 팀으로 나눠 꽤 관리가 필요한 자살위험군부터 겉으론 전혀 정신병 질환자로 표가 안 나는 분들까지 포괄적으로 품는다. 대부분 사회 복지사분들이 센터 소속 되어, 그분들이 프로그램 운영을 하면서도 센터에 등록된 분들을 가가호호 방문하기까지 하며 치밀하게 관리한다.
그리고 내게 N을 소개할 때
"기능이 좋다"는 표현을 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해내는 일들,
특히 컴퓨터로 문서를 작성한다던가, 온라인 강의를 듣고 수료증을 pdf 파일로 다운로드하여 메일로 담당자한테 전송하는 것과 같은, 단순해 보이는 일들일 지라도, 정신병력이 있는 분들은 그리고 나이가 40대만 되어도 못하는 분들이 많기에
N은 나이도 어리고, 대학도 4년제를 졸업할 만큼의 수준이었으니 '기능이 좋을 수' 밖에.
N의 첫인상은 조용조용한 목소리와 조심스러운 표정과 달리 패션이 꽤 과감했다. 늘 크롭티를 입고 상체 노출이 좀 있는 옷을 매치했다.
'2000년대생 요즘 애들' 느낌으로 대체 우울증 약을 먹는 것처럼 전혀 보이지 않았다.
프로그램 진행 중에도 좋은지 싫은지 알 수 없는 특유의 무표정만 마음에 좀 걸릴 뿐, 출석률도 좋고, 내가 요구하는 어떤 과제든 제일 빨리 처리해 주어 고마운 참여자 중 하나였다.
게다가 프로그램 막바지에 했던 상담에선 자기 진로계획도 자세히 설명해 주어 '아 이 친구는 확실히 사회에 나갈 준비가 되었구나!'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프로그램 후 사후관리를 3개월간 하는데(나랏돈으로 운영되는 모든 사업들이 '만족도조사'가 매우 매우 매우 중요하기에 모든 수업 후에 만족도조사를 하는 데다, 프로그램 끝나고도 최종만족도, 프로그램 끝난 지 3개월이 지나서까지 사후 만족도를 계속 요구한다... 돈 벌기란 이렇게나 힘든 것이다.) N이 갑자기 연락이 안 되기 시작했다.
수당 받을 거 다 받고 나서 연락 안 되는 참여자들은 늘상 있던 터라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지만,
그래도 N은 취업 계획이 워낙 확실했기에 궁금해서 간간히 연락을 했으나 전화가 아예 꺼 있었다.
좀 선 넘은 행동일 거란 우려도 있었지만, 도저히 궁금해서 안 되겠기에 정신건강복지센터로 전화해 보니
"아, N님은 현재 입원 중이세요."
"헉! 어디 아프신가요?"
"계속 앓아오던 병증이 악화돼서..."
"건강해 보이셨는데?"
"그... 자세한 건 개인정보에 해당하여 말씀드릴 수 없지만, 초기에 소개해드릴 때도 잠깐 언급드린 정신병력이... 급격히 악화되어서요."
"아... 정말 3개월간 너무나 적극적이고, 또 취업 계획까지 세우셨었는데... 혹시 청년도전지원사업 참여가 N님을 더 힘들게 한 건 아닐까요?"
"그런 건 아닐 거예요. N님도 그렇게 적극적으로 참여하셨다면 극복의지가 있으셨을 텐데, 이게 갑자기 이렇게 무너지시는 분들이 간혹 계세요. 너무 걱정 마세요 ㅎㅎ "
나도 꼰대에 시골사람이라 편견이 큰 지 모르겠지만, 정신병원에 그 꽃다운 청춘이 입원해 있다니 너무나 걱정이 앞섰다.
차라리 교통사고가 났다거나, 어디 신체 부위가 아파서 입원했다고 하면 덜 걱정될 듯하다.
N은 꼬박 3개월 반을 입원 후 퇴원했고, 나에게 말했던 취업계획을 수정 중이다.
P는 누가 봐도 우울한 상황이긴 하다.
어렸을 때부터 꿈꾸었던 특정직 공무원 시험에 8년째 떨어진 참이고, 이젠 완전히 포기를 하는 선택에서 멈칫거리는 중에 '청년도전지원사업'에 참여했다.
하지만 P는 우울하긴커녕 좌중을 압도하는 리더십과 에너지와 밝음은 그 누구보다 빛났다.
비슷한 또래의 청년들 모아놓으면 금세 친해지지 않아?라고 순진하게 물어보신다면
그건 대학 신입생 OT에나 좀 가능한 얘기라고 답변드린다.
이전에 말했듯
대한민국 청년의 범위는 너무나 넓다. 만 18세~34세까지고, 내가 담당하는 분들은 39세까지도 넓어질 때가 있다.
게다가 대학 신입생 OT에선 비슷한 지적 수준과 말 그대로 '비슷한 나이 또래'와 또 밝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가득 차 있다면
청년도전지원사업 참여자들의 지적 수준은 너무나 천차만별에(서울대 졸업생부터 고등학교 졸업도 못한 학교밖 청소년까지), 참여자 조건이 "6개월 이상 미취업자"이기에 꽤 오랜 기간 진학, 취업이 좌절된 분들은 엄선(?)한 터라 대부분 경제적으로 힘들고 꿈도 희망도 많이 꺾여 어둑어둑한 분위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P는 그 화합하기 힘든 조합의 모든 참여자들에게 말을 걸고 3개월 내내 '으쌰으쌰'하는 분위기를 이끌어내어 정말 내 월급의 반을 주어도 모자랄 판이었다.
(월급의 반이라 봤자 채 100만 원이 안 되는 너무나 적은 -_- )
그런 P가 어느 날인가
"저 조퇴하면 안 될까요? 너무 졸려서요."
"네 그럼 가보셔야죠. 어디 몸이 불편하신가요?"
"아, 우울증 약을 좀 더 센 걸로 바꿔서 그런지 엄청 졸리네요."
P가 마지막 시험 때 물속에 가라앉는 듯 호흡을 못하겠고 손에 식은땀이 나서 인쇄된 종이 위 활자들이 다 번질 정도였다는 에피소드를 유쾌하게 말하며 또 희화화된 그의 표정과 손짓에 모두들 웃느라 바빴는데
그게 바로 P의 첫 공황발작이고 그때부터 P는 언제 공황이 덮칠지 모르는 공포 속에서 살며 불면증 등 온갖 우울증 증세 때문에 주기적으로 정신병원에서 약을 타먹고 있었다.
그 외에도 우울증 환자라고 하는 분들, 특히 자살위험군을 봤을 때도
"저 사람이?"
라는 질문부터 늘 들었다. 전혀 우울해 보이지 않을뿐더러 너무나 표정들이 밝았기 때문이다.
그 표정이 그들이 죽을힘을 다해 짜낸 거라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아직도 가슴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가 많다.
대한민국은 점점 청년들이 귀해진다.
국민연금 개혁이 필요하지만 힘든 이유도 인구구조가 가장 큰 원인이라는 걸 누구나 다 안다.
우리 귀한 청년들을 단 한 명도 놓치지 않고 다 살릴 방법, 다 잘 살 수 있는 방법, 어디 없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