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부쩍 더워지는 7월 중순.
유치원생인 아들네 학교가 석면 교체공사로 여름방학을 매우 길게 잡았다. 7월 중순부터 9월 추석때까지 꼬박 두 달이 방학이었다.
게다가 돌봄교실은 근처 폐교 위기의 초등학교 교실을 빌려 2주간만 진행되며 점심은 도시락을 싸와야한다고 해서 고민이 되었다
사실 고민되기 전부터 화가 났다. 대체 2달씩이나 방학을 하면 맞벌이들은 어쩌란 말야. 시어머니께 너무 죄송해서 하루 종일 애를 맡길 순 없고, 어디 학원이라도 넣어야 하나? 도시락은 또 어떻게 싸지? 그냥 오전엔 내가 데리고 있다가 오후에 출근하면서 시댁에 맡길까? 아참, 방학때는 나도 학원 시간표 오전으로 옯겨서 수업 하는데. 어쩌지?
화를 내봤자 해결되는 건 없고, 아무리 머릴 굴려도 답이 나오질 않았다.
그래서 와글와글 시끄러운 질문들 속에서 우선순위를 골라야 했다.
제일 우선인건, 아이 돌봄을 신청할 것인가? 말 것인가?
돌봄을 신청하면 도시락을 쌀 수 있나?
도시락이 제일 걸려서 그냥 돌봄을 신청 안하는 게 좋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럼 학원을 보내야하는데 어디로?
같은 유치원 다니는 아이들이 학교 근처 태권도 학원을 다녀서 아들은 태권도를 배우고 싶다고 몇 번 얘기한 터였다.
태권도 학원을 등록해도, 하루 중 거기 가 있는 시간 왔다갔다 하는 시간 최대한 잡아도 3시간이 안되는데, 남는 시간은 어떻게 보내야 하나? 미술학원을 하나 더 등록할까? 시어머님께 드리는 교육비를 늘릴까?
아들은 태권도는 다니지만 미술학원은 절대 싫다고 상담을 받으러 간 학원에서조차 엉엉 울어버려 원장선생님께 내가 거듭 사과를 하고 나와야 했다.
아...내새끼...
시어머님께 죄송하게도 오전에 봐달라 부탁드리고, 오후에 태권도에 갔다가 내가 운영하는 학원으로 데리고 와서 같이 퇴근하는 걸로 결정.
모든 맞벌이들은 방학때 혹은 단 하루짜리 빨간날도 이렇게 온갖 변수와 선택지 속에서 골머리를 앓아야 한다. 그래도 난 애들을 맡길 수 있는 든든한 시댁이 있어 다행이지만, 아이 맡길 곳 없는 부모님들은 어찌나 애가 탈지...상상조차 하기 싫다.
여하튼 아들은 저런 지난한 과정을 거쳐 어찌어찌 방학 계획이 세워졌지만, 딸이 남았다. 두둥!
하지만 딸의 여름방학 나기는 생각했던 것보다 아주 쉽게 해결되었다.시어머님이 다니시는 복지센터에서 방학동안 운영하는 '여름학교'라는 프로그램을 신청하면 차량 운행까지 되고, 평소 학교 다닐 때와 비슷하게 오전 10~오후3시에 각종 수업(요리, 만들기, 마술 등)을 하며 점심급식까지 해결이 되었다. 복지센터 만세!!
하지만 이는 내 머릿속에서의 해결이었지 현실은 달랐다.
처음에 딸은 자기보다 거의 일주일 먼저 동생이 방학을 한다니까 자기도 학교를 안가겠다고 떼를 썼다.
"말도 안되는 소리하고 있네~ 초딩이랑 유딩이랑 같냐? 학교 빠진단 얘기가 어떻게 그렇게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건지 당췌 이해가 안간다!"
라고 우격다짐으로 며칠을 버티니 딸도 방학이 코앞에 다가오고 있었다. 딸은 방학을 엄청 기대하고 있었다.
"맨날 늦잠자고, 종일 유튜브 보고, 게임하면 얼마나 행복할까"
"안 돼. 너 복지센터 가야해."
"왜!!!!!!!!!!!!!"
"엄마 신청해놨어."
"싫어!!!!!!!!!!!! 안가~~~~~~악~~~~~~~~"
딸은 복지센터에 절대 안가겠다며 울고불고 난리를 쳤다.
친구들도 많고, 언니 오빠들이 와서 놀아주니 재밌을 것이다, 라고 설득하려 했으나 내 말은 들으려 하지도 않았다.
아들은 그런 누나를 흥미롭게 쳐다보며
"난 오전에 놀다가 점심때 태권도만 다녀오면 되는데"
하고 은근슬쩍 자랑했다가 딸에게 머리를 얻어맞고 울었다.
아이 둘을 키우는 집은, 언제나 울음과 싸움이 끊이지 않는 난장판인 것이다.
마침 주말에 복지센터에서 주관하는 행사가 있어
딸을 어르고 달래 구경이라도 하자며 갔다.
복지센터 봉사자분들부터 사회복지과 전공하는 학생들, 그리고 센터 직원분들, 재단 관련자들(불교 재단이 운영하는 복지센터다.)이 부스를 열고, 향수를 만들거나, 즉석 사진을 찍거나, vr체험을 해주는 등 다양한 체험행사를 하고 있었다.
딸은 6군데나 돌아다니며 열심히 체험을 하면서 너무 즐거워했다.
"그럼 방학 때도 여기 다니느 거야?"
"싫어~ 방학은 집에서 놀래."
"엄마 아빠 다 출근하고 집에 없는데 너 혼자 어떻게 있으려고?"
"나도 동생처럼 오전엔 할먼네 있다가 오후에 피아노 학원만 갔다오면 되지."
설득 실패.
시어머님도 지들끼리 놀면 어머님이 더 편하시다며 둘 다 오전 내내 맡기라고 하셨다. 감사합니다. 어머님. 정말 제 은인이세요. 귀인이십니다.
집에 와서 덥다고 마실 것을 찾는 아이들에게 우유한잔을 줬더니 딸은 딸기 우유를 달래고, 아들은 초코 우유가 먹고싶단다.
아이들이 꼭 딸기맛 초코맛을 원한다기 보단 흰 우유보다 더 달콤하면서도 시원한 걸 원하는 듯 하여
믹서기 그릇에 우유를 두잔 분량 따르고
초파리가 꼬일까봐 껍질을 다 벗겨 몸통만 냉동실에 얼려놓은 바나나를 꺼내고
좀 익혀먹는다고 식탁 옆으로 치워져 잊혀진 , 사놓은지 며칠 된 키위가 보여 반으로 잘라 숟가락으로 과육만 쏙 빼서
믹서기에 놓고, 설탕도 좋지만 올리고당이 건강에 더 낫지 않을까 싶어 올리고당도 휘휘 둘러 넣어주고
믹서를 윙~~ 돌리면
키바주스 완성!
그래 날도 더운데 어딜 그렇게 너희들을 내보내려고.
전기세 10만원 낼 각오하고. 그냥 집에 있자.
엄마가 뭐 해줄 건 없고, 가끔 이렇게 시원한 주스 갈아줄게.
딸이랑 아들은 맛있다며 한 잔 더 해달란다. 이번엔 얼음도 넣고 올리고당 말고 설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