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교생선생님은 귀여워 - 메추리알 장조림

by 루치아

딸아이 학교는 교육대학교 부설초라 그런지 교생실습이 1년에 두번이나 있는데다 한 반에 교생이 4~5명씩 배정될만큼 많 온다


교생. 교육실습생의 준말로서, 사범대학(중고등교사), 교육대학(초등교사) 재학생들, 혹은 요즘엔 공대든 간호대든 상관없이 교과 과정을 이수한 학생들이 '정교사2급' 자격증을 따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교과 과정 중 하나가 바로 '교육실습'이고 그 학점 이수를 위해 각 학교에 실습 나온 대학생들이 바로 교생이다.


예비교사로서의 필수적이고 거의 마지막 관문에 선 이들이기에 대부분 교생들을 선생님으로 대우해주는데다

또한 교생선생님에 대한 기억은 밝을 것이다. 젊고 상냥한 대학생들.


하지만 난 좀 다르다. 내가 학창시절 교생선생님에 대한 추억도, 내가 사범대 다니며 교생으로서 겪었던 경험도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 다른 애들은 교생선생님 가신다면 울고불고 했었는데, 난 그만큼 정든 선생님도 하나 없었고


초 6 때는, 한 남자 교생이 날 웃음거리로 만들면서 반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분이 있었다.


내가 좀 발랄하고, 우스개소리도 잘 하고, 부반장이니까 그렇게 놀려도 상관없다 생각했는

"넌 콧구멍이 커서 냄새를 잘 맡나보다" 라는 말로 아이들이 "와~" 웃으면 엄청 뿌듯해하고

체육시간에 내 달리는 폼이 웃기다며 따라해서 또 반 남자애들과 같이 낄낄거리는데


지금 생각해도 죽이고 싶다.


그 후로 중,고등학교 때 원래 수업 진행과는 달리 교생 선생님용 수업으로 교과서 뒤에 있는 단원을 들어야 해서 좀 불편한 생각이 들거나,


내신이 중요한 시기인데, 수업은 교생이하고, 시험 문제는 원래 학교 선생님이 출제하시기에 이중으로 수업을 들으며 단원정리를 해야하는 불편함도 있었다.


게다가 교생들의 수업은 새로운 교수법, 예를 들면, 티비에 애니메이션을 틀으면서 과학 수업 과정을 설명한다거나, 국어도 토론식으로 진행하며 에세이를 쓴다던가, 평소에 해보지 않은 수업방식을 진행해서 영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가르치는 사람도 초보고, 학생들도 익숙치 않은 수업에 실험용 생쥐가 되어있는데다, 아이들이 또 얼마나 영악한가. 교생 말은 잘 안들어도 된다고 만만하게 보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지 잘 따르지도 않고 엉뚱한 말로 수업분위기 흐리기가 일쑤였으니 말이다.


아예 교생들 중 몇몇은 작정하고 수업은 대충하고 시시껄렁한 연애얘기나, 자기가 학교 다닐때의 무용담 따위를 늘어놓는 애들도 있었다.


그리고, 내가 교생이었던 시절.


3학년 때 1주일간 참관만 하던 남학교에서 교생들끼리 모여있던 과학실은 5월인데도 어찌나 춥던지.


4학년 때 1달 내내 갔던 남녀공학 고등학교에서도 내가 그렇게 욕했던 교생과 마찬가지로 수업도 개판을 치는데다, 애들 또한 대놓고 엎어져 자고 무시하기에 정말 이게 뭐하는 짓인지 매일 학교가기가 정말 싫었다.


그때서야 깨달았다. 학생들보다 선생님들이 학교에 더 가기 싫어한다는 것을 ㅋㅋㅋ


딸아이네 학교로 교생선생님이 오신다는 날 내가 괜히 긴장되고 불편해졌었다.


집에 오자마자 딸에게 교생선생님들이 어땠냐고 물었더니


"몰라"


"아, 첫날이라 아직 수업 안하나? 뭐 불편한건 없고?"


"몰라."


"뭘 다 모른대.선생님들 다 친절하셔?"


딸아이는 유튜브를 보러 널부러져 있느라 내 질문에 대답도 안한다.


클래스팅이란 앱으로 담임선생님이 생선생님과 수업한 사진들을 보니 딸아이 얼굴이 밝다. 그리고 교생선생님은 이제 나보다 스무살 가까이 어린, '젊다'는 표현조차 어려보이는 앳된 모습에 사진 속에서도 아이들에게 조심스러움과 꿈꾸던 교단에 선 각오까지 보이는 듯 하다.


나의 선입견은, 있지도 않은 딸아이의 소중한 교생선생님과의 추억을 미리 망쳐놓고 있었다.

그리고 나의 짧막하고 좁디 좁은 경험에서 나온 편견이,

누군가의 소중한 딸 혹은 아들이며, 꿈을 향해 착실히 나아가는 청년들을 '교생 주제에~'라는 말로 매도해버리고 있었다.


반성한다. 마흔이 넘어서도 매일 후회할 일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난 이미 깨닫고 있었다. 초등학교 때 날 놀렸던 남자 교생도 사실 아이들이 웃기고 싶어하다보니 작은 실수가 있었던 것 뿐이고, 내가 교생 시절에도 학생들과 잘 지내고, 잘 하고 싶었지만 의욕만 앞서고 서툴다보니 실수가 많았기에 힘들었다는 것을.



며칠 뒤 메추리알을 80개나 샀다.


아무리 많이 사도 껍질까면서 중간에 잘못 깐 거 먹다보면 정작 장조림이 되는 건 몇 개 없는 건 경험으로 알고 있다.


딸은 다른 심부름은 안하는데, 메추리알 껍질까기는 더 못해서 안달이다.


메추리알을 물에 넣고 가끔씩 뒤집어가면서 삶아준다.


뒤적거리지 않으면 노른자가 치우치면서 껍질깔 때 흰자가 벗겨지며 노른자가 노출되어 장조림을 하게 되면 지저분해진다.


워낙 부피가 작다보니 3분 정도만 끓여도 거의 다 익는다. 좀 덜 익었어도 흰자만 탱글해질 정도면 충분하다. 어차피 장조림하면서 한참 졸여지니까 말이다.


차가운 물로 헹구며 메추리알 겉면이 부서지게 냄비뚜껑을 닫고 냄비째로 흔들어주건, 그릇에 옮겨 닮은 뒤 손으로 휘휘 저어가며 껍질에 금이 갈 정도로 메추리알들끼리 마찰을 시켜놓으면 훨씬 잘 까진다.


"메추리알 까자."


아들은 들은체 만체지만, 딸은 '와~ 메추리알이다~' 신나하며 달려온다.


메추리알 껍질을 까며 다시 말을 붙여본다.


"교생선생님이랑 일주일 지내보니 좋아?"


"뭐 그저 그래요."


"선생님들도 긴장해 계실거야. 니가 먼저 다정하게 인사하고 말 걸어주면 좋아하실거야.


"좀 귀찮기도 하고, 모르는 것도 많은데. 귀여워요."


딸의 말에 푸하하 웃음이 났다. 초등학교 1학년 눈에도 교생들이 귀여울 정도로 서툴어 보였구나.


교생선생님이란 존재들은 이 메추리알같은 건가? 갯수만 많지, 손도 많이 가고, 한 두개로는 양도 안차는.


간장 1국자에 설탕 세 숟갈, 간마늘 한 숟갈 넣고 그저 끓이다보면, 좀 덜 끓인 날은 연한 갈색, 물이 자글자글 바닥이 보일만큼 끓인 날은 새까만 메추리알 장조림이 완성된다.


하얀 메추리알같던 교생선생님들도 1달 뒤엔 수업 보고서 작성에, 각종 평가에, 아이들과의 생활에, 지도 선생님의 조언에, 동료 교생들과의 경쟁과 격려에 이렇게 까맣게 졸인 장조림이 되어있으렸다!


그렇게 되어야 학생들한테도 동료 선생님들한테도 더 필요한 존재가 되는 걸거에요.


교생선생님 뿐만 아니라 우리들 모두, 8살인 딸도, 40살인 나도 마찬가지죠.


자, 이제 더욱 맛있어진 장조림 한 알 먹을까?


80개를 삶아놔도 까면서 몇 개 먹고, 저녁 한 끼 먹고 나니 장조림이 얼마 안남아 '아~ 메추리알 장조림 애들이 잘 먹어서 뿌듯도 하지만 좀 허무해~'하는 귀차니스트 엄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