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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치아 Apr 14. 2021

원치 않은 친절은 폭력임을

아랫집 여자

 이사 오고 딸아이가 심심하던 차에 1층 애랑 친해져서 마음이 한결 놓였다. 1층 애 엄마는 딸아이에게도 상냥했고, 내게도 친근하게 다가오고,  딸아이가 그 집에서 놀다 보면 밥도 챙겨줬다. 그런 그녀의 친절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고마운 마음이 컸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자기가 내 딸을 챙겨준 만큼 내가 자기 딸을  챙겨줬으면 바라고, 대놓고 자기 딸 저녁을 챙겨달라 해서 좀 당황스러우면서도 불편했다.

 하긴 받은 게 있으면 주는 게 당연하지 하고 불편함을 감수하고 불쾌함을 애써 감췄다. 오히려 이런 상황에 불만스러워하는 나 자신이 죄스러웠다. 난 왜 친절한 그 아줌마한테 이렇게나 못됐나. 은혜를 갚아야지.


 아크릴 수세미, 본인이 만든 개떡이나 떡볶이 같은 간식들, 과일을 꾸준히 주는데 정말 고맙게 받고 고맙게 쓰고 고맙게 먹으면서도 마음 한 켠엔 뭘로 보답해야 하지?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래서 돈가스를 살 때 한 개 더 포장해오고, 마트에서 애들 슬라임 장난감을 사면 1층 애 것을 하나 더 사고. 선물로 들어온 음료수 세트는 고이 모셔두었다가 1층에 갖다 주었다.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인가. 이웃들끼리 서로 챙겨주는 모습이.

그러나 모든 것이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난 아크릴 수세미가 플라스틱 털이 빠지며 음식물 쓰레기에 섞이기에 환경에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어 안 쓴다. 우리 아파트는 음식물 쓰리게 수거 업체가 가져가서 건조하여 비료로 만든다던데. 땅에 100년이 지나도 안 썩는 아크릴 수세미 실들이 섞여있을 생각을 하면 끔찍했다.

 1층 아주머니의 음식 솜씨는 딱히 좋지 못했다. 개떡도 떡볶이도 맛이 전혀 없었다.

 과일도 본인도 어디서 받은 거라는 데 썩어있는 게 반은 되었다.


 날 못되고 차갑다고 욕해도 좋다.

 난 안 주고 안 받는 관계가 좋다.

 난 친정식구만 16명의 대가족에 장녀이고, 시댁 식구도 11명을 챙겨야 하는 맏며느리자, 초등학생 애 둘을 돌보며 작은 가게도 신경 써야 하는 등 매일 예정된 일에다 예정에 없던 일들도 겹치며 왼갖 집안 행사들에 치여산다. 솔직히 1층 아이의 무언가를 더 챙겨야 하는 상황이 부담스러웠다.


 그러던 와중 아이들 사이가 틀어졌다. 그러자 1층 아이 엄마가 내게 인사를 안 하고 무시하기 시작했다. 무안하기도 했지만 한편 속이 편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들 싸움이 다 그렇듯 또 금세 화해하고 아이들이 희희 거리니 1층 아이 엄마도 또 반갑게 인사를 하고 아이한테 과자를 쥐어주는 것 아니겠는가!


 아... 제발 나에게 그만 친절하길.

당신의 과도한 친절이 나에겐 폭력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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