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어린 나이부터 지원금에 익숙해져 버린 건 정책의 잘못일지도
충남 유일의 '공립' 대학교 충남도립대는 충남 청양에 위치한다.
사실 충남에 살면서도 충남도립대의 존재를 잘 몰랐다. 서울 사람들만 모르는, 지방인들은 다 아는, 저 산골짜기에 숨어있는 작은 대학들이 얼마나 많던가! 대학 관계자와 그 근처에서 저 대학생들 상대로 장사하는 분들 외에는 대학 상황을 거의 모른다고 봐야 한다.
나 또한 이 청년도전지원사업에 투입이 되고, 참여자 중에 저 대학 출신을 몇몇 만나면서야 겨우 저 학교를 알게 되었다. (처음엔 대전에 위치한 충남대와 헷갈렸다.)
전문대라서 2~3년 안에 학생들이 졸업을 하며 취업을 해야 하는데 이 취업란이 극심한 세상에서 대학 입학하자마자 취업만을 위한 준비를 하다가 입학 다음 해는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하니 얼마나 힘들겠냐만은, 그 힘든 일을 저 대학은 '알아서' 게다가 '거의 무료로' 진행해 준다.
위와 같이 대학에서 대놓고 자랑하는 혜택뿐만 아니라 눈에 띄지 않는 은밀한(?) 혜택도 있다.
이 홍보문을 보면 신입생에게 우선적으로 기숙사를 제공한다는 단순한 문구처럼 보이지만
이는 지자체와 공모한 굉장한 '청년인구증가' 방안이다.
청년이 기숙사에 들어오는 조건이 '부모님과 세대분리 후 청양으로의 전입신고'이다. 그러면 서류상 청양은 청년인구가 늘게 되는 것이다.
청양은 면적은 479.2km이나 되는데, 인구는 겨우 3만 정도이다. 얼마나 넓은지 감이 안 오시는 분들이 많으실 테니 타 도시 면적을 예로 들자면, 서울 면적은 605.21km, 수원시 121.1km이다. 서울보다 조금 작고, 수원시의 4배 면적에 노인부터 아이까지 모든 인구를 끌어모아도 3만이 될까 말까 한 말 그대로 '지방소멸'지역 중 대표적인 곳이다.
이런 상황에서 청년인구 한 명 한 명은 꽤나 소중하다.
내가 사는 소도시에서도 청년인구가 전입해 오면 현금 300만 원을 입금해 준다. (청년들이여, 지방으로 오라.)
그럼 저토록 절박한 청양은 어떤 혜택이 있을까? 청년수당, 청년월세우대, 누구나가게(창업지원) 등 지원정책이 10가지는 되지만 그중 내가 관리한 참여자가 받은 건 바로 '기초수급대상자'이다.
부모와 세대분리한 만 18세의 대학 입학한 청년이 수입이 있을 리 만무이니 바로 '기초수급대상자'로 등록해서 월 70~80만 원의 기본소득을 보장해 주는 것이다.
B는 이렇게 만 18세부터 지원금의 세상에 눈을 떴다. 게다가 자기의 노력은 거의 안 들이고, 주변의 도움으로 받았다는 게 더 큰 문제(?)가 된 듯하다.
B는 공무원이 되라는 부모님 말씀에 별생각 없이 공무원 시험 과목을 가르치는 과를 선택하고, 자기 성적에 맞는 대학교를 학교에서 추천받고, 또 부모님이 학비 싼 학교를 가라고 해서 충남도립대에 왔다. 여기까진 다른 고등학생들도 많이 밟는 케이스니 그러려니 한다.
하지만 도립대 기숙사에 와서부터 갑자기 청양에서 기초수급 관련자한테 연락을 받는다. 왜 받을 수 있는 혜택을 안 받고 있냐고 오히려 타박을 들었단다. B는 그저 아무것도 안 했을 뿐이다.(세대분리와 전입신고 등도 부모님이 대신해 준 듯하다. B에게 물어보니 아는 것도, 기억나는 것도 거의 없었다.) 여하튼 B는 서류 몇 장을 준비해 냈더니 갑자기 매월 80만 원 가까이의 수익이 생겼다. 대학생활은 윤택해졌고, 대학 교수님들과 일자리센터에서도 B에게 뭐 못해줘 안달 난 사람들처럼 방학 때 쉽고 편한 아르바이트를 알선해주기조차 했다. B는 아르바이트조차 골라서 하다가 그마저도 돈이 굳이 필요 없어서 안 했단다.
공무원 시험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보니 B는 졸업 전까지 합격하지 못하고, 졸업 후 6개월을 보낸 뒤 여기 '청년도전지원사업'에 참여한 케이스였다.
B는 첫날부터 결석을 했는데 세종시에 위치한 공공기관에 면접을 보기 위해서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열심히 사는 청년인 줄 알았는데... 정말 3개월 내내 이 청년한테 시달린 거를 나열하자면 끝도 없다.
청년도전지원사업은 50만 원 수당을 받는 조건으로 5주간 총 40시간의 수업 중 32시간을 이수해야 한다. 주 2회 회당 4시간씩 수업을 구성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럼 10회 수업 중 8번을 나와야 50만 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출석인정'조건이 있다. 병가로 4시간을 인정해 준다. 정말 아파서 빠지는 경우도 있지만 스케일링받고 치과에서 진료확인서 받으면 7번만 나와도 수당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또 한 번 '면접'으로 인한 결석도 출석인정을 해준다. 병가를 위한 증빙이 '진료확인서'가 있듯, 면접도 '면접확인서'가 있다. 다른 점은, 진료확인서는 병원에서 알아서 발부되지만, 면접확인서는 내게 진흥원 양식을 받아서 면접받는 곳에서 담당자에게 사인을 받고 그의 명함도 한 장 받아와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B는 위에서 말한 대로 프로그램 첫날에 면접으로 빠졌고, 본인은 면접확인서가 있다는 사실도 몰랐는데, 내가 설명하는 과정에서 알게 되더니
"지금 면접확인해 주시면 안 돼요?"
"제가 면접확인해 드리는 게 아니라 B님이 면접하신 곳에서 사인을 받아오셔야 해요."
"면접 본 걸 달리 증명해 드릴 방법 없어요?"
"담당자 명함이나, 면접장소 사진 찍은 거, 본인의 면접 수험번호 등, 증빙할 자료 주시면 한번 문의는 해볼게요."
"그런 거 없는데, 근데 면접 다녀온 건 맞잖아요."
"그게, B님 말을 안 믿는다는 게 아니라 ㅎㅎ 증빙이 있어야 출석이 인정되는 거라서요. 그리고 면접 증빙이 반드시 필요한 건 아녜요."
"근데 결석처리 되잖아요."
"결석 2번은 괜찮아요 ㅎㅎ"
"제가 결석할 수 있는 기회 한 번을 날리는 거잖아요. 담에 또 결석할 일이 생길 수 있는데."
"아... 이런 상황에선... 어쩔 수 없네요."
"아, 어떻게 면접 증빙 안될까요?"
이런 식으로 끈질기게 안 되는 걸 요구할 때가 많았다. 본인이 결석하면서 왜 출석 인정이 안 되냐, 내가 해주면 안 되냐를 정말 매주 실랑이한 듯하다.
그러면서 늘 1시간~2시간 지각을 했다.
1시에 시작해 5시에 끝난다 하지만 강사님들은 늘 30분가량 일찍 끝내주시는 데다 가끔 3시간짜리 수업이 있어 4시에 끝날 때도 있는데 B는 2시 넘어 3시에 올 때도 있었다. 그리고 모두 출석인정을 바랐다. 늦게 오고도 일찍 간다. 일이 있단다.
"특별한 일 있으시면 출석인정을 해드리지만, 이렇게 지각이나 조퇴가 잦으면 곤란해요. 시간 지켜주세요."
"그냥 해주시면 안 돼요?"
B의 면상 앞에서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안돼!
안된다고!
되는 걸 해달라고 해!
안 된다고 몇 번이나 말해!
안 된다니까!!!!!!!!
2회 차, 3회 차 수업표를 받으면 일단 빠질 수업을 골라놓는다. 그냥 결석할 2회, 병가낼 1회의 수업 빼고. 그리곤 물어본다. 나머지 7회 수업 중 지각해도 문제없는 수업을. 끊임없이. B의 개인 카톡을 조용한 채팅방에 보관해 놓고 일하다 보면 100개가 넘게 찍혀있다.
"이 날은 늦게 가도 되죠?"
"저 날은 제가 좀 일찍 가야 되는 날이라서요. 일찍 가도 되죠?"
난 MZ를 싸잡아 욕하거나, '요즘 애들~'로 시작하는 무작위 비난을 정말 싫어한다.
진흥원 신입사원들을 보면 90년대생은 물론 01~02년생들도 정말 열심히 일하고, 능력 있고, 빠릿빠릿하며, 무엇보다 예의가 바르다.
MZ를 싸잡아 욕하는 사람치고 진짜 MZ랑 일해본 사람이 있는지 되묻고 싶었다.
하지만 B를 보면서, 아... 이런 애들이 있으니 '요즘 애들' 소리가 나오나? 싶었다.
전형적인 권리만 주장하고 의무는 안 하는 대표 사례였다.
3개월 후 이수를 하고 또 3개월의 사후관리도 끝나갈 무렵 진짜 저 인간하고 다신 얘기 안 해도 된다는 후련함에 기쁠 때
B가 취업소식을 알려왔다.
아무리 B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어도, 진심으로 축하했다.
B에게도 좋은 일이지만, 사실 나에게도 '실적'으로 잡혀 좋은 일이었기도 했다.
하지만 실적을 떠나 '백수의 무게'를 너무나 잘 아는 나로선 그 누구의 취업소식 모두 다 날 진심으로 기쁘게 했다.
하. 지. 만.
B는 내게 도와달라고 했다. 처음엔 좋은 마음으로 자료를 공유하고 강사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런데 요구가 점점 커졌다. 달라는 정보가 너무 많아 진흥원 내 재산인데 못 드린다고 거절해도, 거의 매일 '시간 나실 때 전화 부탁드립니다.'가 찍혀있는데 진짜 어지러웠다.
B가 사회초년생으로 얼마나 헤맬지 이해는 됐지만, 내 시간과 노력을 받는 걸 너무나 당연시 여기는 데다, 전화통화를 해보면 B가 B의 상관과 상의해야 할 내용을 나한테 징징대는 걸 들으며
"그건 선임자한테 인수인계받았어야 할 내용 같은데요."
"지금 B님과 제가 다른 공공기관 소속되어 있으니 제가 해드릴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네요."
"그럼 B님의 팀장님께 말씀드려 보세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듯한데요."
라고 좋게 얘기해도
내가 말하는 걸 듣지도 않으며 내가 말하고 있는 도중에도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내고야 말았다. 그리고 왜 자길 안 도와주시는지 이해를 못 했다.
B의 삶은 가만히 있어도 늘 '지원'과 '도움'으로 충만했는데, 취업을 하고 나서는 오롯이 자기 힘으로 뭔가를 해야 하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듯 보였다.
B가 그 회사에 6개월 이상 근속하면 청년도전지원사업 조건에서 취업성공수당으로 50만 원을 줘야 한다.
그때 또 연락해서 서류를 받을 생각 하니 벌써부터 속이 울렁거린다.
6개월 뒤엔 B가 부디 세상의 쓴맛을 좀 알고, '어른'으로 성장해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