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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치아 Apr 14. 2021

"친정엄마"란 단어에 준 환상

대부분의 문화권이 그렇지만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엄마"란 단어에 대해 너무 과도한 향수와 안도감, 푸근함, 안정, 무한한 사랑 등의 이미지를 덧씌우는 건 아닐까. 거기에다 '친정'을 덧붙인 "친정엄마"란 희생의 아이콘으로 세상에서 가장  애달픈 존재이며, 결혼한 딸들은 그들에게 늘 감사와 못다 한 효도에 대한 미안함으로 버무린 감정으로 대해야 하는 것처럼 단순화시킨 면이 있다.


 세상엔 변하지 않은 것들도 있다. 만유인력의 법칙과 같은 물리법칙이 제일 좋은 예일 것이다. 하지만 세상의 대부분은 모두 변한다. 인간관계만큼 복잡하고 다양하고 법칙 따위가 절대 존재할 수  없는 것이 또 있을까. 엄마와 딸도 인간관계의 하나일 뿐이고, 친정엄마는 저런 정형화된 존재가 아니다.


 내게 있어 친정엄마란,

어쩔 땐 죽이고 싶을 만큼 미운 존재이기도 하고, 엄마의 강요 때문에 내가 이모냥으로 산다고 욕하고 싶다가도, 이제라도 거리를 두고 속 깊은 얘기는 하지 말자고 마음을 다잡아야 하는 존재이면서,

또 어버이날과 생일 명절에는 꼭 만나 뵙고 선물로 동생들과 모은 용돈 봉투를 쥐어드리는 의무를 해야 하며, 그분도 손주들에게 용돈을 주며 겉으로는 애정을 표하는,

악연 중의 하나일 뿐인데.


  난 엄마처럼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거울 속에 나이 들어가며 그녀와 비슷해지는 얼굴에 나도 어쩔 수 없이 그녀처럼 살게 될까? 하는 두려움이 휩싸이기도 하지만.


 아냐. 난 그녀와 달라. 노력하면 돼. 노력하고 있으니 괜찮아.


 오늘도 다짐한다.

 난 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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