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분을 하는 계약직이란?

노동권의 보장은 어디까지가 옳을까?

by 루치아

나의 직함은 '코디'이다.

충남의 '청년코디'(정수기 관리하시는 분이나 다른 정책에 몸담는 코디님들과 구분하기 위해 '청년'을 넣어봤습니다.)는 대략 15명 정도인데, 직함 이름에 별생각 없는 사람도 있고, 그저 이 계약직에 합격한 거 자체에 기쁨을 느끼는 분들도 계시지만, 또 나를 포함한 몇몇은 '코디'가 뭐냐고~ 본부에서 뽑는 계약직들과 마찬가지로 '주임'으로 하면 얼마나 듣기 좋겠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본부에서 주임들과 코디들의 직함을 나눈 이유야 여럿 있겠지만, 내 생각엔 근무 조건 때문인 듯하다. 본부 직원들이나 우리 모두 1년 단위 계약직들이지만 본부는 주 5일 근무지만, 코디들은 주 4일 근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코디들을 굳이 주 4일제 근무로 뽑은 이유는 진흥원 본부의 인건비 예산 문제 때문이다.


돈은 이렇게나 많은 걸 결정한다.


많은 센터나 문화수업에 '코디'들이 있다. '코디'들은 대부분 정부 지원 하에 시민들에게 무료로 제공되는 수업에서 출석 관리를 하고, 참여자들이 결석하면 연락하며 출석을 독려하며, 수업이 끝날 때마다 참여자들에게 만족도조사를 받는 일을 수행한다. 일이 꽤나 단순하고 별다른 기술을 요하지 않으며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은 대신 급여가 적기에(최저시급을 맞춰 준다 해도 일하는 시간이 적으니) 40~50대 여자분들이 많다.


충남평생교육진흥원의 코디들은 2023년 6월에 각 지역에서 급히 모집이 되었다.

난 전에 얘기했던 대로 이미 코디로 일하던 아는 언니의 건강문제로 11월에 늦게 합류했기에 처음 모집이 될 때 상황을 알 순 없지만, 언니 말로는 '시청 평생교육과 팀장 알지? 걔가 전화해서 원서 넣으라대?'가 전부였다. 나중에 타 지역 코디님들께도 여쭤보니 비슷한 루트로 취업을 했다. 평생교육원에서 수업 듣다 보니 담당 공무원이 이런 계약직이 새로 생겼는데 지원해 보라고 했다거나, 혹은 평소 좀 친분 있던 공무원이 지원해 보라고 해서 등, 고용 24(구 워크넷_)에 정식으로 구인공고를 본 사람은 없고, 소위 말하는 '알음알음'으로 원서를 냈기에, 각 지역에서 1명만 지원해서 경쟁률 없이 바로 합격한 듯하다.


소규모 자영업 내지 직원이 적은 회사 대표님들께 공개구인보다 지인 추천으로 사람을 뽑는 게 훨씬 낫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

여기 진흥원도 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은 공기업(더 정확히 말하면 재단법인입니다. )이라 그런 건지, 아니면 '청년도전지원사업'이라는 국비 사업을 꼭 따내고 싶은데 시간이 촉박하다 보니 그랬는지, 여하튼 처음 '코디'가 되는 방법은 각 지역 평생교육 관련 부서 공무원과 친분이 있어야만 했다.

그래서 그런지 연령대가 꽤 높았는데, (15명 중 50대가 3명, 40대가 4명, 그 외 30대고, 20대는 1명뿐이었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코디'란 직업 자체가 원래 아줌마들이 선호하는 직업이라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내가 본격적으로 근무하면서, 23년 6개월만 일하고 그만둔 사람이 4명(그만둔 사람 모두 40~50대), 그리고 새로 뽑힌 사람 나 포함 4명이 물갈이가 되면서 24~25년 1년 10개월의 꽤 고용보장이 되는 계약직이 시작되었다.

새로 뽑힌 사람들부터는 공개 구인을 통해 지원했는데, 나 외에 20~30대이고, 모두 행정업무 능력도 뛰어나다.


하지만 초창기 멤버 중 지인 찬스로 알음알음 지원한 코디들 또한 대부분은 괜찮은 사람들이지만, 정말 엉망진창인 사람들도 있다.


일화를 말해보겠다.




Q 코디는 본인 말로는 꽤나 왕년에 공부를 잘했단다. 하지만 준비했던 행정고시를 십수 년째 실패하고, 고시낭인이 되어 PC방만 다녔다. 게임도 지겨워질 무렵 평생교육원에서 무료 수업 중에 관심 있는 게 있어 들었고, 그 수업 관리하던 공무원이 Q에게 코디 일을 제안했다.


Q코디 말로 50년 인생 중 처음 월급 받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나라의 녹을 먹는 게 평생 꿈이었지만, 이제 포기한 지 오래였는데 이렇게 기회가 생겨 너무 좋다고 하는데 정말 기뻐 보였다. 그리고 Q코디는 정말 열심히 했다. 하지만 '열심히' 하는 것이 곧 '잘' 하는 건 아니었다.


본부 측에선 Q코디에게 본부에서 준 양식을 변형시키지 말라고 여러 번 요청했다. 하지만 Q 코디는 툭하면 '이렇게 하는 게 더 좋아 보여서~'라는 말로 양식을 바꿔 쓰거나, 인덱스로 지출연번을 표시해 달라는 본부 요청에 '아니, 파일 정리에 그런 거까지 해야 해? 난 안 할 거야.' 라며 쓸데없는 업무와 쓸모 있는 업무를 자의로 나눈다던가, 무엇보다 출장신청도 안 하고 자주 근무지 이탈을 했다.


코디들은 같은 회사 사람들과 사무실을 쓰는 게 아닌 데다(대부분 그 지역 주무관 혹은 청년센터 근무자들과 사무실을 같이 쓰거나 혼자 공간을 쓰는 경우도 있다.), 잦은 홍보 일정 혹은 일의 특성상(소모품, 다과 구입 등 짜잘한 프로그램 관리 관련 일 때문에) 출장이 많아 본부에서도 근무지 이탈을 좀 엄격히 관리하려 노력했다. 그럼에도 근무지 이탈이 걸릴 일은 거의 없는데 Q코디는 말 그대로 '딱 걸렸다'다고 한다.


계약직도 징계처리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Q 코디는 조용히 계약해지 되었다.



W코디는 가끔 오래 쉬었다.


독감, 코로나, 장염 등 골고루 앓았다.


아파서 장기 병가를 내는 거야 어쩔 수 없다지만, 그렇게 병가를 내면 다른 직원들이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다. 프로그램 운영을 위해 본부 직원과 W코디가 담당한 지역 근처 코디들이 지원을 나갔다. 한두 번이면 이해할 텐데 너무 반복되니 다들 지쳐갔다. 게다가 아프다는 진료확인서를 냈지만 해외여행을 갔다 온 의혹도 있었다.


그러다 남자인 W코디가 아내의 출산소식을 알렸을 때 모두 축하는 해줬지만, 출산 휴가에 또 백업을 하느라 여러 사람이 지쳐갔다. 그리고 이어 육아 휴직을 신청하는 그를 보며 좀 뜨악했다.


신생아를 돌보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나 포함 아이 엄마였던 대부분 코디들은 다 아는 데다, 요즘 세상에 출산은 너무나 귀한 일이기에 편의를 봐주는 것도 당연하다지만,

"니가 애 낳았냐?"라는 꼰대 아저씨의 말이 왜 나오는지도 이해되었다.


본인이 예고 없이 그렇게 쉬면 자기의 일을 다른 직원들이 나눠해야 해서 얼마나 힘들지 뻔히 아는 사람이 이렇게 나오니, 그렇다고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는 W를 탓하기에는 노동권이 너무나 보장되는 조직인지라(고용노동부 산하 유관기관이라 그런지 노동법 준수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다들 겉으로 말은 못 하고 한숨만 쉬었다.


그리고 얼마 후 W 또한 조용히 계약해지되었다.




날 이 일로 안내해 준 언니도 청년코디 일을 한지 한 달 반 만에 허리디스크가 터져 병원에 입원하게 했는데, 회사에서 '계약해지'를 하지 않고 '병가'처리를 하며 3주를 요양하게 해 주고, 월급도 챙겨준 데에 대한 고마움 때문에 언니는 '요즘 세상 좋아졌다'라고 말했었다.

여전히 계약직은 성과급, 명절 보너스에서 제외된다. 하지만 우리 팀장님은 예산을 쥐어짜서 명절 때마다 코디들에게 단돈 만 원짜리 기프티콘, 커피쿠폰카드, 명절선물세트 등을 챙겨주려 엄청 노력해 주셨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팀장님) 요즘 세상에도 당일 연차나 병가는 힘든데, 진흥원은 작은 주의만 줄 뿐 사실상 연차나 병가 쓰는 걸 법정 기한 안에서 쓰는 걸 거의 터지 안 한다. 코디들이 주 4일 근무이기 때문에 연차 시간이 15일 0.125시간(18분) 따위로 좀 어설프게(?) 쥐어지는데, 18분까지 알뜰히 쓰라고 배려해 주실 정도다.


계약직도 노동권이 보장되는 세상은 참 아름답다.

하지만, Q처럼 행정업무가 너무너무 떨어져서 나중에 그 사람이 한 일 다시 제대로 고쳐놓느라고 다른 직원들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나, W처럼 도덕적 해이로 인해 월급은 받으면서 최대한 일을 안 할 수 있는 방법만 찾는 1인분을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과연...


...이라고 말하면 또 여러 대기업 정규직이나 공무원들의 복무 태만 관련한 이야기들이 떠오르는데, 그 사람들은 계약해지조차 안되고 오히려 따박따박 승진까지 하니 계약직만 1인분을 못한다고 뭐라 하는 게 형평에 어긋나는 건가... 싶기도 하고...


... 아... 나도 계약직이면서 계약직의 노동권 보장에 너무 강하면 안된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섬찟하다. 을은 갑의 자리는 넘보지도 못 하면서 을끼리 더 좋은 자릴 위해 싸운다더니 내가 바로 그런건가 싶어서.


1인분을 한다는 게 뭘까, 도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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