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참관수업 - 멸치&호두볶음

by 루치아

참관수업 전 날,


샤워할 때 다리털 제모를 꼼꼼히 했으며, 씻고 나와서는 마스크팩을 하며 다음 날 학교에 입고 갈 옷을 골라놨다. 너무 과하지도 않고, 또 없어보이지 않으면서, 꾸몄지만 꾸민 티는 안나고, 나이들어보이지도 않는데 나잇값 못하는 차림새도 아닌,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스타일링을 해야 했다.


참관수업 당일,


아침부터 먼지 쌓인 고데기를 꺼내들어 머리털을 좀 말아줘보고(실패였다.)

콘택트렌즈를 끼고, 파운데이션, 팩트를 처덕처덕 바르고 (남편은 '주온'의 토시오같다고 놀린다.)

이번만 쓰고 버리는 게 나을만한 쉐도우팔레트를 꺼내 눈에 힘을 주고(안하는 게 나을 뻔 했다.)

마스카라까지 발랐더니 오~ 눈매 괜찮아보이는데

내게 찰떡이라 믿었던 립글로즈를 발랐는데 그날따라 색이 어두워보인다. 티슈로 지우고 좀 옅은 색을 발랐는데 왠지 얼굴톤이 어두워지는 기분이다. 나이들어 그런가.



블라우스에 혹시 화장한 거 묻을까봐 비닐봉지를 머리에 쓰고 블라우스를 입고(남편이 이젠 그만 웃기라고 한다.)

결혼할 때 예물로 받은 구찌 가방을 찾아들고(옷장 맨 위 더스트백에 넣어놓고 잘 쓰지 않는 거. 아낀다기 보단 가방에 지퍼가 없어 내 맘에 안들어 안쓴다. 남편의 서프라이즈 선물이었는데 이 이후로 서프라이즈 하지 않기로 약속)

또한 결혼할 때 예물로 받은 귀걸이 목걸이도 하고, 결혼식날만 껴봤던 반지도 껴본다. 다행히 들어간다. 휴~

오랜만에 스틸레토힐을 신는데 벌써부터 새끼발꼬락이 비명을 지르는 것 같다. 하지만 신을테다. 신어야한다.

왜냐하면


오늘은 참.관.수.업 날이니까!


딸한테 우리 엄마가 제일 예뻐! 소리를 듣고 싶지만, 언감생심 그건 힘들겠고, 엄마 구려! 소리는 듣지 않으려고 힘을 줬다.


학원일을 하면 제일 힘든 것은


학부모님과 상담하는 것, 아이들 가르치는 것, 강사분들과 기사님 월급 챙기고 고충 해결해주는 것, 사업자현황 신고나 세금신고, 책, 교재 유지 보수, 선택, 결제, 학원 홍보 등등보다


사회생활이 뚝! 끊기는 것이다.


대부분의 직장다니시는 분들이 저녁 모임하고 술 한잔 할 시간이 학원 관계자들은 늘 제일 바쁠 때다. 학원 관련자들끼리 술자리가 있을 땐 다들 술을 마신다기보단 들이붓는다. 다들 11시 넘어서야 학원문 닫고 만나게 되니( 대부분 보습학원들은 더 늦게 끝난다.) 얼른 마셔야 얼른 집에 들어갈 것이 아닌가.


초등학생 학부모가 되면 그 반 학부모들끼리 모임을 갖는데 난 참여할 수가 없었다. 하루 쯤은 강사분들께 맡기고 갔다올까도 했는데, 번번히 상황이 좋질 않았다.


단톡방에 올라오는 글들만 간간히 눈팅만 하며 전혀 학교 관련 일을 참여 못했는데 (물론 대부분 워킹맘들도 마찬가지고, 굳이 참여하지 않아도 되지만) 뭔가 내가 해야만 하는 의무를 놓치고 있진 않는 건지 찜찜한 기분을 떨치기가 힘들었다.


참관 수업은 오전에 있으니 학원을 빠지지 않아도 갈 수 있었다.


학교에 너무 일찍 가면 뻘쭘할까봐 시간에 딱 맞춰 간다고 갔더니 초등학교 주차장은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대학교 주차장까지 차댈 데가 없어서 빙빙 도느라 좀 늦었다.

헐레벌떡 뛰어가니 이미 수업을 막 시작하며 담임 선생님이 설명을 하시는 중이다. 조용조용 들어가니 전에 딸의 빚잔치(?) 일로 알게 된 두 어명의 엄마와 눈인사도 하고 딸의 짝꿍인 엄마가 먼저 말을 걸어주기도 하여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그 분들 모두 나와 같은 고민의 흔적,


'난 오늘 정말 신경쓰고 꾸몄지만, 신경 안쓴 듯 꾸미지 않은 듯 이게 원래 나의 모습이라는 듯 자연스럽고 싶어.'


의 모습들이 비쳐 더 마음이 놓였다

(진짜 평소의 모습대로 하고 오셨고, 전혀 참관수업 의상 따위 신경안쓰신 학부모님께는 혹시 실례가 되는 말을 한 거라면 용서해주세요. 정말 다들 멋지졌습니다!)


수업 내용은 "벚꽃 팝콘"


교정은 목련도 활짝 피었고, 벚꽃 또한 벌써 핀 곳도 있고, 대부분 나무에 꽃송이가 분홍빛을 내비치고 있었다.


벚꽃 팝콘이란 동요도 같이 부르고


담임 선생님이 준비해주신 진짜 팝콘으로 벚꽃나무를 꾸몄다.


"학부모님들도 도와주세요."


하는 말에 나도 딸 옆으로 가서 조용히 물어봤다.


"딸 오늘 엄마 어때 보여?"


"화장했네요."


"그러니까 딸램이 보러 엄마 이쁘게 하고 왔는데. 이뻐?"


"안해도 이뻐요."


크~ 자식 키우는 맛이란~ 이런 거지.(이런 이쁜 말 할 때는 정말정말 드문 일이지만)


수업 시간 꾸미기 재료로 할당된 팝콘을 서로 몰래 입에 넣으며 킬킬대고 목공풀로 나뭇가지를 붙이고 색까지 칠하는 동안, 오랜만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행복했다.


집에 와서 밑반찬으로 김치를 볶아놓을까 하다


냉동실 구석에서 실멸치 봉지를 발견했다.


아, 오랫동안 멸치볶음을 잊고 있었네.


웍을 센 불로 데운 뒤, 기름 한 숟갈 두르고, 불을 중불로 줄여 멸치를 쏟아넣는다. 멸치가 타지 않게 주걱으로 저어가며 볶다가 노릇노릇해질 때 쯤 호두도 좀 잘게 부숴서 같이 살짝 볶고, 불을 끈 뒤 물엿이나 올리고당을 넣고 두루두루 섞어주면 끝.


그 날은 오랫동안 잊었던 것을 많이 찾았다.


잊고 지낸 화장도구들(진짜 쉐도우팔레트는 그 날 버렸다.)


잊고 지낸 명품백과 귀걸이 목걸이 반지.


잊고 지낸 힐을 신었을 때의 불편함.


잊고 지낸 딸과의 재밌는 공작 시간.


잊고 지낸 실멸치를 호두와 살살 볶아 맛있는 멸치&호두 볶음을 만들어냈 듯

잊고 지낸 것들을 다시 해보고 겪으며


잊고 지낸 행복을 생각해봤다.


아주 흔하고 뻔해서 우리가 잊고 지낸 말


행복은 가까이에 있다. 이미 우리 안에.


딸. 그 날 정말 고마웠어. 덕분에 행복했어.


라고 감사할 줄 아는 행복한 엄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