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인생은 물놀이처럼 - 호박잎과 꽁치쌈장

by 루치아

내가 사는 00시에서는 여름에만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무료 시립 물놀이장이 있다. 수심이 얕은 풀장에선 영유아들을 위한 다양한 물놀이 시설이 있고, 수심이 깊은 풀장은 넓직해서 좀 큰(?) 아이들이 다이빙도 하며 놀 수 있도록 잘 꾸며놨다.


부모님 환갑에 맞춰 해외도 다녀온 적 있고, 휴가 때 워터파크도 갔다왔어도

애들이 제일 좋아하는 건 바로 이곳 시립 물놀이장이다.


제일 큰 장점에서 집에서 가까운 것. 멀미가 있는 딸아이는 차 오래 타는 게 제일 싫은데 집에서 차타고 10여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어 휴가지로 가는 것보다 시립 물놀이장을 더 좋아한다.

게다가 무료니까 사람들이 엄청 몰릴 것 같긴 해도 또 딱히 그렇지도 않아 늘 그늘에 돗자리 깔아놓고 캠핑의자를 펴놓을 정도의 공간은 있기에 도 편하다.



작정하고 캠핑용품을 챙겨 물놀이장 근처 정자에서 삼겹살을 굽고 라면을 끓이는 집도 있고, 간단히 보냉팩에 음료수 몇 개, 과자 샌드위치정도 챙겨와 여유롭게 낮잠을 즐기거나, 어른들도 아이들처럼 같이 물놀이를 즐기기도 한다.


지난 여름, 딸이 초등학교에 들어갔겠다, 이제 7살인 동생 잘 데리고 다니면서 얕은 수심의 물놀이장에서 둘이서 잘 놀겠다 싶어, 난 책 한권을 챙겼었다.


아이들은 물놀이하고, 엄마는 독서하다니! 너무 완벽한 여름이다!!


하지만 언제 내 계획이 지켜진 적 있나? 40 평생 지키기 힘든 계획만 세우고 늘 그 계획이 와르르 무너지는 걸 반복해오면서도 깨닫는 바 없이 또 저러고 있다 쯧쯧.


물놀이장에 도착해서 자릴 펴자마자 애들은


"엄마도 들어와~ 무섭단 말야~"


"뭐가 무서워? 니 무릎 아래밖에 물이 안오는데!"


"여기 시시해~ 저기 깊은 데로 가고 싶어~"


내 예상과 달리 얕은 수심은 시시해하고 형님들이 놀고 있는 깊은 수심 풀장을 가고 싶어했다. 자식들 좀 컸다고. 부모란 투덜거리면서도 아이들이 컸다는 느낌이 들면 또 뿌듯해하기 마련이다


한편으론 또 애들 뒷모습이 부쩍 커보여 깊은 수심쪽 풀장으로 향하면서 내심 흐뭇했다.


하지만 정말 풀장 속은 지옥과 다름없다. 애들이 많다보니 이리저리 부딪치고, 아저씨들 중 샤워도 안하고 와서 담배냄새도 나는 분이 계시고, 락스 냄새가 진동하는 허리 정도 오는 물 속에서 8살, 7살 아이들의 요구대로 잡아주다보니 녹초가 되어버렸다.


두어시간만 놀다 집에 갈 요량이었지만, 아이들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4시간째 소릴 꽥꽥 지르고 첨벙거리고 지치는 기색이 없다. 오후 5시쯤 되면 대부분 부모님들 얼굴은 송장 치르기 직전이다.


친정엄마가 직접 농사지으신 호박잎과 애호박을 좀 가져가라고 연락이 와, 아이들과 외갓집에 들러야한다고 겨우 달래서 그 지옥(?)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친정엄마는 호박잎을 이미 쪄서같이 먹을 볶은 우렁 된장까지 조금 덜어 주셨다.


저녁 반찬이 해결되어 신나서 집에 왔다. 호박잎을 잘 펴서 하얀 밥을 얹고 볶은 된장까지 조금 넣고 한입에 넣으면 얼마나 맛있는가! 상상만으로도 행복해 하며 상을 차리는데


딸이 우렁 된장을 보면서


"엄마! 할머니가 주신 되장에 벌레 들어갔어!"


"우렁이야. 전에 먹었잖아. 우렁 직접 기르는 식당도 가서 새냇물에 우렁 키우는 데도 봤고."


"몰라~ 나 안 먹어."


와. 저 왠수가!


먹기 싫으면 먹지 마!라고 윽박지르려다가 꽁치통조림이 눈에 띄었다.


통조림에 있는 꽁치는 애들도 뼈까지 씹어먹을 수 있을만큼 가시가 부드러워 아이들에게 안심하고 먹일 수 있는 음식 중 하나다.


통조림 캔에 있는 꽁치를 그릇에 아 대충 으깨고, 된장 4숟갈, 고추장 2숟갈, 물 한 컵 넣고 팔팔 끓인다. 끓이며 또 저어가며 더 부드러워지도록 으깬다.


한 번 끓이면 양파 반 개 다진 것, 다진 파 4숟갈, 간 마늘 2숟갈, 참기름 1숟갈 섞고 다시 한 번 더 끓이면 끝.

원래 청양고추도 두어개 썰어넣으면 훨씬 맛있지만, 아직 아들이 못먹어서 그냥 양파를 좀 더 넣어서 달달하게 먹는다.


아이들은 호박잎을 처음엔 안먹으려 하다가, 한번 먹으니


"쌈해주세요!"

먹을수록 더 먹고싶어서 다급해진다.


또 부모란 이런 것이다. 반찬투정하면 숟가락으로 그 주둥이를 때리고 싶다가, 잘 먹으면 그 오물거리는 주둥이가 너무 예뻐서, 불룩한 볼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계속 먹이고 싶은 것이다.


문득 인생이란 게, 100킬로 떨어진 유명한 휴양지로 백만원 들여 힘들게 가는 것도 좋지만 10킬로 거리에 있는 무료 물놀이장에 가는 것도 괜찮은 삶 아닌가.


비싼 한우 먹고, 횟집에서 먹는 것도 맛있겠지만

부모님이 직접 기르신 호박에서 나온 잎에 2천원짜리 통조림으로 뚝딱 만든 쌈장도 정말 맛있지 않은가.


물놀이장에서 계획한 대로 책 읽진 못했지만, 아이들과 온몸으로 물놀이를 같이 하면서 나또한 얼마나 즐거웠는가.


다른 사람들이, 이 세상이 좋다고 하는 것도 물론 좋지만,


우리한테 좋은 건 또 우리가 좋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썀장을 한 입 가득 먹고 우물거리는 아이들 입을 보면서 삶의 진리를 조금 깨닫는 엄마였다.


그렇다고 남을 부러워하고, 세상이 좋다고 하는 걸 좇아가는 이 허접한 버릇이 바로 고쳐지지기야 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조금씩 나아지는 게 바로 인생 아니겠어?